긴긴 괴로움의 시간 끝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는 뭐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남들은 일단 좀 쉬라고 했지만, 그리고 나도 누군가가 계획을 물어보면 일단은 좀 쉴 거라고 했지만, 쉬기는 개뿔. 나는 직장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시간을 쪼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단단히 각오한 탓인지 퇴사 다음 날부터 새벽에 눈이 번쩍번쩍 떠졌다.
나는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모두 해 볼 작정이었고, 꼭 나인 투 식스로 어딘가에 소속되어 근무하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벌이를 찾고 싶었다. 나의 깨어있는 하루의 시간을 내 계획대로 쓰고 싶었다.
일단 내가 매일매일 할 루틴으로 정했던 3가지는 독서, 글쓰기, 운동. 이 3가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평생 놓지 않고 우선순위에 두고 싶었기에 생계와는 상관없이 하루에 눈뜨면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할 미션으로 정해두었다. 3가지 미션을 끝내고 나면 남은 오전과 오후 시간은 생계를 위한 공부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내 방이 필요해졌다.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하고 내 일을 준비하기 위한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동안은 부엌에 있는 식탁이 나의 공간이었다. 거기서 책도 읽고, 오래된 노트북을 가져다 놓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밥먹을 시간이 되면 후다닥 하던 걸 치우고 밥을 차리곤 했었다. 그런데 퇴사 후 지금은 본격적으로 내 일에 집중할 독립된 공간과 책상이 필요했다.
고민하던 중 아이들 둘이 같이 쓰던 게임용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각각 책상이 있으나 거기에 앉아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방에 들여주었던 책상은 물건을 쌓아놓는 용도 이상으로는 쓰이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각자의 책상에 가방이며 잠바며 온갖 물건들을 올려놓고는 거실에 있는 게임용 테이블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퇴사 후 독립된 공간을 꿈꾸고 있던 어느 날 유난히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애들이 방도 안 쓰고 책상도 안 쓰네?'
아이들 방의 책상을 빼버리고 거실에 있는 게임용 테이블을 내 책상으로 들여오면 완벽한 내 방이 완성될 것 같았다. 그래도 애들방을 없애기가 미안해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봤더니 의외로 아이들은 괜찮다고 했다. 항상 거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니 책상이 거실에 있는 것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내 방 만들기를 바로 실행했다.
마흔에 새로 생긴 내 책상
아이들 책상을 거실로 옮기고, 아이들이 게임용으로 쓰던 테이블을 방으로 들여와 남편이 예전에 쓰던 컴퓨터를 올려 세팅을 하고 있으니, 큰 아이가 다가와 책상에 자기 사진을 슬그머니 올려두고 간다. 마흔에 다시 내 책상이 생기고 나니 뭐든 얼른 시작하고 싶어진다. 여기서 나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시도해 볼 생각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얼른 책상부터 세팅해 보시길. 저절로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