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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술 마시고 싶어.

by 송대근
"여보, 나 술 마시고 싶어."


그 한마디에 아내는 돌아버렸다.

“뭐라고?! 그럼 이혼 각서 쓴 걸 봐!”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한 데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날은 몹시도 더운 목요일이었다.

이틀 정도 계속된, 새벽 5시에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스케줄이 끝난 뒤 나는 녹초가 되어 집에 드러누웠다. 땀을 잔뜩 흘렸기 때문일까, 피곤함과 함께 맥주생각이 났다.


‘한잔만 할까?’

‘안되지. 각서를 생각해!’

스스로 참으려 했으나 나의 음주충동은 쉽게 멎지 않았다.

아내가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 퇴근하기 전까지만 마신다면 감쪽같이 속일 수도 있으리라.

‘자, 생각해 보자. 지금이 오후 3시니까, 저녁 9시까지만 술이 깨면 돼.’

알코올 분해 계산기를 두드려 본다. 2000cc 정도만 먹으면 6시간이면 깰 수 있군.

‘그럼 몰래 마실까?’

‘아니! 약속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머릿속은 술 생각으로 난장판이었다.

논리는 당위성으로, 압박은 비열한 합리화로 반격해 온다.

도저히 나 홀로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결국 지친 몸으로 편히 쉴 수 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강력한 외부통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연락했다.

“여보 나 술 마시고 싶어. 그러니까 이따 알코올 테스트 해 줘.”

술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강해질수록 이혼각서에 대한 압박이 함께 공존하는 상황.


음주충동은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었기에, 스스로 걸릴 수밖에 없는 올가미를 만들었다.

나는 내 금주의지가 먼지보다도 가벼운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의지와 논리 밖의 존재를 끌어들인 것이다.

‘안 걸리면 돼? 그럼 걸리게 해 줄게.’

‘... ...’


아내는 상당히 어이없어했지만, 이는 내가 음주충동을 제압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효과적으로 음주충동은 사라졌다. 누그러든 것이 아닌 소리소문을 감췄다.

솔직히 그동안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대외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그럴 여유 따위는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금주 방법을 때려 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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