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사직서 내지 말아요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거예요

by 노형균

며칠 전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기숙사에서 9개월 차 23살 간호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SNS 포스팅을 접했다.

신문 기사에는 '태움' 정황이 있고 업무 강도가 살인적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친구의 전언으로 보이는 SNS 포스팅에는 부서이동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직서를 내려했지만 60일 전에 사직해야 한다고 해서 참고 일하다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고 적혀 있었다.

사직서 관련 내용이 있어 댓글을 달았다.


사직과 관련된 내용이 나와 글을 적습니다.

60일 전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계속 근무하다가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는데 사직서를 제출하면 1개월 내에 퇴직이 됩니다. 설사 병원의 취업규칙에 2개월 전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도 민법과 취업규칙 중 근로자에게 유리한 걸 적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직서(辭職書)와 사직원(辭職願)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직서(辭職書)는 근로자가 회사에 근로관계 종료를 한다는 사직의사를 확정하여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사직서에 기재한 사직 일자에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해약의 고지’ 의사표시 문서로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일신상의) 사유로 사직서를 제출합니다(사직하고자 합니다).'라고 씁니다.

사직원(辭職願)은 근로자가 회사에 근로관계를 종료한다는 사직의사를 확정하여 통보하는 것은 사직서와 동일하나 사직서와는 달리 근로관계 종료를 원하는 사직의사를 청약(전달)하고 이에 대해 회사는 근로자의 사직의사를 승인함으로써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근로자와 회사 간 사직에 대한 의사가 일치 즉, 합의가 되어 근로관계가 해지가 되는 것으로 보는 ‘합의해지’ 의사표시 문서로 볼 수 있습니다. ‘개인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하고자 원하오니 허락(재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씁니다.

사직서(辭職書)는 제출 후 회사에서 즉시 수리하지 않아도 1개월 후에는 퇴직이 되고 특별한 사정(사용자의 동의 등)이 없는 한 근로자는 사직의사를 철회할 수 없습니다.

사직원(辭職願)은 사용자의 ‘승낙’ 의사표시가 근로자에게 도달하기 전까지는 사직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 퇴직까지 1개월 동안은 가용한 법정휴가를 이용하면 됩니다.

힘들면 병원에는 사직서를 내더라도 세상에는 사직서를 내지 마세요.


여기에 다른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어느 간호사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간호사 : 사직서 부분 말고 저런 환경에서는 누구든 제정신이 안될 듯한데..... 그런 부분 고소는 못하는 걸까요?? 업무환경 44명 액팅에 모두 다 엄청 힘들었을 듯. 너무 안타까워요.


나 : 노무사나 변호사가 아니어서 전문적 컨설팅은 힘들지만 아는 범위 내에서 언급하면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는데 병원 내에서 적용하긴 현실적으로 더 어려운 면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반적인 문화와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그게 금방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결국 부서 이동이 안 되면 사직하고 이직하는 게 최선이란 생각입니다. 간호사가 꼭 병원에서만 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병원도 규모의 차이가 있고 공무원 같은 공직도 있고 보건교사나 연구직도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꼭 대형병원에서만 일해야 할 필요는 없지요.


간호사 : 제가 말하는 건 태움보다 간호인력이 없음에도 무리하게 병동 오픈하고 입원시키는 병원 자체를 고소할 방법은 없는지 궁금해서요.

저 환경이 다 제정신 일수 없을 듯해요.

간호사에게 다른 일해라 보다 간호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면 해서요ㅜㅜ

태움을 했다해도 개인의 문제고 그 사람 인성이 그런거고 간호사는 병원에 남아 있으면 독한 사람이다 이전에... 저런 환경개선 제발 언제쯤 가능할지ㅜㅜ

44명 보는 액팅도 챠지도 끔찍합니다.


나 : 어떤 면을 말하는지는 알지만 그 부분은 법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현행 의료법에 최소 수준의 간호사 배치기준을 근무조별 간호사 1명당 환자 약 12명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의료기관에서는 법 준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의료법에 최소인원 배치기준이 있고, 이를 어기면 최고 업무정지의 행정처분을 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처벌된 경우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또한 간호사 채용을 독려하기 위해 1999년부터 시행된 간호관리료 차등제는 미신고 시 2~5%의 감산만을 하고 있어 신고율이 낮습니다.

아울러 기본 간호등급은 근무조별 간호사 1명당 환자를 약 21~28명으로 규정하고 있어 현재 법정 인력기준을 위반하는 기관에도 입원료를 가산하는 등 제도 실효성이 미미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업무 강도는 높은데 임금은 낮습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의료수가가 낮은 것이 주원인입니다. 또 하나의 원인은 간호사들이 대형병원을 선호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한 면도 있습니다. 풀기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못 풀 문제도 아닙니다. 다만 비용 지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정치권에서는 건강보험료 인상이 부담스럽습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생기면 최대한 풀어보려 노력하겠습니다.


간호사 : 답글 감사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젊은 청춘이라... 힘없는 선배는 너무 슬프네요.


나 : 나도 눈물이 납니다.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선배가 있으면 언젠간 그런 후배가 안 생기게 할 날이 오겠지요.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La justice sans la force est impuissante; la force sans la justice est tyrannique.)란 Blaise Pascal의 Pensées 글귀가 생각납니다. 작은 힘도 뭉치면 큰 힘이 됩니다. 힘을 키워 언젠가 세상을 바꿉시다. 더는 아프게 세상에 사직서를 내는 안타까운 젊은 청춘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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