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마실 타이밍이야!"
금주를 결심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문득 머릿속에서 신호가 울렸다.
“지금은 마실 타이밍이야!”
머리는 금주의 약속을 붙잡고 있지만, 마음은 익숙한 어떤 감정에 끌려간다.
그건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이름의 강박이다.
이번 주, 업무차 부산에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은 나에게 늘 술과 함께였다.
마트에서 저렴한 안주거리를 사고, 맥주 몇 캔을 숙소 냉장고에 넣어두는 게 공식처럼 반복됐다.
낮엔 일, 밤엔 맥주.
할 일 없는 저녁의 공백을 술이 채워주던 날들.
게다가 부산은 내게 제2의 고향이다.
감성이 묻어나는 도시,
그리고 때때로 친구들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도시.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마침 만날 친구도 없었고, 술자리를 만들 일도 없었다.
금주를 실천하기엔 최적의 조건이었다.
문제는 장소였다.
5년 넘게 출장 때마다 묵는 숙소.
짐을 풀자마자 나도 모르게 마트로 향했고,
장바구니엔 어느새 안주거리들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주류 코너 앞에 멈춰 선 나.
아무 생각 없이, 너무 자연스럽게.
그건 욕망이 아니라 ‘루틴’이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피곤하면 눕듯,
나는 아무렇지 않게 술을 찾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단지 술을 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의 습관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그 자리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마트야. 그냥... 술 생각나서, 전화했어.”
그렇게 정신을 딴 데 팔고, 그날의 위기는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며칠 뒤, 아내의 말투에서는 짜증이 묻어났다.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는 '도움 요청'에, 그녀도 지쳐가는 듯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금주는 우리의 관계를 위한 선택인데,
그 과정에서 관계가 틀어지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족이라고 해도, 반복되는 구조 요청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내 싸움은 결국 나 혼자의 것이었다.
이후로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홀로 금주하고 있었다.
다만 그 정도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할 때, 그럴 때만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고독은 익숙했고, 사실 이것은 언젠가 돌아올 일이었다.
조금 빨리 도착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