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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곳은 없다.

by 송대근

금주일기 1권을 끝낸 바로 그 주,

귀신같이 찾아왔다.

그놈의 음주 충동.


허무하게 무너졌고 실망스러웠다.

내 몸에, 내 정신에, 내 관계에

독이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

알면서도, 또 다시.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에서의 한 잔이 시작이었다.

두 잔, 세 잔... 마지막 날엔 이미 익숙한 무너짐이었다.

문제는 그 버릇이 집까지 따라왔다는 것.


말하지 못한 채, 들키지 않길 바라며.

아주 조용히 무너졌다.

하지만 그 조용함조차 결국은 누군가에게 상처였다는 걸 안다.


더 엄격한 통제장치가 필요했다.

‘한 잔쯤이야’라는 유혹 앞에서 내 말이 아니라, 숫자가 대답하도록.

그래서 음주측정기를 샀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에게 다시 약속을 한다는 게 얼마나 뻔뻔한 일인지 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다.

내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를 인정하고, 이번엔 도구를 빌려 금주를 이어가려 한다.


스스로 실망한 만큼 이제는 나를 속이지 않기로.

숨지 않기로.


그렇게, 금주일기 시즌2를 시작한다.

다시 1일 차.


이제는 금주 의지 대신 금주 시스템을 만든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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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