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때의 일이다. 엄마랑 아빠랑 택시에 탔다. 아빠는 조수석에, 나랑 엄마는 뒷자석에. 그때당시만해도 콜택시를 하는 기사님 옆에는 늘 무전기 같은 지직지직 소리가 나는 이상한 기계를 설치해서 “우두동에서 샘밭시장까지, 우두동에서 샘밭시장” 이런식으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얘기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손님 입장에서는 상당히 시끄럽고 불편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콜택시 안은 무전기 소리로 시끄러웠다. 유독 그날은 좀 더 심했다. 비가오는 날이었는지 콜이 무지하게 들어왔나보다. 그 때 아빠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 참, 일본에 가니까 이렇게 시끄럽게 안하고 기사님들이 이어폰을 착용해서 조용하게 가던데,, “. 잉? 아빠가 일본에 다녀왔다고? 내기억에 아빠는 일본을 간적이 없는데? 어릴 때부터 일본문화를 좋아했던 나에게는 아빠가 일본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배신감이 느껴졌다. “아빠!! 일본가본적 없잖아 ?! 언제갔었어? 난 왜 안데리고갔어!!”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당황했지만 계속 말씀을 이어나갔다 “아니 일본은 참 그런면에서 본받을 점이 많은 것 같아요 .. “ 나도 아랑곳 하지않고 계속해서 아빠에게 소리질렀다 “아빠!!!! 언제갔다온거야? 아빠 일본가본적 없잖아!! 언제갔어 언제갔어!! “ 보다못한 엄마가 내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아야! 엄마 왜꼬집어 왜꼬집어!! 아파!!! 아빠 언제간거야? 나 왜 안데리고 갔어!!” ……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아빠에게 꿀밤을 맞았다. 지금생각해봐도 꿀밤에서 끝낸 아빠가 존경스럽다. 아직까지도 우리가족이 모이면 이때를 회상하며 웃음 바다가 된다.
정말 눈치가 없다. 정말로. 아니 이렇게까지 눈치가 없을정도인가? 싶은데 정말 눈치가 없어서 그런게 맞다. 내가 말한 이 말이 그 다음에 어떤 상황을 야기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 “사실” 이기만 하다면 “어떤 상황”임에도 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많아서 정말 나열 할 수는 없지만 눈치가 없어서 많은사람에게 민망함을 안겨주고 불이익을 당한적도 있었다. 약 25살 이전까지는 극심했고 이후로는 사회화를 통해, 머리로 기억을 해서 ‘아 쟤좀 눈치없네’ 라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와,, 진짜 인간이냐?’ 이런 소리를 듣진 않았다. 약을 먹기전엔 그랬다.
눈치가 없다보니, 친구들에게도 참 민망한 상황을 자주 초래했다. 한번은 친한 친구와 회사를 같이 다녔는데 회사 대표님과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뭔가 웃기고 싶었다. 나는 자학개그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때엔 왜그랬는지 친구의 별명이 생각나서 대표님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무리수를 던졌다. “대표님! 소영씨 대학때 별명이 뭔지 아세요?! 토끼에요 토끼” 그 때 친구의 표정을 읽을줄 알았다면, 아니, 정말 조금의 눈치라도 있었다면 거기서 끝냈을텐데. 나는 폭주했다. “귀여워서 토끼가 아니라. ‘토에 끼가 있어서’ 줄여서 토끼에요. 푸하하하 너무웃기지않나요?” 그리고 마지막 확인 사살까지 날렸다. “아니 저희집 베개에 다 토하고 화장실까지가서 하수구에도 다 막히고 제가 다 손으로 받고 그랬다니까요?” 다시한번 말한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고. 회사 대표와 ‘밥’을 먹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손절을 당했다. (지금은 다시 오해를 풀고 친하게 지낸다. 물론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친구의 말을 빌자면 그때 자신의 표정은 정말 썩어있었고, 나는 자기를 맥이려고 온갖노력을 하는 정신병자인 줄 알았다고한다. 그리고 정말.. 밥먹는데 메스꺼울 정도로 설명을 리얼하게 잘했다고도 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ADHD를 겪고있는 환자의 입장에서 변론을 하자면, ‘입장바꿔 생각해 봤을 때’ 난 괜찮다고 생각해서 저지른 일이 많다. (물론 이말은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이제 안다. 이해 할 수 있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른 것 임으로) 다만 의도만은 정말로 결백하다. 여타 다른 목적이 있어서 눈치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웃기고싶다’ 던가 ‘이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줘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와 같은 놀랍지만, 이타적인 의도였다.
물론 의도가 어찌되었건 많은사람이 나로인해 불편해 하고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ADHD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불편함을 이해해 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리고 나는 이런 특성 때문에 대인관계에서의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주변에 많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관계를 일방적으로 차단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이 지금까지 남아서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한번더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곁을 내어주는 친구들은 나에게 무수히 많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나의 의도를 이해해 나에게 한번더, 한번더 기회를 주었던 천사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과오들을 하나씩 깨달을 때 마다 다시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ADHD의 최고의 장점 (1) 눈치가 없다.
일단 나는 방어력이 만프로다. 이게 무슨소린고 하면.. 아무리 나를 맥이려고 돌려 까도 절대 나를 맥일 수 없다. 하하하하. 아무리 나에게 막말을 해도 “아그러니까요! 제가 그런다니까요? ㅋㅋㅋ 너무웃기지않아요?” 하고 넘기고, 어감상 내가 상처받아야 할 부분이면 “헉 설마 이거 저 들으라고 말씀하신건 아니시죠?” 라고 해서 오히려 상대를 난처하게 할 때도 있다. (나중에 어떤 책에서 읽으니 이게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탁월한 방법중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사업을 하면서 이 특성의 장점을 많이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보통 왠지 높은사람을 만나거나 소위 잘나가는 사람을 만나면 잘보이고싶은 욕구가 들 수 있는데 근본적으로 나는 눈치를 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눈치를 볼 생각자체를 하지 못한다. (어줍짢게 봤다가 오히려 더 많은사람을 곤란하게 한 경험이 많아서) 한두번 눈치 없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애당초 나에게 ‘눈치껏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기대가 낮으니 기대를 채울 필요가 없어서 좋고 간혹 눈치껏 어떤일을 하면 칭찬을 받을 수 있다. 하하하.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내가 하는말에는 신뢰가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조금 어리지만 대표로써, 많은 조직원들과 신뢰를 가지고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눈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에 기반하는 말은 하고싶을때 하는편이다. 물론 이제 어느정도 사회화가 되었고 약을 먹으면서 더욱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어 상처가 되는 말은 추가적인 ‘쿠션워드’통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쿠션워드란 ‘혹시라도 서운할 수 있는데 업무적으로만 받아들여 주세요’와 같이 어떤 말을 하기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그 전에도 조금 잔인하긴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조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세요.”라던지 “이런 부분은 큰 고민없이 한게 티가 나네요, 제가 먼저 언급드렸던 이런저런것들을 확인하셨으면 이렇게 해오지 않으셨을텐데.” 라던지 팩트로 폭격을 하는데 이런 말을 들을 당시에는 빠꾸없는 직접적인피드백에 정신을 못차렸지만 시간이 지나 점점 적응해서 빠르고 정확한 피드백을 통해 업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어 다들 나의 이런부분을 장점 으로 뽑아준다. 나는 어줍짢게 상대방의 눈치를 봐서 상대방에게 잘보이겠다 라는 의도조차 갖지 않는다. (무조건 실패함으로) 그리고 더 좋은 장점은 내가 한번 칭찬을 하면 다들 정말 진심으로 받아들여 준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칭찬을 헤프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기 위해 ‘밑밥’개념으로 칭찬을 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며 정말로 내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진짜 칭찬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칭찬을 하면 다들 진심으로 기뻐하며 에너지를 받는다. 나의 칭찬에는 어떠한 의도도 숨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기 때문이다.
이시대에는 더더욱 ‘진정성’이 중요해진 시대라고 본다. 이제는 얄팍한 거짓말로 누구도 속일 수 없다. 이런 시대라면 조금은 사람들에게 ADHD스러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 역으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