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파도 한 점 없고 바람도 불지 않는 그런 바다를 지날 때가 있다.
무풍지대.
현재 선박에서는 그저 평화로운 장소일 뿐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범선(돛단배)으로 항해하던 시절에는, 파도와 바람 없는 이 장소는 노를 젓지 않으면 탈출할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장소였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엔진기술이 발전되고, 선박에 엔진이 탑재되면서 더 이상 이곳은 지옥이 아닌, 천국이 되어버렸다.
배를 괴롭히는 요소가 하나 없는 고요한 바다일 뿐이다.
술도 분명 그렇다.
술 자체는 삶을 천국으로 만들 수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저 본인에게 어떤 도구가 준비되었느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술이 무풍지대라면, 적어도 내 배에는 그것을 헤쳐나갈 엔진은 없다.
그런데 굳이 어렵게 그곳을 헤쳐나가야 할까?
다른 사람들은 헤쳐나갈 절제력이라는 엔진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과 나는 다르다.
나에게는 그런 튼튼한 엔진이 없다.
무풍지대를 우회하는 것은 겁쟁이가 아니라, 내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신중한 결정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