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걸 왜 먹어 가지고..."
새벽 1시. 나는 배탈이 났다.
설사와 구역감, 온몸의 통증까지. 아무래도 장염이었다.
일요일 점심, 아내는 출근했고 나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함께 있을 때와 달리, 혼자일 때의 나는 밥을 아주 대충 때우는 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식탁 위에는 며칠 전 먹다 남은 치킨이 있었다.
그나마 데워 먹었으면 괜찮았을까.
하지만 그것은, 구매한 지 3일이나 지난 치킨이었다!
한여름. 낮 기온이 30도까지 치솟는 날씨 속에서, 나는 그 치킨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넣었고...
그 대가는 몇 시간 뒤에 찾아왔다.
데굴데굴 구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침엔 병원까지 걸어가는 것도 벅찼다.
병원에서는 익숙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지난주엔 고지혈증 약을 타러 왔고, 이번엔 장염.
잘못하면 VIP가 되겠는데, 나 참...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떻게...”
며칠 만에 똑같은 의사의 얼굴을 보니 조금 민망했다.
“제가 어젯밤에 설사를 좀 하고요...”
내 증상을 설명하자 의사는 장염이 의심된다고 했다.
“장염주사 한 대 맞고, 약은 3일 치 드릴게요. 배 나가시는 건 아직 시간 있죠?”
“네. 한 2주 있어요.”
“그럼, 3일 뒤에도 안 나으시면 바로 오세요.”
진료를 마치고 주사를 맞은 뒤, 약도 챙겼다.
집에 돌아와도 입맛이 없어 흰 죽만 대충 떠 넣고는 약을 삼켰다.
“내가 그걸 왜 먹어 가지고...”
다시 중얼거렸다.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감각이 낯설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고통을 1년에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익숙한 감각이었다.
바로 ‘술병’이 났을 때의 그것이다.
술병이 나면 설사와 구토, 식욕부진, 극심한 무기력까지 몰려온다.
차이라면 장염엔 오한이, 술병엔 두통이 있다는 것 정도.
술을 많이 마시던 시절, 이런 고통은 일상이었다.
가볍게는 매일 아침, 심하면 일주일에 두세 번.
낮 11시쯤 돼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삶을 살고 있었던 걸까...
스스로 몸을 아프게 만들던 과거가 부끄러워졌다.
사람은 후회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것도 일이 잘 풀릴 때가 아니라, 가장 아프고 돌이킬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후회한다.
나 역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앓아있는 동안, 아내는 내 곁을 지켰다.
병원에서는 해 줄 수 없는 일들을 모두 도맡아 주었다.
술이든 뭐든, 내가 아프면 아내는 자유롭지 못하다.
곁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손을 조용히 잡아본다.
그 작고 따뜻한 손 안에서,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금주뿐만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