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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곰탕의 역습: 부산에서 맨해튼까지

한식의 국밥문화와 돼지국밥

by 송지

한식의 글로벌한 인기가 뜨겁다고 한다. 2024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미국 100대 레스토랑에 7개의 한식당이 진입했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40위에 랭크된 '옥동식'이다. 옥동식은 돼지곰탕 전문점이다. 돼지곰탕은 국내에서도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남지역의 향토음식으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다. 더구나 뉴욕의 옥동식은 13석으로만 운영되는 '원 메뉴(One-menu)' 레스토랑이다. 과연 돼지곰탕이라는 소박한 한 그릇이 뉴욕 미식가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을까?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돼지국밥과 국물 문화의 깊은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외식 평론가'로 불리는 뉴욕 타임스의 피트 웰스는 옥동식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스트 30번가에 자리한 13석 규모의 한국 카운터식 식당은
원 메뉴 레스토랑의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사례다.

그가 옥동식을 뉴욕 미식 지도에서 가장 빛나는 장소 중 하나로 만든다고 평가한 것은 바로 돼지곰탕이었다.

맑고 투명한 돼지 육수에 알단테의 흰쌀밥 알갱이와 푹 삶아 얇게 썬 돼지 목살이 담긴 한 그릇은, 그 자체로 초월적인 경지에 닿으려 한다고 했다. 겉보기엔 꽤 소박한 국처럼 보이지만, 각 요소가 훌륭하며 무엇보다도 돼지 육수가 압권이라는 평가였다. 술이 한 방울도 들어 있지 않은 액체 중 이렇게 맛있는 것은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극찬이 이어졌다.

이 육수는 향긋한 채소와 살코기만으로 끓여내며, 뼈나 내장, 기름기 많은 부위는 넣지 않아 국물이 탁해지지 않는다. 표면에 기름방울 하나 없고, 옅은 금빛은 마치 밀맥주나 옥동식이 모든 손님에게 내주는 보리차를 떠올리게 한다고 묘사했다.

특히 그가 강조한 것은 '시원한 맛'이라는 한국어 표현이었다.
가볍고 정교하게 균형 잡힌 식사를 한 뒤 느끼는
상쾌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의미하는 이 말에서,
그는 몸이 정말로 가벼워졌다는 사실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시원한 맛'은 단순한 미각적 표현을 넘어 한국인의 음식 철학을 담고 있다. 뜨거운 국물이지만 속을 시원하게 해 준다는 이 역설적 표현은, 음식이 단순한 영양 공급을 넘어 정신적 위안과 치유를 제공한다는 한국적 사유를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뉴욕 타임스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단순히 '맛있다' 수준이 아니라 한식의 조리 방식, 역사적 배경, 지역적 특징까지 언급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한국의 특정 도시인 춘천, 특정 식당인 하동관, 심지어 갈치조림 골목까지 알고 있는 미국인들의 모습에서 미국 내 한식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의 '국' 문화부터 살펴봐야 한다.

한식의 근본은 '국'과 '밥'이다.
중국과 일본에도 밥과 국이 포함되어 있으나 그들의 것은 별개로 존재한다.
그러나 한식의 밥과 국은 융합관계이다.

한 논문에 의하면 18-19세기 조선시대 왕이 궁중에서 먹는 국 종류만 64가지였다. 한국에서 국 문화, 국물 문화가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독 우리나라 식문화에서만 '국'을 이토록 애정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국물요리는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현재 쓰는 일반적인 밥그릇의 크기는 350g이 들어갈 정도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690g, 고려 시대에는 1,040g, 고구려 시대에는 무려 1,300g의 밥그릇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19세기말-20세기 초 한국을 여행한 서양 선교사들은 한국인의 대식습관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렇게 많은 양의 밥을 먹으려면 국이나 찌개 같은 종류가 있어야 밥을 쉽게 삼킬 수 있었다.

아궁이라는 난방원이자 조리원을 사용하는 주거문화와 겨울이 춥고 길고 건조하며 여름은 짧고 습한 기후적 요인과 풍토적 요인도 한몫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이 빈곤의 산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반도는 산이 많고 지형이 협소해 곡식이 풍족하지 못해서 제한된 재료에 물을 붓고 끓여 국으로 만들어 양을 늘렸으며 그 과정에서 국물요리가 발달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은 만성적으로 늘 식량이 부족하던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국과 함께 먹으면 밥을 더 많이 먹게 된다. 제례에 쓰거나 제물로 바치는 국은 귀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히려 국은 풍요의 음식이고 상류층의 식사문화였다.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다양한 국물 요리를 즐긴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4-3세기에 이미 국에 대한 얘기가 보인다. 우리 민족은 2천 년 전부터 밥과 국으로 이루어진 식사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곡식과 국물이 결합한 원형적 음식이 존재했고, 조선시대 중기에는 주막과 장터에서 국밥 형태가 대중화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제사가 많아 소를 잡았다. 소는 경운기 역할을 하므로 평소에는 도살을 억제했지만 명절에는 특별 허가를 내려 소를 잡았다. 쓰고 남은 내장과 뼈는 시장에서 가져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설렁탕과 곰탕, 해장국이 성행하게 되었을 것이다.

실학자 박제가는 저서 『북학의』(1778)에서 조선에서는 매일 소를 500마리 잡는다고 쓰고 있다. 역축으로 요긴한 소를 그렇게나 많이 잡을 만큼 조선 사람들의 소고기 사랑은 대단했고, 당연히 부산물이 많이 나와 탕 문화도 함께 성장했을 것이다.

19세기말부터 개항기에 이르러서는 철도와 시장 문화와 함께 국밥이 외식 메뉴로 정착했다. 해장국, 순댓국, 육개장, 닭곰탕, 도가니탕, 콩나물국밥 등은 밥과 국의 조합이 진화된 결과로, 19세기말부터 국밥이라는 이름으로 외식메뉴로 자리 잡았다.

국밥은 밥과 국을 한 그릇에 담아 함께 끓이거나 말아낸 한국 고유의 식사 형태로,
간편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대표적 대중 음식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기록을 보면 서기 500년경에 이미 국밥이 나온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 국밥 문화가 쇠퇴한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밥과 국을 하나로 합쳐 간편하면서도 포만감이 큰 국밥은 지역과 계층별 다양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한국의 대중 외식 문화로 발전했다. 숙취 해소, 보양, 한 끼 식사 등 다목적으로 소비되는 것도 특징이다.

돼지곰탕의 뿌리는 아마도 돼지국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돼지국밥은 돼지 뼈와 고기를 오래 끓여 국물을 낸 뒤 밥을 말아내는, 부산과 경남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부산 항만 노동자 음식으로 정착했고, 한국전쟁 피난민 시기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진한 국물과 고소한 풍미로 부산과 경남 지역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노동자와 서민 음식에서 전국적 메뉴로 확산되어 숙취 해소와 포만감을 동시에 충족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에 따라 국밥의 스타일도 차이를 보인다. 부산형은 사골을 장시간 고아낸 뽀얀 백탕형이 주류이나, 일부는 맑은 국물도 공존한다. 기본 국물은 담백하게 내고, 식탁에서 손님이 새우젓과 다대기로 간을 조절하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기본은 수육 중심이고, 순대와 내장은 옵션으로 선택 가능하다. 토렴 문화가 일부 남아 있으며, '자신의 입맛에 맞춰 완성하는 국밥'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양산과 김해형은 사골 진탕보다는 맑고 담백한 국물이 주류다. 절제된 다대기 사용 경향이 강하며, 새우젓과 소금으로 기본 간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기본은 수육 중심이며, 순대와 내장은 부차적 선택지로 운용된다. 지방감과 냄새를 최소화하고, 맑은 곰탕 같은 개운함을 선호하는 경향이 특징이다.

대구와 경북형은 집집마다 다르나, 사골 백탕형과 맑은 형이 공존한다. 내장이 넉넉히 들어가 탁해지는 경우도 많다. 부산처럼 별첨보다는, 그릇에 양념장을 미리 넣어주는 집이 많아 체감 매운맛이 강하다. 순대와 내장이 핵심 토핑으로 기본 그릇에서부터 비중 있게 담기는 경우가 흔하다. 구수하고 칼칼한 풍미가 강조되며, 내장과 순대가 국밥의 주연으로 올라서는 지역적 특색을 보인다.


인상적인 것은 돼지국밥을 대하는 각 지역의 철학이다.
부산의 '각자 입맛에 맞춰 완성하는' 문화는 항구도시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반영, 양산·김해의 절제된 담백함은 내륙 농촌 지역의 소박함을,
대구의 칼칼한 맛은 분지 지형이 만든 뚜렷한 지역성을 보여준다.


하나의 음식이 지역마다 다른 철학으로 해석되면서, 돼지국밥은 단순한 향토음식을 넘어 각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자화상이 되었다. 뉴욕 한복판에서 13석 규모의 작은 식당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돼지곰탕 한 그릇에는 2천 년을 이어온 한국의 국물 문화와 지역의 정체성,
그리고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옥동식의 성공은 한식이 가진 깊이와 철학이 국경을 넘어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떠먹는 국밥 한 그릇이 세계 미식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진정성 있는 음식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되지국밥의 구체적인 조리비법과 부산 돼지국밥의 역사, 그리고 대표적인 맛집들을 소개하고, 국밥 문화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살펴보려 한다.



출처: 백년식사(주영하), 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


이범준 교수

미식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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