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에서 미래 푸드테크까지, 시간을 품은 식탁 위의 유산
아침 식탁에 자주 오르는 순두부찌개 한 그릇. 마트에서 별 생각 없이 집어 드는 포장 두부 한 모.
너무도 익숙한 장면이라,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두부는 어릴 적부터 늘 곁에 있었던 식재료였습니다. 하지만 그 평범함 너머에, 생각보다 오래된 이야기와 깊은 맥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뒤늦은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저 흔한 식재료처럼 보이지만, 두부는 사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존재입니다. 불교를 따라 중국에서 전해졌고, 일본과 한반도를 거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에 녹아들었습니다. 이 작은 하얀 덩어리 하나에 동아시아 문화의 교류와 적응, 그리고 생존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두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단순한 먹을거리를 넘어 동아시아 문명사의 한 축을 이루는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두부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식품, 식물성 단백질, 그리고 푸드테크의 재료로서의 가능성 말입니다. 익숙함 너머를 들여다볼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두부 역시 그렇습니다.
두부의 기원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 시대로 향하게 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은 회남왕 유안(劉安)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가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다 우연히 콩물에 간수를 넣게 되었고, 그 실험의 부산물이 바로 두부였다는 이야기지요.
물론, 이 전설은 상징적인 기원 설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두부가 수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한 결과라는 견해가 더 일반적입니다. 콩을 갈아 두유를 만들고, 그것을 응고시켜 굳히는 기술이 축적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두부의 형태에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두부는 당나라 시기인 7~8세기를 전후하여 비로소 지금의 두부에 가까운, 응고된 콩 식품의 형태로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산둥성과 허난성 일대에서 발견된 석제 두부틀과 제조 도구들은 당시 두부가 이미 서민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두부는 이후 불교의 확산과 함께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갑니다. 한반도, 일본, 베트남 등지에 전해지며, 각자의 식문화 안에서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됩니다. 한반도에는 고려시대를 전후해 전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장맛, 발효 문화, 식재료와 만나 된장에 삭힌 두부나 김치와 곁들인 두부김치처럼 더 한국적인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두부를 만드는 기술이 매우 정교해졌고,
명나라 황제가 조선 사신의 음식 솜씨, 그중에서도 두부의 맛을 높이 평가하며
제조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는 기록도 전합니다.
《세종실록》 1434년, 박신생의 사행 기록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황제가 맛본 두부는 아마도 곱고 단정한 색감에,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을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박호인이 일본에 두부 제조법을 전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전한 기술은 일본에서 ‘도후(豆腐)’라는 이름으로 정착했고, 기누고시도후나 모멘도후처럼 질감에 따라 세분화된 두부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유바(두부피)나 유부(아부라아게) 같은 가공식품도 이때 함께 발전했습니다. 일본은 이후 두부를 고급 식재료로 포지셔닝하고, 전문점과 상품 개발에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습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두부 전문점이 고급 외식의 한 장르로 분류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한편, 베트남에서는 송나라와 리 왕조 시기, 불교의 번성과 함께 중국과의 교류 속에서 두부가 전해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다만 문헌에 콩이나 두부가 명확히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이며, 일반 대중의 식탁에 오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조금 다른 시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두부가 독자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입니다.
삼국시대 말이나 남북국 시대 초, 이미 콩 재배와 맷돌 기술이 꽤 발달해 있었고, 실제로 함경남도 강동군 성천리 고분에서는 회전식 맷돌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낙랑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입니다.
이러한 정황을 바탕으로, 당시 두유에 가까운 콩 가공식품이 존재했을 가능성, 그리고 자생적인 응고 기술이 발달했을 가능성을 일부 연구자들이 조심스럽게 탐색하고 있습니다.
문헌 기록은 충분하지 않지만,
동아시아 식문화는 언제나 '단일한 기원'보다
‘다양한 교류와 지역의 재해석’이라는 흐름 속에서 존재해왔습니다.
두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기술이 각기 다른 지역에서 창의적으로 흡수되고, 또 각자의 방식으로 재탄생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의 근대화는 두부에도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던 두부가 기계를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겁니다.
1960년대, 한국에 처음으로 두부 제조 기계가 도입되었고, 이 변화는 두부를 더욱 널리, 안정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공포장과 냉장유통 기술의 발달은 두부를 ‘쉽게 사서, 오래 보관하고, 편리하게 먹는’ 식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두부는 우리 식탁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습니다. 마트 냉장고 앞에 서서, 별 고민 없이 손을 뻗는 그 순간. 그 평범한 선택 뒤에는 수백 년을 거쳐 온 기술, 그 기술을 다듬어온 수많은 손길들이 고요하게 누워 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두부는 다시 한 번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건강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 아래 두부는 더 이상 과거의 식재료만은 아닙니다. 식물성 단백질에 대한 관심, 비건 식생활의 확산, 육식 중심의 식문화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 속에서 두부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미래형 식재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 너머를 들여다볼수록, 그 속에는 새로운 길이 숨어 있습니다. 두부가 그렇습니다.
실제로 두부는 축산업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현저히 낮은 식품입니다.
그래서 ‘기후 친화적 단백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건강과 환경을 함께 고려한 프리미엄 제품들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기농 두부, 검은콩 두부, 견과류 두부처럼 기존의 틀을 조금씩 벗어나려는 시도들입니다. 최근에는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두부를 다양한 모양과 질감으로 성형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고, AI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영양 성분을 조절한 고기능 두부 개발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두부는 단지 오래된 식재료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과 기억이 스며든 음식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과 입을 지나 조용히 이어져온 삶의 흔적입니다. 두부는 불교와 기술, 발효와 전쟁, 외교와 과학까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을 하나로 품은 ‘문화복합체’이며, 살아 있는 식품기술사입니다.
한 줌의 콩에서 시작된 이 작고 단정한 음식은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노력을 지나 문화와 기술의 교류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갈 것입니다.
천 년 뒤, 우리의 후손들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두부를 먹게 되더라도 그 본질만큼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두부는 콩에서 시작해, 그렇게 사람들의 시간 속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흘러갈 것입니다.
이범준 교수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미식유산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