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우리는 그 시간만큼은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동안 커피에 빠져 브루잉을 할 때도 그랬지만 차는 커피와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커피가 잠시의 활력을 불러온다면 차는 마음속에 잔잔한 호수를 만들어줍니다. 물이 끓는 소리, 찻잎이 풀려가는 순간, 그리고 따뜻한 향이 퍼져오는 사이에 하루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집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만큼은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어디에도 쫓기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머물 수 있습니다.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짧은 순간, 찻잎이 천천히 피어나 향을 퍼뜨리고, 물빛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차를 마시는 과정에서 가장 고요하면서도 집중되는 순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내 잔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자칫하면 차의 색·향·미를 놓쳐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면 기다림은 얼마나 이어져야 할까요?
정해진 시간은 있지만, 꼭 ‘하나의 정답’은 없어요
차를 우리는 시간은 차의 종류, 찻잎의 크기, 물의 온도, 그리고 무엇보다 마시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차를 접하는 분들을 위해 기본적인 기준은 분명히 있어요. 그 기준을 바탕으로 조금씩 조절하며 나에게 딱 맞는 ‘맛의 지점’을 찾는 것이 바로 차를 즐기는 재미입니다.
찻잎마다 좋아하는 시간도 달라요
찻잎이 어리고 부드러울수록 짧은 시간에도 맛과 향이 금방 우러나기 때문에 오래 우리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아요. 반대로 잎이 크고 두툼하거나 발효 정도가 높은 차는 조금 더 시간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차 종류별로 기본 우림시간을 말씀 드려볼게요.
녹차 60~75℃ 1~2분 너무 오래 우리면 떫고 쓴맛이 강해집니다.
백차 70~80℃ 2~3분 잎이 부드럽고 향이 은은해 천천히 우려도 좋습니다.
청차 85~95℃ 2~4분 잎이 말려 있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홍차 90~100℃ 3~5분 진한 맛을 원할수록 오래 우리되, 5분 이상은 주의하세요.
흑차 95~100℃ 3~6분 후발효차로, 깊고 복합적인 맛을 낼 수 있습니다.
※ 잎차를 여러 번 우릴 때 2~3번째부터는 차의 온도가 식지 않도록 물 온도를 약간 높이고, 우리는 시간을 30초~1분씩 점점 늘려가며 우려도 좋습니다. (예: 1차 1분 / 2차 1분 30초 / 3차 2분)
시간은 ‘기술’이지만, ‘기분’이기도 해요
좋은 차는 시간 지켜야 맛있어지지만 너무 정답처럼 시간을 재기 시작하면 오히려 차의 여유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차를 우릴 땐 물에 잎이 퍼지는 것을 보며, 향이 올라오는 순간을 느끼며 ‘아, 이 정도면 마셔도 좋겠다’ 싶은 마음의 타이밍을 믿어보세요. 그 직관도 결국 차를 많이 마셔본 사람만이 얻는 감각이거든요. 잎이 작고 얇을수록 짧게, 잎이 크고 두꺼울수록 길게. 차를 우릴 때는 찻잎의 모양과 질감을 먼저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세요. 마치 상대방의 말투에 따라 대화 속도를 맞추듯 찻잎과도 호흡을 맞추는 일이에요. 차를 우린다는 건, 단순히 시간을 재는 일이 아니라 내 시간을 찻잎에게 잠시 맡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잠깐의 기다림이 만들어내는 그 한 잔이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부드럽게 풀어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