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면접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길었던 첫 출근의 하루가 끝났다. 이서는 사무실 문을 닫으며 긴 숨을 내쉬었다.
아침의 긴장감과 하루 동안의 어색함이 뒤엉켜 묘한 피로가 밀려왔다.
처음엔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긴장했지만, 이제는 조금은 적응했다는 안도감이 들어 다행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선선한 저녁바람이 불어왔다. 종일 사무실에서 화면만 바라보다
바깥공기를 마시니 복잡했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천천히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녁의 거리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바쁘게 걸어가는 발걸음들,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는 직장인들,
버스 정류장에서 피곤한 듯 서 있는 사람들. 이제 자신도 이들과 같은 ‘직장인’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어색하면서도 기뻤다. 퇴근길은 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미리 확인해 두었던 정류장까지 천천히 걸어가 벤치에앉아 이어폰을 꽂고,
평소 즐겨 듣던 92914의 'Sunset'을 재생했다.
이서는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낯설지만 새로운 감정들이 마음속을 채워주었다.
문득, 몇 달 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수많은 공고를 뒤지고, 포트폴리오를 반복해 수정하던 나날들. ‘툴 능숙자’, ‘트렌디한 감각’ 등의 조건을 볼 때마다 자신이 그에 부합하는 사람인지 의심하던 순간들. 때로는 경력직 공고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아 허탈해졌고, 또 어떤 날은 야근이 잦다는 설명에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슴이 뛰는 기업을 발견하면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새로 쓰고, 밤늦게까지 포트폴리오를 고쳐 나갔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 끝에 세 곳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다.
면접 제안을 받았을 때 기쁨보다 두려움이 컸다.
‘내가 과연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내 작업을 이해해 줄까?’ 하는 불안감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포트폴리오 발표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내가 맡았던 역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예상 질문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든 것이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서는 불안을 꾹 눌러 담고 차분히 준비를 이어갔다. 포트폴리오를 다시 보고 예상 질문 리스트를 작성하며, 답변을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각 회사마다 어떤 관점에서 평가받을지 생각하며 포트폴리오 발표 연습을 반복했다. 특히 디자인 결정의 ‘이유’를 분명히 정리하고, 사용자 중심의 문제 해결 접근법을 강조하고자 노력했다.면접이라는 건 단순히 말 잘하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디자이너로서의 과정, 철학, 태도를 말로 전달하는 일이었고, 그것이 바로 진짜 리허설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세 번의 면접. 버스 도착 시간이 가까워지자 그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첫 면접은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이 회사는 면접 전 사전과제로 자사 웹사이트 메인 페이지 리뉴얼을 요구했다. 이서는 경쟁사 분석과 사용자 흐름을 예상하여 기존보다 직관적인 디자인을 구상했고, 색상과 정보구조까지 세심하게 고민해 마감기한까지 수정을 거듭하여 제출했다.
하지만 면접 당일, 자신을 대표라고 소개한 피곤한 얼굴의 면접관은 서둘러 면접을 시작했고
보란 듯이 형식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이름이 어떻게 되셨죠? 아 윤이서 씨”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진행합시다”
이서는 형식적인 질문에도 준비한 답변을 차분하고 상세하게 답변하고자 노력했고
자연스럽게 준비한 포트폴리오와 사전과제를 소개하였다. 그러자 뜻밖에 질문이 나와버렸다.
"어… 사전과제가 뭐였죠? 아, 웹사이트였나? 그럼 혹시 간단한 SNS 이미지 같은 것도 만들 줄 아세요?"
면접관은 이서의 준비와 열정에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했다. 마치 디자이너는 언제든 교체 가능한 존재처럼.
면접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이서는 깊은 허탈감을 느꼈다. 밤늦게까지 준비하고 기대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예 열어보지를 않네.. 이럴 거면 왜 사전과제를 하라는 거야..”
면접자리에서 듣는 과제물의 피드백은 두려웠지만 이렇게 무관심한 태도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면접을 마친 이서는 회사를 보는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했다.
“면접은 나도 회사를 평가하는 자리다.”
그리고 이 상황이 앞으로도 겪게 될 현실일까 큰 걱정이 몰려왔다.
두 번째 면접은 오래된 웹 에이전시였다. 긴 역사와 규모에 이서는 나름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깔끔한 면접실, 체계적인 응대, 하지만 이내 본인을 파트장이라고 소개한 면접관의 공격적인 태도가 분위기를 바꿨다.
“이 포트폴리오를 본인이 다 만든 게 맞아요?”, “솔직히 이런 수준으로는 우리 회사에서 힘들 것 같은데요.”
“우리 회사에 대해 들어봤죠?", "이 업계에서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혹시 조사는 해보고 오셨나요?”
이서는 놀랐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하려 애썼다. 그러나 파트장은 말끝마다 꼬리를 잡으며 의미 없는 비판을 이어갔다. 이서는 내내 압박을 받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면접장 문을 나서는 순간, 이서의 속은 뒤엉킨 스케치처럼 복잡했다.
“내가 뭘 잘못 말한 걸까?” "나를 면접까지 부른 이유가 뭘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반복하던 발걸음은 어느새 익숙한 골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이서는 채연을 만났다.
[연남동 카페 이서와 채연]
이서: 오늘 면접 진짜 별로였어. 시작부터 자기네 서비스 자랑만 하고 한참 내 포폴을 까내리더니, 마지막엔 갑자기 “자기네 최근 프로젝트의 개선점이 있냐”
물어봐서 조심스럽게 말했거든? 근데 표정 확 굳는 거야.
채연: 헐, 뭐야.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이서: 그러니까. 말하니까 “그건 사용자 해석일 뿐이죠” 이러는 거 있지. 분위기 갑자기 싸해지고 그 뒤엔 또 얼마나 회사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반복하더라
채연: 진짜 이상한 회사네. 너 잘한 거야. 그런 데 안 가는 게 나아.
이서: 근데 나와서 괜히 자존감 떨어지더라. 내가 이상했나 싶고…
채연: 아니야, 네가 정상이야. 그 사람이 빌런이지.
이서: 고마워… 진짜 너 아니었으면 속 터졌을 듯.
채연: 나였어도 속 터졌겠다. 이럴 땐 당 충전이지. 케이크도 시켜!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집으로 가는 길, 이서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제부터 면접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자. 세상에 이보다 더한 빌런도 많을 거다”
세 번째 면접은 이서의 포트폴리오로 짧은 PT를 준비하기를 요청했다. 앞선 두 번의 면접을 거치며 이서는 불 필요한 기대를 내려놓았고, 그저 준비한 만큼 담담하게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면접 전날에는 포트폴리오를 다시 점검하고, 커뮤니케이션 관련 질문을중심으로 답변을 준비했다. 면접은 예상외로 부드럽게 흘러갔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포인트가 무엇일까요?"
이서는 차분히 대답했다.
"초반의 예상과 후반 테스트 과정의 답변이 다르게 나와 당황했습니다. 아마 다른 목적의 타깃을 놓쳤던 것이 이유라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얻은 피드백으로 배운 점이 많았기에 기억에 남습니다."
이후에도 면접관들은 포트폴리오를 꼼꼼히 살펴보며 진심 어린 질문을 던졌고, 이 날은 면접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 같았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나왔을 때, 이서는 처음으로 ‘좋은 회사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며칠 후, 이서는 이 회사로부터 합격문자를 받았다. 몇 번이고 화면을 다시 확인하며 믿기 어려워했지만, 그 문자는 분명히 존재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가능성을 봐주었다는 감정에 울컥했다. 긴 시간 동안 쌓아온 노력과 좌절,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작은 결실로 이어졌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버스가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 창밖의 야경이 스쳐 지나갔다. 오늘 하루의 기억과 그동안의 경험들이 조용히 마음을 채웠다. 면접이라는 긴 리허설을 거쳐, 이제야 진짜 무대 위에 선 기분이었다.
디자이너들을 위한 메모
1. 면접은 ‘서로’를 평가하는 자리다
면접은 단순히 회사를 ‘통과’ 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앞으로 함께할 조직과 팀을 체험하는 기회다. 지원자는 회사의 문화, 업무 방식, 디자인 철학,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등을 관찰하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Tip) 예의를 갖춘 진정성 있는 질문은 오히려 적극성과 관심의 표현으로 긍정적인 인상을 남긴다. 면접은 ‘선택받기’가 아니라 ‘선택하기 위한 관찰’이기도 하다.
2. 압박 질문에도 침착함을 유지하자
“이 디자인이 실패했다면 이유는 뭐였을까요?”,
“왜 이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하나요?” 와 같은 질문은 의도적으로 논리와 태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질문의 목적은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흐름과 근거를 확인하는 데 있다.
Tip) 예상 질문을 리스트업 해보고, 각 포트폴리오 프로젝트마다 “왜 이 방법을 선택했는가?”, “다른 대안은 없었는가?”, “테스트 단계의 반응은 어땠는가?”를 정리해 보자. 침착하게 자신의 판단을 설명할 수 있다면, 압박 질문은 오히려 실력을 드러낼 기회다.
3. 솔직함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
면접에서 완벽한 결과물보다 더 주목받는 것은 디자이너로서의 사고 과정과 태도다.
예를 들어 부족했던 프로젝트를 솔직하게 공유하면서, 그 안에서 어떤 실수를 했고, 이후 어떻게 보완했는지를 설명하면 훨씬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 실수는 괜찮다. 중요한 건 성찰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4. 면접 유형을 이해하고 대비하자
UI/UX 디자이너 면접은 보통 아래와 같은 유형으로 나뉜다.
-포트폴리오 발표형(PT 면접)
: 발표 준비가 핵심. *스토리라인(배경–문제–해결–성과)*을 짜고, “왜 그랬는가”에 대한 근거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분량은 지루하지 않게 15분 내외로 구성한다.
Tip) 15분 분량의 PT 스크립트는 생각보다 양이 방대해 외우기가 어렵다. 먼저 포트폴리오 내용을 완벽히 숙지가 선행되고 전반적인 흐름 정도를 계획하는 방법으로 준비한다.
-실무 검증형 (사전 과제 or 실기 테스트 형)
: 논리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중요. 정답보다 어떻게 접근했는가, 어떤 사용자를 상정했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성/문화 적합성 면접
: 여러 주제의 질의응답 과정과 대화를 통해 팀워크, 피드백 수용, 성장 의지 등을 본다.
STAR 기법(상황, 과제, 행동, 결과)으로 구조 있게 말하면 효과적이다.
각 유형의 핵심을 파악하고,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역량에 맞춰 답변의 방향을 설정하자.
5. 모의면접과 피드백은 최고의 훈련이다
예상 질문을 정리하고, 실제 말로 해보는 연습을 반드시 하자. 친구나 멘토 앞에서 말해보거나, 녹음·녹화를 통해 말투, 속도, 시선, 손짓을 점검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실전에서 긴장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자주 입 밖으로 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Tip)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게 되어 준비가 덜 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답변 중간마다 충분히 호흡하여 차분한 페이스를 유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