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길을 찾는다는 것

그 어느 것도 틀리지 않았다.

by 디프렙 아카데미



처음부터 잘될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렇게 끝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LOKAL’ 프로젝트는 디자인팀의 두 번째 큰 도전이었다.
그들은 이 작은 서비스를 ‘누군가의 첫 화면’으로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기록 방식.
지금껏 해본 적 없는 기획이었기에 더 애정을 쏟았고, 누구보다 믿고 밀어붙였다.

하지만 세상은 결과만으로 판단했다.


투자 유치는 연이어 미끄러졌고, 예상보다 복잡해진 협업 구조는 프로젝트를 서서히 잠식해 갔다.
론칭은 몇 번이나 미뤄졌고, 끝내 회사는 ‘보류’라는 단어로 이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날 아침, 회사 게시판에 올라온 공지에는 짧게 “LOKAL 프로젝트는 내부 사정으로 종료한다”는 문장만 적혀 있었다.


이서는 모니터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진짜 끝인가?
마치 책을 덮지도 못한 채 놓아버린 기분이었다.
폴더 안에는 여전히 초안 스케치가 남아 있고, 피그마에는 리뷰되지 못한 컴포넌트들이 그대로였는데.
이걸 어디까지가 실패라고 해야 할까.


점심시간, 식당에선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조용한 숟가락 소리 사이로, 각자의 감정이 흘렀다.






며칠 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창희는 회의실로 팀원 둘을 불렀다.
탁 트인 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비치는 그 공간에서, 그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이번 프로젝트… 잘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어 미안해요.
그리고… 저는 이번 프로젝트를 끝으로 나가려고 해요.”


이서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지민 대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그의 표정 역시 말없이 복잡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 실패 때문은 아니에요.
작년부터 고민해 왔던 거라서. 이번 기회에 결심이 선 거죠.”


창희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팀은 곧 안정을 찾을 거예요. 두 사람 모두 잘하고 있고…
솔직히, 나는 이제 물러날 때가 된 것 같아요.
좋은 흐름을 이어가려면,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하고.”


말끝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이서는 그 말이 얼마나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며칠 후, 팀 채널에 올라온 간단한 퇴사 공지.
그리고 창희가 자리를 정리하던 그날 오후, 세 사람은 마지막 티타임을 함께했다.


“팀장님 진짜 마지막인 거예요?”
알고 있었지만 아쉬움을 담아 이서가 물었다.


“네. 이번 기회에 좀 정리하려고 해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일해보고 싶었거든.
이젠 조금 더 천천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창희는 덧붙여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함께한 시간이 짧진 않았죠.
무엇보다, 여러분 덕분에 이 시간들이 의미 있었어요.”


박 팀장은 그렇게 퇴사를 조용히 밝혔다.
긴 말도, 아쉬움도 길게 남기지 않았다.
평소처럼 담백한 어조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 틈을 깨듯 이지민 대리가 조용히 물었다.
“팀장님 나가시면, 우리 팀도 많이 바뀌겠네요.”
박 팀장은 미소만 지었다.






그날 퇴근길, 이서는 지민 대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 대리님은, 고민 안 하셨어요?”


창밖을 바라보던 이 대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당연히 했어요.
근데… 나는 아직 여기에서 더 해보고 싶었어요.”


“대리님,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익숙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무언가 끝을 맺지 못하고 옮기고 싶진 않았어요.
그리고… 좋은 동료들이 있으니까.
그게 나한텐 꽤 중요한 일이었어요.”


지민의 말은 특별한 결심처럼 들리지 않았지만,
이서는 오히려 그래서 더 단단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의 선택에는 때로 더 많은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회사 복도 끝, 익숙한 창가에 앉아
이서는 처음 이곳에 왔던 날을 떠올렸다.
뭐든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고,
모르는 걸 들키지 않으려 애쓰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일이라는 건, 결국 나답게 해 나가는 방법을
천천히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서는, 여기서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게 잘한 선택인지, 나중에 후회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마음만은 분명했다.


‘누구처럼 말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소박한 환송회가 끝난 며칠 뒤, 박 팀장의 책상은 조용히 비워졌다.

그 자리를 지날 때마다
이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곤 했다.


지민은 남기로 했고,
창희는 조용히 떠나기로 했다.


누가 더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서 역시 마음 한편,
아직 선명하진 않지만
자신의 길이 어디론가 이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떤 길은 빠르고,
어떤 길은 느리고 조용하다.
누군가는 돌아가고,
누군가는 멈췄다 다시 나아간다.


그 모든 길엔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어느 것도 틀리지 않았다.


결국, 일한다는 건
결정하고, 머뭇거리고, 다시 나아가는 걸 반복하며
조금씩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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