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근 5주간 스트레스가 많았다. 사업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6년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1년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최근 5주는 맹렬했다. 한주에 2, 3개의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특히 작년부터 지금까지 직원이 급격하게 늘면서 예기치 못한 자잘한 사건들이 많았다. 그리고 식품을 다루는 사업이다 보니 모든 상황에 예민했고 그러다 보니 늘 긴장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직장인들에게도 3,6,9로 한번씩 현타가 쎄게 온다는데 나도 그 시기일 지도 모르겠다. 다만 요즘엔 미치게 짜증이 치밀때도, 가끔은 미치게 무기력할때도 있다. 다른사람도 이런거 아닌가? 현대인들은 다 그렇다고 뉴스에서도 주변에서도 들었다. 나만 이런건 아니다. 나만 이렇게 힘들고 지치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싫고 주말이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고 한시간만 더 잤으면 좋겠고, 침대에 누으면 조금만 더 핸드폰 하고싶고 이건 누구나 그런거잖아?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그렇다, 나도 그저 남들이 하고싶어하는걸 조금 더 하고싶어하고 남들이 하기싫은게 조금 더 하기싫었을 뿐이다. 남들은 먹고싶은 음식을 참는 것 보다 조금 더 참기힘들어 하고, 먹고싶었을 뿐이고 운동은 조금더 그냥 하기 싫었을 뿐이다. 그리고 1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살도 10키로가 쪘다. 그래, 이거때문일 거다. 코로나다 뭐다 다들 집에서만 있어서 코로나 블루라고 하잖아. 집에서 있느라 살도 많이 찌고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우울증인가?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 나는 내가 우울증이라는 생각은 해봤어도 ADHD일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다만, 이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말이다. 정말 간혹 누군가에게 '미소님은 조금 산만하시네요 ㅎㅎ' 라는 말을 듣고서는 '그러니까요, 저도 제가 ADHD 인 줄 알았다니까요 하하하' 라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절대 나와는 ADHD가 상관없을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영상을 보는데, 말하다가 할말 까먹는거 이거 나랑 똑같은데? (이 영상 : YOUTUBE 씨리얼의 ‘성인 ADHD환자 80%는 다른 정신질환을 동반한다.’)
내가 ADHD인가? 라는 질문이 내 머릿속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까지 아니라고 생각한게 더 이상한거같기도 하다. 결국 고민고민을 하다가 근처에 ADHD전문 병원에 예약을 했다. 초진은 예약이 안된다고 해서 바로 병원으로 갔다. 긴 문답을 작성하고도 한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오마이갓.. 난 내가 ADHD인지 지금당장 궁금한데 , 한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마음이 싱숭생숭 했다. 이럴땐 묘책이 있다. 친구한테 얘기를 해야지. 친구한테 영상을 보며 고민했던 부분 그리고 내가 공감하는 부분과 고민되는 부분을 털어놨다.
그 때 친구에게 나열했던 문제는 이런것들 이었다. (물론 친구도 이 문제에 대해 격하게 공감했다)
하나, 늘 딴생각을 한다.
둘, 말을 듣다가 포기한다
셋, 말하면서도 뭘 말하는지 까먹는다.
넷, 상대방이 중요한 말을 해도 까먹는다.
친구가 대답했다 "미소야, 니얘기를 다 들어보니까 너가 그 ADHD인가 뭔가 하는 병이 아니라면 더 문제가 있는거 같아. 인성에 " 푸하하 맞는말이다. 나열해 놓고 보니 진짜 인성 파탄자이다. 오히려 병이 아니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는것 같았다.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ADHD라고 해도, ADHD가 아니라고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ADHD생각때문에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우선 유투브에 '성인ADHD', 'ADHD 내향형', ADHD치료, ADHD진단 등 ADHD관련된 영상은 모조리 검색해서 하루종일 영상을 봤다. 보면 볼 수록 더 나 같았다. ADHD가 머릿속에 들어와서 의심의 뿌리가 들어찬 순간부터는 내가 진짜 ADHD인지 아닌지 알아야 이 생각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든 당장 가봐야 할 것 같았다.
화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당장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출발했다. 춘천에 있는 작은 병원이었는데 다행히 몇 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상담실에 들어가니 바로 설문지 두장을 건내 주셨다. 유투브에서, 온라인에서도 이미 많이 볼 수 있는 설문지였다. 아니, 전문 병원까지 왔는데 여기서도 이걸 주시나.. 이미 많이 검사해봐서 이런걸로는 어려울 것 같은데.. 반신반의 하며 설문지를 채웠고 역시 설문지를 보신 의사 선생님 께서말했다. " 음,, 점수는 일단 ADHD가능성이 있네요" 흠.. 나도 그건 아는데, 이렇게 밖에 판단 할 수가 없는것인가? 의심을 거두기가 어려웠다. "선생님, 혹시 여기서는 전두엽 검사나 주의력 검사같은 다른 객관적인 지표로 ADHD를 검사할 수는 없나요?" 질문을 했다. "ADHD전문 병원이 아니라, 기타 검사 도구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타 도구로 검사 한다고 하더라도 ADHD가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주의력이 낮아질 수 도 있기 때문에 진단을 내리기 위해선 병력에 대해서 상담을 통해 전문의가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우선 ADHD는 본인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예전에 나의 모습에 대한 나의 판단 그리고 현재 나의 모습에 대한 친구들과 가족들의 판단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어떤모습이셨나요 ??"
예전 기억을 더듬었다.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때부터 일단 난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늘 주변인에게 '산만하다'는 평가를 듣고 살아왔다. 좀 특별한게 있었다면 맞춤법을 잘 못 맞춘다는것 정도? 받아쓰기는 늘 꼴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때는 어땠지? 수학을 아주 좋아했다. 3년 내내 수학부장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그런 수학도 원리와 기본 공식을 배울 때는 꼭 가장 이해를 못해서 여러번이나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고 다시 복습을 해야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좀 이해가 느린 편이지만 꼭 활용 편인 마지막 챕터. 그러니까 수학 과목에서 점수 변별력이 있는 마지막 4점짜리 하이라이트는 내가 가장 잘 풀었다. 전교 1등도 내가 가르쳐 주기도 하고 반에서 꼭 1-2등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수학 외에 과목은 정말 잼병이었다. 수학은 그나마 좋아하는 과목이어서 좀 잘했던거지 전체적으로 성적은 다 낮았다. 체육, 기술가정 같이 내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왜 외워야 하는지 모르겠는 과목에서는 늘 전교 꼴등을 맡아놨다. 고등학생때는 어땠는가. 학교에서 선택하지도 않은 과목을 혼자공부해서 수능은 대학 수석을 할정도로 잘봤지만 내신은 올 9등급 이었다. 그런데 이런건 다른애들도 다 그런거 아닌가? 좋아하는건 잘하고 관심없는건 잘 못하고. 특별히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살았다.
“지금은 어떠신가요? 주변에서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리던지, 일상에서 불편하신게 있으신가요?” 질문이 이어졌다. 현제겪고 있었던 문제들과 주변인들의 평가등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약 30분정도 였을까. 그 뒤로는 어떤말을 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성실하고 솔직하게 묻는말에 대답을 했고 그렇게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그래, 나만 이런게 아닐거야 많은 사람이 ADHD를 의심하던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ADHD일리는 없잖아?’ 하는 마음이 나를 상담에 집중하지 못하게 괴롭혔다. 그리고 드디어 진단을 내리셨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ADHD라고 진단할 수 있겠네요.”
놀랍게도 진단을 받으면 어떻게 할 줄 모를 것 같았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단을 받았을때엔 나도모르게 주륵 눈물이 났다. 31년간의 세월을 나의 본성을 거스르며 살아온 내자신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사실 좀 어필을 해보기도 했다 "선생님, 사실 제가 성격이정말 이렇거든요. 진짜 ADHD가 맞을까요?" 선생님께서는 딱 선을 그으며 말씀해 주셨다. "제 소견으론 당장 약물치료를 권장드릴정도로 확실합니다. 아마 약물 복용하시면 상당히 좋아지실 거에요." OMG.. 진짜구나, 진짜 내가 ADHD구나. 진짜, 너무, 너무, 신기하다.
내가 ADHD 환자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마치 나에게 30년 만에 배꼽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다리 한쪽이 짧은데 왜 나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하지? 하고 자책했던 삶. 나에 대해 이렇게나 몰랐구나.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큐브를 마지막에 맞출때의 느낌. 모든게, 하나로 정의되는 느낌. 아.. 그래서 그랬구나.
진단을 하고 나서는 내가 복용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에 대한 약에대해 설명을 해 주셨다. 몸무게에 따라 mg수를 다르게 한다고 하시며 나에게 가장 흔하게 쓰이는 콘서타 18mg을 복용하길 권유하셨다. 드디어, 공식적으로 ADHD를 진단받은 첫날. 약물치료를 하게 되는구나. 걱정이 되면서도 설레기 시작했다.
진단받는날의 기억중 가장 우스웠던 것은 약물치료를 권장하는 선생님에게 마지막까지 ADHD가 아니라 성격인 것 같다며 질문을 했는데, 진료비를 계산하려고 보니 카드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갔던 병원은 현금이체를 받지 않고 있어서 다음 진료때 계산을 하기로 하고 처방된 약을 받아왔다. 혼자 앉아 한참을 웃었다. 진짜 다른사람은 이렇게 깜빡하는게 일상이 아니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