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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maker Sep 25. 2024

작은 아파트

  <조앙ㆍ마두>에는 한쪽에서 모두 다섯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붉은 포도주 빛 머리색을 한 주인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있어서 나는 바 앞으로 가서 주인과 마주 앉았다. 그녀의 미소가 아름다웠다. 


  - 너무 오랜만이네요. 

  나는 그동안 직장 일 때문에 바빴고, 멍청한 작자들 때문에 일이 끝나고서도 그 일에서 떨어질 수 없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한바탕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도 의외의 내 말 때문에 얼굴을 허물어뜨렸다가는 나를 따라 깔깔거리며 웃었다. 한 번 유쾌해지자 나는 또 이 고장에 보기 드문 폭설이라 하마터면 눈 속에 파묻혀 다시는 못 올 줄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칵테일을 한 잔 만들어 주었다. 상큼한 박하 향이 톡 쏘아서 나는 한 모금 맛을 음미한 후 단숨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카프리를 주문했다. 카프리를 두 병째 비웠을 때 Letter man의 Sealed with a kiss가 흘러나왔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나갔다. 카페 창밖에는 달빛이 내려오는지 은은한 회백색의 세상이 채색되고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자 너무도 고요한 듯했다. 시간이 깊어 인적이 끊어져버린 창밖 세상에는 아무도 없어서 나는 갑자기 외로움을 느꼈다. 나는 바 앞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새 담배를 태웠다. 그녀의 담배 연기가 바의 바로 위 실내의 밝은 조명아래서 하얀 띠 줄로 떠오르다가 잔잔하게 퍼졌다. 그것은 하얀 매듭이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새로 두 병째를 비웠을 때 카페 출입문 상단에 매달아 논 조그만 은종이 울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너 들어가지 않고 곧장 이리로 오는 거니. <조앙ㆍ마두>의 주인은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며 출입문을 들어서는 상대에게 말을 던졌다. 카페 안에는 손님이라고는 나뿐이었다. 여인은 내가 앉아있는 바 쪽으로 왔다. 잠시 후에 걱정을 했어, 이렇게 눈길에는 오지 마라. 아직도 그러면 되겠니 라면서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여섯 병째 카프리를 마시던 중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몇 번인가 더 들려왔다. 상대의 반응은 없는 그녀의 토막 난 음성들이 Letter man의 노래와 함께 뒤섞였다.     

 

  죄송해요. 정말. 실내의 조용한 음악 속에 혹시 침몰하지나 않았을까 했던 여인은 <조앙ㆍ마두>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고, 그녀는 담배를 다시 피워 물면서 아무려면 네 입장만 하겠니라고 말했다. 여인에게 그녀는 백색의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나는 일곱 병째 카프리를 비웠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조앙ㆍ마두> 주인은 세 번째 담배를 눌러 껐다. Ce soir je ne dors pas. 오늘밤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프랑스 갈의 노래가 새롭게 카페 안에 흘렀다. 음악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곧잘 만들 줄 아는 그녀는 이내 장난스러워져서 비음이 들어간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요, 알베르. 오늘밤 우리 술 한잔 할까요 하면서 웃음을 보냈다. 나는 그녀의 장난에 즐거워져서 그래 내일까지 한 번 예약해 두겠어 마담, 하고 웃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여인이 그녀에게 가보겠노라고 했다. 나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래, 들어가거라. 

  마담은 나를 보며 말했다. 

  - 저래두, 눈 속에 묻히지는 않을 거예요.  

    

  출입문에 매달려 있는 조그만 은종이 딸랑거리고 여인이 나갔다. 안경을 썼고, 얼굴의 윤곽이 또렷한 여인이라고 생각되었을 때 나는 갑자기 어떤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사람이란 때로 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언제였던가... 쥐색코트와 한 번은 갈색얼음덩어리가 되어 그렇게 두 번, 내가 근무하는 지사를 찾아왔던 기억, 저편의 그 여인과 닮아 있었다. 나는 잠깐 상념에 빠져 있어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느냐는 마담의 말을 듣고서야 이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니야, 그저, 뭐 하며 마담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벌써 저 쪽에 신경을 쓰고 있었군요. 남자란 여자를 바로 앞에 두고도 다들 그렇군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금 담배를 피웠다. 

  - 글쎄, 마담보다는 더 미인이지 않았나? 

  나는 웃으면서 카프리를 다시 몇 모금 마셨다.

      

  그녀의 아파트까지 가는데 우리는 정확히 다섯 번을 넘어졌다. 그녀가 두 번, 내가 한번, 그녀와 내가 함께 두 번. 그녀와 나의 발자국소리는 아파트의 복도를 따라 울리면서 아파트를 감싸 안고 있는 새벽의 정적을 깨는 반향을 만들었다. 


  - 그렇지만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끝이에요. 

  나는 너무도 고요한 적막에 몹시도 신경이 쓰였지만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중앙 계단으로부터 오른편 여섯 번째 출입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공기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차가운 얼음으로 폐부가 가득 부풀어 오른 기분이었다. 그녀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녀의 아파트 앞에서 되돌아 나왔을 것이다. 

  - 이제는 돌아가지는 마세요. 부탁이에요. 

  그것은 정적으로 눌러앉은 아파트 복도 끝, 저 멀리 단 한 개의 불빛을 밝히고 있는 안전등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에게서 감정을 느끼진 않았지만 위안이 되었다. 이 새벽에 내가 달리 돌아갈 곳이라고는 출고된 지 오 년이 되는 내 엘란트라 중고차가 지하차고에 있고, 인켈 오디오가 헐렁한 거실 한쪽에 기대어져 있는 원룸이 기다리는 이 도시의 외곽, 개발 지대인데 나는 갑자기 그게 싫어졌다. 그녀의 작은 아파트는 아담해서 정말이지 비둘기가 들어와 살기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다른 비둘기와 생활하고 있는지 현관 입구에는 신발이 세 켤레, 그중 하나는 짝을 잃고 흐트러져 있었다.    

  

  - 왜, 나를 데려왔어. 

  - 신경 쓸 것까지는 없다구요. 내 동생이에요. 

  그녀는 그저 미소를 보였다. 

  - 항상 이러나. 

  -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그녀는 나를 보고 씽긋 웃었다. 우리는 조그만 탁자가 놓여있는 베란다로 나가 앉았다. 베란다 유리창문은 안개가 서린 듯 물방울이 뒤엉켜 흘러내렸다. 손으로 물방울을 밀어내자 밀어낸 자리에 나와 그녀의 왼편 얼굴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건너편 아파트의 불빛 하나가 그녀의 이마에서 꿈결처럼 자국을 보이며 흘렀다. 나는 그녀가 담배를 피워 물자 마담은 좀 더 밝은 곳에서 이렇게 보아야겠군. 서너 살은 어리게 보인단 말이야 라고 말을 해 주었다. 사실 그녀는 세련되었고, 아름다웠다. 내가 카페 <조앙ㆍ마두>를 알게 된 이후 자그마한 그곳의 분위기와 마담이 마음에 들어 술을 마시러 다녔던 것처럼, 많은 고객들 중에서는 단지 그녀의 외모 때문에 찾는 고객들이 꽤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고객들에게 비추어진 자신의 그와 같은 모습을 적어도 지나치게 의식은 하지 않았지만 적당히 즐기면서 그녀의 카페를 운영해 갔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손으로 물방울을 밀어낸 베란다 유리 창문에 다시 불투명한 물기가 서리자 나는 그것을 또 밀어냈다. 

  - 알베르, 그 애를 생각할 수 있겠어요? 

  나는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내게 한 말을 이해시키지 못했던지 그냥 웃어 보였다. 사실 그녀는 나와 이렇게 그녀 자신의 아파트에 온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온 것이 처음이라는 것이 생각나지 않은지도 몰랐다. 

  - 조금 전, 그 애 지금 여기에 있어요. 

  나는 그녀가 지금 그녀와 같이 생활하고 있는 누군가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잠을 자지 않고 있을 거예요. 항상 그렇거든요. 나는 이렇게 늦고, 그 애는 실패했으니까. 아니, 실패 중이니까요.

  나는 그녀가 나에게 이처럼 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금의 카페에서 오 년 동안 인가, 무난히 그녀의 사업을 번창시켜 왔고, 그런 삶의 방법으로 소도시의 중심가에 두 개 더, 동종의 업소를 이삼 년 전에 사들여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가 사업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 동안 나는 그녀의 카페에서 그녀와 더불어 술을 마셨고, 그리고 그녀는 많은 고객들과도 나처럼 술을 마셨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지금, 이 시간 전까지도 나는 그녀와 단지 술을 마시고, 그저 그녀가 생활하는 아파트에 왔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젖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그녀의 눈물 젖은 눈이었기에 나는 잠깐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로 나는 그녀와 술을 마실 때와 같이 친근감이 느껴져 왔다. 나는 무어라 달리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다만 그녀가 조금 울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갑자기 카프리 생각이 났지만 마실 수가 없는 것이 가슴 한구석을 허전하게 만들었다.


  - 왜 이런지. 알베르, 당신이 그저 이해해 주어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녀는 거실로 가서는 무언가를 찾더니만 자그마한 카뮤 한 병과 잔 두 개를 가지고 왔다. 

  - 미안해요. 

  술과 함께 술 속에 녹아 묻혀있던 향기가 가슴을 타고 흘러 내려가자 잠깐동안 평안함이 밀려 들어왔다. 

  - 마담, 당신 울고 나니까 더 아름다운데? 그래서 여자들은 간혹 울기도 하나 보군? 

  - 설마 하니 그럴 리 있겠어요. 

  - 정말이라니까. 

  그녀는 다시 술을 마시던 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베란다 유리 창문을 통해 밖의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건너편 아파트의 형체가 희뿌옇게 드러나고 그곳으로 작은 불빛 몇 개가 사라지고 있었다. 세상은 차츰 보라색 빛깔로 변해갔다. 이른 새벽이 오는 중이었다. 나는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몇 잔 더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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