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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Aug 27. 2021

진단을 받기 8개월 전


 나는 고등학생 때 부터 가장 친하게 지내온 친구에게 '손절'을 당했다. 정확하게 얼만큼 친했냐고 하면, 고등학교 1학년때 같은반으로 친구가 되어 스무살때 처음으로 같이 부산여행을 2박 3일로 다녀오고 그 다음해에는 내일로를 7박 8일로 다녀오고, 첫 해외여행이자 어학연수 필리핀도 8주간 같이갔던 친구. 성인이 되고 나서도 꾸준하게 늘 연락하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 그친구에게도 내가 제일 친한 친구라는것을 의심한적 없는 친구. 그런데 그랬던 친구에게 13년만에 정확하게 각종 SNS에서 차단 을 당한것이다. 지금 시대에 SNS차단이란 나와의 관계를 단절 하겠다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친구에게 차단을 당한뒤 지속적인 우울감에 시달려 왔다. 일단 가장 큰 원인은 ‘손절당한 이유’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차단을 당하기 2-3개월 전부터 ‘조금 다르다’ 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아주조금. 그냥 매일매일 카톡을 끊이지 않고 하다가 한 두세달 전 부터는 카톡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10년동안 알고 지내면서 간혈적으로는 카톡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심각하다고 생각할 만큼 이렇다할 문제를 느끼지는 못했다. 물론 가까운 친구가 물어보기는 했었다. “미소야 혹시 그친구랑 무슨 문제 있는거 아니야?”라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엥? 왜 그런생각을 해? 전혀 그런거 없는데?! 우린 너무좋아!” 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뒤로도 친구는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그 친구가 조금 서운해 보이더라, 네가 좀 연락을 해보는 것은 어떻겠냐 하는 말들을 했었다. 그 때 까지도 절대. 절대로.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무리 나에게 조금 서운한 부분이 있을 지라도 내 의도가 누구보다 그렇지 않다는걸 알아주는 친구이기 떄문에 문제가 없을것이라고 나는. 자만했다. 그리고 몇 달뒤 우려했던 대로 나는 친구에게 정확하게 ‘손절’을 당했다. 


 견디기힘든 8개월 이었다. 친구와의 이별은, 지금까지 겪어본 어떤 전 남자친구와의 이별보다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매일 매일 생각했다. 놀랍게도 8개월간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첫 한두달은 분노였고 두 번째 세 번째 달은 자책이었다. 네 번째 달이 넘어서야 상황을 수용하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섯 번째 달이 되어서야 외부 요인을 배제하고 오로지 나에대한 문제만 집중하게 되었다. 사실 진단을 받기 한두달 전까지 매달 친구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었다. 첫째달은 너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수 있냐는 분노의 메시지로, 두 번째 달은 내가 미안했다는 사과의 메시지, 그 이후에도 꾸준하게 다시한번 나와의 관계를 되돌릴 수 는 없을까 하는 미련섞인 내용들을 보냈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엄마 같은 친구였다. 친구에게 사회화를 배웠다고 할 정도로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할 때, 하나부터 열까지 많은 부분을 가르쳐 주는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가끔 웃으며 이런 말을 하긴 했었다 “ 야, 나 진짜 20대 중반에 너 손절할 뻔 했잖아” 그 때는 웃으며 넘어갔던 말이었는데, 진짜로 이런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정말 0.1%도 나의 옵션에 있지 않은 일이었다. 얼마나 힘들면 나를 차단했을까. 내가 얼마나 그친구에게 힘든 존재였을까. 그 친구를 떠나보내며, 그 많은 과정속에서 나는 ‘나’에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서른이 넘어서, 하나의 사업체를 멋지게 성공시킨 대외적으로 CEO 타이틀을 달고있는 청년 사업가가 아직도, 아직도 본인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대조되어 더 자조적이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사건이 근본적으로 ‘나’에대한 질문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 자체를 몰랐음에도 질문을 할 곳이 오로지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정도의 충격이 아니었다면, 만약 그 친구가 계속 내 곁에 남아 나를 계속 참아주었다면 나는 절대 나에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이 병에 대해서도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돌리고싶은 그 일이 나에게는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난 꾸준하게 대인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때 까지는 간혈적으로 꾸준한 따돌림을 당했다. 지금까지 그 이유는 내가 주걱턱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래턱이 21미리나 나와있는 심한 안명 비대칭을 앓고있었고 20살이 되면서 수술치료를 통해 교정을 하게 되었다. 물론.. 꽤 큰 부분이 그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일을 계기로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내가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한 이유 

 

 내가 정말 친구에게 미안했던점은 이런것이었다. 친구가 정말 아찔한 교통사고를 당해 일부 뇌손상 으로 인한 후각상실을 겪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이거 맡아봐” 라고 한것이다. 친구가 정말 속상해 하면서, 나 냄세 못맡는거 알잖아. 라고 말하는데 정말 뒤통수를 해머로 때려맞는 것 같았다. 이렇게 내가 정신이 없을까? 친구의 힘든일을 이렇게 새까맣게 까먹을 정도로 생각이 없는것일까? 심지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이고, 그친구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누구보다 걱정을 했던 나 인데. 정말 이정도로 내가 무신경 하다는 것인가? 내 자신에게 정말 경멸의 시선을 보내고싶었다. 아.. 나 자신.. 진짜 아무리 멍청해도 이런걸 까먹는게 인간이냐?.. 


 그리고 흥미가 없는 분야에는 전혀 집중을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야기가 ‘나’를 중심으로 흘러갔던 것이 관계형성에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많은 시간동안 ‘나’에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 또한 대인관계를 망치는 주범이었다. 내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미친 듯이 다양한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꼭 그친구의 말을 끊고 ‘야 말끊어서 미안한데 이거 지금 얘기안하면 또 까먹을거같아서’ 하며 내이야기 혹은 내가 이야기를 하곤 했다. 말을 할때 디폴트 값은 다급함. 상대방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끼어드는건 불문율. 지금 얘기를 하다가도 다른 이야기의 주제가 너무 다양하게 머릿속에서 터지다 보니 이것말하고 저것 말하고 말할 게 너무많아 계속해서 말을 해야했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이 맥락과 일맥상통 한다. 오로지 모든 대화가 '내가 관심있는 주제'가 아니면 집중을 하지 못하니, 결국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싶은 말만 하게되는 경우가 많았다. 성인이 되어 '예절'이라는것을 배우게 되면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상대방의 말에 기울이거나 잘 들어주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지만 그 과정 역시 녹록치는 않았다. 노력을 해야한다는것 자체가 관계에 있어서 어려운 일이었다. 


 참지못하고 바로바로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 또한 관계형성에는 엄청난 어려움을 준다. 상처받는 것을 염두하지 않은채 배려없이 내뱉은 말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는 화살이 되어 꽂힌다. 내 한마디가 어떤 의도로 그 사람에게 들릴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니 관계를 형성하는데에는 큰 걸림돌이 된다. 그리고 사실 이기만 한다면 충동적으로 말을 해버린다. 돌이켜보면 예전부터 입이 가볍다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친구의 비밀을 쉬이 말하는 친구를 누가 친구로 두고 싶어할까. 


  한가지 장점아닌 장점이 있다면 어릴적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나는 나를 돌아보는데, 나를 탐색하는데에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보통 청소년기에는 특히 친구의 것이 좋아보이고 친구들이 하는것을 따라 하게 되면서 자신을 찾기 보다는 상대방을 복사하려는 성향이 많은데, 나는 복사할 대상이 없다보니 '나'에 대해서 누구보다 계속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왜 다른거지? 나는 누구지? 내 육체안에 나는 무엇이지? 나는 육체가 죽으면 사라지는 것일까?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 과정의 기록을 통해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는것. 상처 투성이 이지만 지금까지 내 화살을 맞고 나를 견디고 지금까지 곁을 내어준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것. 내가 평생 갚아 나가야 할 마음의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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