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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 만두의 다른 이름

만두, 춘권, 월병으로 읽는 중국 명절 음식의 문화적 기억

by 송지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음식이 있습니다. 어떤 집은 떡국을, 어떤 집은 만둣국을 끓이고, 어떤 식탁엔 여전히 송편이 오릅니다. 음식은 단순한 끼니를 넘어, 계절을 기억하고, 공동체를 잇고, 누군가를 기리는 마음을 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명절 음식들 중에서도 만두, 춘권, 월병은 한 사회가 음식으로 감정을 전해온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들 음식은 만주족의 궁중 문화와 한족의 민간 전통이 교차하면서 발전했지만, 그 안에서 음식은 결국 시간과 감각, 정서를 나누는 언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만두, 춘권, 월병. 세 가지 명절 음식을 중심으로, 한 사회가 음식을 통해 어떻게 시간과 감각을 이어왔는지 들여다보려 합니다.

만두, 춘권, 월병은 생김새도 다르고, 조리 방식도 다릅니다. 하지만 세 음식 모두 밀가루 반죽에 속을 감싸 만든다는 공통 구조를 지니고 있고, 명절과 절기의 중요한 순간에 등장하며,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만들고 나누는 상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들은 제사, 계절, 정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담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시간과 감각을 나누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서로를 닮아 있습니다.


만두 — 정결한 제사와 정체성을 담은 음식

중국 북방과 만주 지역에서는 ‘보보(包饃)’라는 이름으로, 만두·찐빵·전병 등 밀가루 음식들을 통칭해 왔습니다. 만주족은 이러한 밀가루 음식들을 정성껏 빚어내는 데 자부심을 가졌고, "만주족의 점심 음식이 한족의 반찬을 능가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기술과 세심함을 중시했습니다.


청대 궁중에서도 보보는 중요한 명절 음식이었습니다. 특히 삶은 형태의 ‘주보보(煮包饃)’는 오늘날 물만두와 닮은 조리 방식으로 연회와 제사의 상차림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만두 자체는 만주족의 발명이 아닙니다. 이미 후한 말기 문헌에는 '교(餃)'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족 사회에서는 정월 초하루에 조상의 형상을 본뜬 만두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만주족은 이 문화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수용했습니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소함(素餡) 만두'는 청나라 궁중에서 섣달그믐날 조상에게 바치는 음식이었습니다. 이는 '살생하지 말고 정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라'는 누르하치의 유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청대 궁궐에서는 수십 명이 함께 모여 만두를 빚었습니다. 그것을 정월 초하루 아침 식탁에 올리며, 조상과 신에게 마음을 전하고 새해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만두는 그 자체로 정성이고 의례였으며, 한 해를 여는 상징이었습니다.


춘권 — 봄을 말고, 나누는 전통

춘권(春卷)은 봄이 오는 길목, 입춘 무렵에 먹는 음식입니다. 후한 시기의 문헌에는 파, 마늘, 부추, 달래 등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쟁반에 담아 나눠 먹는 풍습이 등장합니다. ‘춘반(春盤)’이라 불린 이 음식은 봄의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당나라와 송나라 시기를 거치며 춘반은 더 화려해졌습니다. 봄 채소와 함께 과일과 엿을 담아 궁중에서 신하에게 하사했고, 그 정교함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이후 송나라에서는 밀전병에 채소를 싸 먹는 방식이 등장하고, 기름에 튀긴 ‘춘권’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당시 기름은 귀한 자원이었기에, 바삭하게 튀긴 춘권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풍요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광둥 지역을 중심으로 '생춘권'이라 불리는 쌈 형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글에서는 북방 중심의, 입춘에 튀겨 먹던 춘권의 전통적 양식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원나라와 청나라 시기, 춘권은 더욱 널리 퍼졌습니다. 『연경세시기』에는 입춘날 궁중에서 함께 춘권을 만들어 나누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료를 함께 다듬고, 함께 싸고, 함께 튀기는 과정은 단지 조리를 넘어, 계절을 함께 맞는 일종의 예식이었습니다. 춘권은 그렇게, 봄을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겨울이 물러가고 새 계절이 시작됩니다.


월병 — 달을 나누고, 마음을 전하는 떡

월병(月餠)은 중추절을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지금처럼 달을 닮은 동그란 모양과 단단한 속을 가진 이 떡은, 당나라 시기 궁중의 고급 간식 ‘궁병(宮餠)’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북송 시기에는 이 음식이 민간으로 퍼지며 ‘소병(小餠)’이라 불렸고, 시인 소동파는 그 떡을 두고 "달을 씹는 맛"이라 표현했습니다. 이 시적인 문장은 이후 달과 떡,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감정과 상징을 연결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소병’은 월병의 전신으로 보통 연중 다양한 용도로 먹던 밀가루 과자였습니다. 여기에 중추절이라는 시간성과 달의 상징이 입혀지며 ‘월병(月餠)’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중추절이 공식 명절로 자리 잡으면서, 월병은 둥근달처럼 가족과 공동체가 다시 모이고, 나눠 먹으며 안부를 전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저항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명나라 창업자인 주원장이 월병 속에 쪽지를 숨겨 반란의 소식을 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요.


오늘날도 월병은 달을 닮은 모양 그대로,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리움을 건네는 음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그 속에 담긴 마음까지 함께 나누는 명절의 상징입니다.


만두는 정결한 제사의 음식이고, 춘권은 계절의 시작을 맞이하는 음식이며, 월병은 달빛처럼 감정을 전하는 음식입니다. 이 세 음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닙니다. 정성스럽게 손으로 빚고, 계절을 맞이하며 만들고, 함께 나눠 먹는 그 과정 속에 한 사회의 시간 감각과 관계 맺는 방식이 녹아 있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손놀림과 나눔 속에서, 음식은 공동체의 기억이 되고, 의례가 되고, 언어가 됩니다. 음식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감각적으로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범준

미식유산 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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