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부터가 아주 둔하다. 냄새도 잘 못맡아서 초밥집에서 일을 했을 때 상한 생선을 사용해서 40인분의 초밥을 만들어 전부 폐기하고 호되게 혼난적도 있을 정도로 후각과 시각 청각등이 다 둔하다. 이렇게 둔한 나도 변화를 알 수 있을까? 이 조그만한 알약 하나가 뭘 그렇게 달라지게 할까? 유투브에서 ADHD는 약은 진통제처럼 먹자마자 바로 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하던데.. 둔하디 둔한 나 자신은 신경을 쓰면 쓸 수록 어떤게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부터,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2018년부터 한 출판사와 나의 첫 번째 책 출판계약을 맺고 책을 써오고 있었다. 원래는 그 해에 출판을 할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물론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스토리가 계속해서 더해지는 탓도 있었지만 정확하게는 내가 글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출판 일이 3년째 미뤄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목표 날짜는 있었지만 담당자 님 께서도 너무 어렵다면 조금더 미룰 수 있다고 언지를 줄 정도로 다 써가는 원고를 마무리 짓지를 못해 고난을 겪고 있었다.
예전부터 잡아놓았던 몇가지 미팅을 끝낸 시간이 5시. 아직 글을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아직 시작하지는 않았는데. 왠지 이번주 안에 마무리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 수정원고 일정도 5번이나 미뤄지고 미뤄졌던 일정인데, 담당 편지자님께 호기롭게 카톡을 날렸다. 감을 잡은 것 같다고, 금주안에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놀랍게도 3일만에 기존에 요청했던 원고를 포함해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모든 원고를 완성해 넘길 수 있었다. 놀라웠다. 이게 무슨 느낌이지? 마치 리미트리스에서 나오는 브래들리쿠퍼처럼. (내 기준에) 초인적인 집중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이런적은 없었다. 살면서. 내가 집중하고싶으면 집중하고, 쓰고싶으면 쓰고싶은 내용들이 차근차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경험. 이런경험은 정말로 맹세코 처음이었다. 미칠 노릇 이었다. 사람들과 얘기하면 얘기하는 내용 말고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자체로 소름이 돋았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한 정신과 의사가 유투브에서 ADHD 환자 10명중 1명은 약물복용후 한마디로 ‘대박’이 난다고 하던데, 모르긴 몰라도 그 ‘대박’이 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나에게는 정말 ‘대박’으로 느껴졌다.
약을 먹자마자 3일안에 달라진 것
1. 3달이 넘게 (사실은 좀 더 오래되었다) 마무리 짓지 못했던 원고를 3일만에 마무리 할 수 있었다.
2. 상대방의 말을 듣는데 말을 들을 때 다른 생각이 안들고 그말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처음 이걸 느꼈을때 진짜 온몸에 전율이..;;)
3. 상대방의 기분변화나 반응들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상대방이 흥분한다고 내가 흥분하는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4. 걱정이 덜된다. 평소 같았으면 노파심이 너무많이 들었는데 그런 과한 걱정이 되지 않는다.
5. ADHD설문지 중 '규율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에서 나는 전혀? 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완전히 이해가 갔다.
나는 평소같으면 예를들어 은행에 서류를 다 완벽하게 챙겨가지 못해도 '에잇, 그까짓거좀 해주면 되지 엄청 피곤하게 하네..' 라는 말도안되는 생각을 했다. 좀 유드리있게 살지, 왜 이건 안돼지? 이렇게하면 안되나? 이런 끝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60억인구가 살고 5천만 인구가 살려면 규율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것인데 그거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 것이다... (충격)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엇다는것을 알게되었다는것 자체가 소름돋았다. 이와 일맥 상통하게 나랑 다르다는것을 틀린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아니라고 , 저사람은 틀린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만 했다. 그런데 진짜 나의 생각이 '틀렸'고 나랑 다른건 다른거구나 하는게 그냥 받아들여진다.
6. 상대방의 말을 끊지않고 듣게 되었다.
전화를 할때도 '어, 어, 어' 하면서 빨리 말을 하게 하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라고 늘 결론을 종용했다. 근데 이제 그냥 듣게된다.
7. 배가 부르거나 먹고싶지 않으면 안먹는다. 충동적으로 앞에있으면 입안에 넣어버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8. 뭐하나에 꽂히면 (예를들어 만두) 그 생각이 계~~~속 옆에 따라다니듯이 들고 결국 만두를 먹어야만 한다거나 하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 인데 어떤 걱정이 하루종일 따라오는 일이 없다. 그것이 나에게 엄청난 불안을 야기했는데 그래서 불안이 줄었다.
9. 집중 하려고 하면 집중이 된다. 소름..
10. 책이 2배속으로 읽힌다.
11. 다양한 생각이 많이 들때는 시간을 들여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한번에 한가지 생각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생각을 다 생각하는데 '시간'이 든다.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이 아니라 한번에 한개씩만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시에 많은 생각이 들고 한번에 결론이 나는데 왜 ? 그런데 OMG 정말 생각하는데 시간이 필요한거였다.
12. 내가 좋은 의도로 도와주려 했던 많은 부분들이 충분히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들이 나를 슬프게 했다.
13. 주변에서 내가 왜 공감을 못하는것 처럼 보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부끄러운 상황에 처한 영화 장면을 보면 도저히 보지 못해서 채널을 돌리기도 하고 슬플때는 누구보다 심장이 저밀정도로 눈물이 난다. 분명 공감능력에는 문제가 없는데 친구들 끼리 슬픈 얘기를 하고 있을때 나혼자 자꾸 다른 생각이 나서 다른 감정이 들때가 있었다. 예전엔 내가 싸이코페스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공감이 안가는 것이 아니라 집중을 하지 못해서 사이코패스 같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14. 생활 시간에 정신이 깨어있다는 느낌이 들고 중간에 졸립지 않는다. 약기운이 떨어져 갈 때 쯤인지는 모르겠는데 (약은 늘 9시경 복용했다) 11시쯤되면 졸렸다. 아주 오랜만에 졸린 기분이었다. 그전에는 늘 새벽이 되어도 졸리지 않았다.
불편했던 것
1. 분명 영화 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 라고 말하고, 소리가난다 라고 말했는데 냄새를 맡았어 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 총 4회정도 일어났는데 그걸 자각했을 때 조금 무서웠다..
2. 약을 먹기 전 부터 근본적으로 워낙 불안해서 심장이 늘 두근두근거렸었다. 전체적으로는 감소한듯 한데 어떤 순간에는 또 갑자기 두근두근 거리기도 한다 (그전과는 약간? 다른 양상의 떨림같기도하다) 기분탓인지 진짜 다른 불안함인지 모르겠다.
3. 3일째 저녁에 갑자기 손이 약간 떨리고 흥분되는 느낌을 10분간 받았다.
** 메틸 페니데이트 1957년 ADHD 치료제로 약 60년 이상 사용되었지만 임상적으로 위험성의 문제가 되지않은 안전한 약물이다. 2000년대 초에 개발된 콘서타는 12시간 지속되는 약이며 아토목세틴과 콘서타 같은 약들은 굉장히 개발이 잘 되어서 더욱 안전하고 효과가 증진되었다. 하루에 한번 투여가 가능해 약물복용도 편리하다. 현재 사용하는 ADHD 치료제는 내성이 없다. 동일한 효과를 보기위해 약물의 양을 높여야 하는 내성이 없는 안전한 약제이며 중독이 없다. 오히려 ADHD 약물 치료를 잘 받으면 알콜이나 각종 나쁜 약물, 음식, 게임에 중독되는 효과를 더 떨어뜨려준다. 대개의 병이 그렇듯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는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주의 집중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발당을 일반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시켜준다고 한다.
이토록 많은 변화중에서도 단연 가장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단 3일만에 나의 30년동안 가지고있었던 가치관이 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삶이 달라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실 한편으론 공포스럽게도 했다. 이게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심히 의심이 들었다. 조그마한 무게가 1그람도 안될 것 같은 작은 알약이 내몸속에 들어가 이렇게 커다란 변화를 준다는 것이 정말로 믿기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