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대 진학과 군복무 대체의 사회구조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요즘 유행하는 단어. 누칼협.
선박기관사 이전에, 선원이라는 직업을 불평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요, 정말로 협박당했습니다.
누구한테요?
글쎄요, 한번 들어 보세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국방의 의무’가 있습니다.
선박기관사는 이 의무를 '승선근무 예비역'이라는 이름으로 대신합니다.
쉽게 말하면 군대 대신 배를 타는 제도입니다.
물론, 아무나 배를 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해양대학이라는 특수 목적 대학에 진학해, 4년 동안 대학에서 교육을 이수해야만
바다 위 관짝, 아니 선박의 기관실에 입장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럼 해양대를 왜 가냐고요?
해양대의 학비는 연 400만 원대, 기숙사, 식사, 제복 제공.
학교를 다니면서 거의 돈이 들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없는 집 아이들이 마지막 로프를 붙잡듯 찾아오는 학교.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니 "누가 억지로 시켰냐고?"라고 말하기 전에 묻고 싶습니다.
정말, 그 선택이 온전히 개인의 자유였을까요?
학비도 거의 안 들고, 군대도 대체할 수 있고,
돈도 꽤나 만질 수 있는 직업. 선박기관사.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금도 선박기관사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 승선하면 1년에 6개월 이상 가족을 못 보는 건 기본입니다.
게다가 근무 환경은 어떻고요?
45도 더위의 기관실,
100 데시벨을 넘나드는 기계소음,
고장 난 엔진과 싸우며 살아야 하는 중노동.
기계와 전기 문제 모두 소화해야 하는, 말 그대로 바다 위 공대 종합 세트입니다.
이런 사람, 그렇게 흔하진 않잖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이렇게 말하겠죠.
"하기 싫으면 그만둬. 할 사람 많다~"
그런데 승선근무예비역은 국방 대체복무입니다.
복무 기간인 36개월 동안은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내렸다간? 바로 군대로 끌려갑니다.
도망갈 구멍이라도 있냐고요?
군대는 탈영이라도 한다지만, 바다는 탈출구가 없습니다.
망망대해 위 선박에서 뛰어내리면, 구조대보다 저체온증이 먼저 찾아옵니다.
결국, 우리가 택한 게 아니라 끌려간 길이었다는 사실.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고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세상과 국가. 그리고 가난이요.
그렇게 저는 20대 초반,
바다 위 관짝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몸은 살아 숨 쉬고 있지만, 마음속은 늘 묻혀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그 관짝 속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