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선원은 술을 마시며 항해했다. 'spend money like a drunken sailor'. 영어 숙어에도 박혀 있을 정도로, 술에 취한 선원은 오래된 이미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40도짜리 럼주를 마시며 키를 잡는 선원은 없다.
대부분의 선사에서는 음주를 엄격히 통제하고, 그나마 허용된 맥주 한두 캔조차 입출항이나 당직을 앞두고는 입에도 댈 수 없다. 규정은 점점 촘촘해지고, 술 마실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그런데도, 배는 여전히 술 마시기 좋은 환경이다.
나는 그걸 안다.
그곳에 있었고, 지금도 그 안에 있다.
일단 싸다.
면세이기 때문이다.
24캔 한 박스 맥주가 14불. 환산하면 한 캔에 800원이 되지 않는다.
육지에서라면 생각도 못할 가격이다. ‘싸니까 한 캔만’이 ‘싸니까 한 박스’로, 그 한 박스는 또 금세 비워진다.
게다가 심심하다.
육지의 직장인은 하루 일과를 마치면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배에서는 갈 곳이 없다.
일 끝나고 향할 카페도, 친구도, 산책길도 없다.
인터넷마저 느린 날이면 오롯이 ‘나’만 남는다.
하루 이틀은 괜찮다. 하지만 열흘, 스무 날이 지나면 그 적막은 견디기 힘든 무게가 된다.
그럴 때, 술은 너무 쉽게 손에 잡힌다.
통제?
물론 규정은 있다.
하지만 퇴근 이후, 각자의 선실 안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회사는 감시할 수 없고, 동료는 서로의 사생활을 지켜준다.
배는 사회지만, 또 작은 공동체다. 일단 한 배를 타면 웬만한 일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비밀은 바다에 가라앉는다.
그리고, 남초사회다.
적어도 대부분은 그렇다.
남자들은 여전히 술로 감정을 푼다.
특히 한국 남자들은 더 그렇다.
일하면서 쌓인 감정들을 술 한 잔에 풀고, 회식 자리에서 거리감을 줄이고,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려고도 한다.
마시지 않으면 섞이지 못하고, 섞이지 않으면 도태된다.
그런 생각이 배 안에서도 사라지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술은 잠을 부른다.
배 위의 밤은 고요하지 않다.
엔진은 덜덜거리고, 팬은 계속 돌아가고, 파도는 출렁인다.
귀에서는 이명이 울리고, 시차는 계속 바뀌고, 기계 알람은 새벽에도 울린다.
그 모든 소음을 견뎌내고 잠들기는 어렵다.
술은 그걸 간단히 해결해준다. 뇌를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그게 숙면이든 아니든, 일단은 잠들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술은 배 위에서의 Sleeping pill 이라고.
지금은 떠오르지 않지만, 아마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배 위에서 술을 마셔야 할 ‘그럴듯한’ 명분은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셔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많은 선원들이 마셔왔고, 그렇게 많은 선원들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바다에 빠져 죽은 선원보다, 술에 빠져 죽은 선원이 더 많다.
그건 잠언 23장에도 기록된 사실이다.
수천 년 전의 경고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 밤도 비가 내린다.
하늘은 구름으로 덮였고, 달빛은 없다.
암전.
바다의 밤은 대부분 이렇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벽을 찢고 나아가는 기분.
레이더가 있고, GPS가 있어도, 본능적인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공포와 맞바꾼, 힘들게 지켜낸 내 목숨값을, 술로 깎아먹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