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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maker Sep 27. 2024

카페 <조앙ㆍ마두>

  <조앙ㆍ마두>를 나온 시간은 자정이 되어서였다. 겨울밤 하늘에는 건드리면 툭툭 떨어질 것만 같은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다. 소도시 곳곳에 쌓였던 눈이 많이 녹아 겨울밤 하늘아래서 은회색을 보여주던 풍경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그 자리에는 다시 오랜 세월 동안 이 소도시를 낯익게 만들었던 예전의 정경들이 자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낯익은 그 정경들을 둘러보았다. 대기의 냉기에 몸체를 드러내 놓은 건물들은 평온한 듯 말이 없었다. 반짝이는 네온사인도 불빛을 내린 건물을 따라 어둠으로 들어가 버려서 거리는 어쩐지 황량하게 보였다. 다만 고개를 숙인 가로등이 간격을 두고 빛을 밝히고 있어서 조금은 평온한 생각이 들었다. 머리 바로 위로는 오리온성좌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별자리가 한순간 너무나도 또렷하게 느껴져 오면서 머릿속으로 별들이 질주해 뛰어 들어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멈추어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머리 안은 텅 비고 폐부 깊숙이 차가운 밤공기가 쏟아져 들었다. 저 멀리서 작으나마 뚜렷한 무적소리가 길게 두 번, 들려왔다. 아마도 이 고장의 경계를 조금 벗어난 바다 쪽으로부터 들려온 것이리라.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고개를 숙인 채 빛을 밝히고 있는 거리는 인적마저 끊어졌다. 나는 그 거리를 걸어서 도시의 외곽지대에 있는 숙소로 왔다.

      

  침대에 누워 <조앙ㆍ마두>의 마담과 동생인 여인에 대해 잠깐동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조앙ㆍ마두>를 알게 된 것이 벌써 삼 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 소도시의 지사로 내려왔을 때 그때는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장맛비가 내리던 그 여름, 일과를 마치면 더는 할 일이 없어 우산을 쓴 채 도시를 배회하다가 나는 비에 젖어 추적거리고 있는 <조앙ㆍ마두>를 발견했다. 삼층 건물의 일층에 자리한 카페는 입구의 문이 하얀색이었다. 그 출입문 양편으로는 상단이 둥그렇게 처리된 유리 창문이 하나씩 다정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출입문 상단에는 가스등을 연상하게 하는 검은 청동 빛 등이 하나, 동그마니 매달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조앙ㆍ마두>라고 음각된 조그마한 청동제 푯말이 팔랑거리는 마지막 잎새처럼 빗속에서 흔들거렸다. 그렇게 서있는 카페 입구의 전경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곳이 이 소도시에서 하릴없이 배회하던 나의 배회의 마감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온종일 비가 내리고 질척한 데다가 아마 막 어둠이 내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비는 쉬지 않고 내리고, 도시는 밀려오는 어둠과 떨어지는 빗속에 제 모습을 놓아버린 채 젖어가고 있었다. 비는 하염없이, 본능적으로 내리고 내렸다. 카페의 실내에 들어서자 밖의 빗소리가 멈췄다. 조용한 음악을 배경으로 아늑한 실내등이 한가롭게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바에서 나는 미소를 띠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여인을 만났다. 어깨와 목선이 드러난 녹색 슬립차림이 머리를 감아 핀을 찌른 검은 머릿결과 함께 여인의 모습을 싱그럽게 만들어 주었다. 미소가 아름다웠다. 테이블에 앉아 나는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밖을 바라보고 있는, 상단이 둥그런 유리 창문에는 빗줄기가 하염없이 부딪히는 게 보였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떨어지는 저 빗속에 젖어만 가고 있는 이 소도시에서, 앞으로 생활할 날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곧 무료해져서 나는 녹색 슬립 차림의 마담을 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테이블에 와 앉은 마담은 다시 한번 미소를 보여주었다. 


  - 당신은 웃는 모습이 예쁘군요. 

  마담은 그렇게 보아주시니 감사하다며 이 고장에 사시는 분은 아니신가 보군요하며 맥주를 잔에 따랐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이 고장은 생소한 곳이며 오늘로써 사흘 째 됐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곳도 역시 처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맥주를 몇 잔 더 마시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마담은 출입문 앞에 서서 이 고장이 처음인 당신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면서 앞으로도 당신을 맞이하게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사하게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다시 인사를 했다. 나는 당신의 미소 때문에 아마도 여기를 다시 찾아야 할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해주고는 쉬지 않고 내리는 빗속을 향해 걸어 나왔다.  

    

  그 뒤로 <조앙ㆍ마두>를 다시 찾았던 것은 장마가 멎고 그 끝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 십여 일 지난 후였다. 장마 끝 무렵부터 뒤늦게 시작된 업무파악에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 지루한 장마가 끝나자 다시금 무더위가 후끈 달아오른 것도 잊어버린 채 이제는 오너가 요구하는 자료를 만드느라 연일 여념이 없었다. 마침내 자료가 다 완성되자 나는 지쳐버렸고 머릿속은 텅 비어 버렸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후끈한 더위를 밀어내는 에어컨 소리를 듣고서야 제정신을 가눌 수가 있었다. 창밖은 벌써 밤이었다. 한여름 밤의 거리가 내려다 보였다. 불빛이 반짝거리는 밤의 정경을 바라보다가 나는 열대야로 넘실거리는 저 여름밤의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는 저곳을 지나면 아마도 내가 가야 할 곳이 생각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오자 어둠에 묻어있는 밤의 열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열기를 피할 적당한 곳을 찾아서 끊임없이 흐느적거리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어깨를 몇 번 부딪히고, 스치면서 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후끈한 밤의 열기 속을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걸으면서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비를 맞으면 서 있던 <조앙ㆍ마두>의 카페 정경이 떠올랐다. 아늑한 실내등 아래 녹색 슬립차림의 여주인이 생각난 것도 그때였다. 가야 할 곳을 생각해 낸 나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스등 모습을 한 청동등에 작은 불이 켜져 있는 카페 <조앙ㆍ마두>에는 한여름 밤의 열기를 피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카페 안은 시원했고, 조용한 음악아래서 그들은 밤의 열기로 인해 얻게 된 짧은 여가를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나는 실내의 분위기가 만족스러웠다. 마담은 나를 알아보았다. 미소를 담은 얼굴로 다가와서 예전의 그 정중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담은 보라색 원피스가 잘 어울려서 검은 머릿결을 감아올려 핀을 찌른 모습이 우아하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맥주를 마시자 편안해졌다. 오늘 오후까지 오너의 자료를 꾸미느라 완전히 지쳐버렸던 사실이 까마득한 시간의 일처럼 여겨졌다. 나는 연거푸 맥주 두 병을 비웠다. 그리고 아마도 그날 많은 맥주를 마셨던 것 같다.  

    

  낡은 신발처럼 편안한 침대에 드러누웠지만 잠은 오지가 않았다. 커튼을 밀어내자 황량한 겨울밤의 짙은 어둠이 느껴져 왔다. 고개를 들자 밤하늘이 보였고 별들이 하나둘씩 빛나고 있었다. 유독 별빛이 수정처럼 맑은 게 위안이 되었다. 오리온성좌는 서쪽하늘 산등성이로 절반정도 감춘 모습이었다. 성좌의 나머지 별들이 바로 위의 황소자리와 어울려 새로운 별자리 형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거기로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물며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 유성이 사라져 간 끝에는 그 유성이 남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별들은 수정처럼 깜박거렸다. 깜박거리는 저 별들이 서로가 아주 먼 공간을 사이에 두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이 지상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러한 공간과 공간을 건너오리라. 몇천 년을, 아니 몇 만 년을, 상상할 수도 없는 길고 긴 허무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지구에 도달한 별들의 모습이 어쩌면 저 유성처럼 지금은 저 자리에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러면서 저 광대한 공간 안에 별들이 존재하는 모습이란 우리가 대지에 발을 내리고 서있는 생존점과는 그 의미가 다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우리의 지각 안에 존재하는 무형의 의미들처럼 별들은 그렇게 존재할 것이다. 그래야만 마땅할 것이라 생각됐다. 그렇지 않으면 저 광활한 허무 속에서 반짝거리며 있는 별들에 관해서 그 무엇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커튼을 내리고 침대에 누웠다. 전등불의 스위치를 누르자 어둠이 내려왔다. 씁쓸하고 무거운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무것도 더는 할 게 없는 머리를 베개에 묻었다. 묵묵한 기분이 느껴졌다. 서서히 잠이 밀려들었다. 눈이 감겨오면서 어디에선가 종소리가 들려왔다. 푸른 하늘에서는 햇빛이 쏟아졌고, 아이들은 누군가를 부르며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잠결 속에서 영화를 꿈꾸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지중해의 시실리아섬, 아마도 어느 성당이라고 생각되었다. 조그만 하얀 첨탑 안의 종이 짙푸른 하늘아래서 계속해서 울려댔다. 누구였을까. 주연 배우가. 알 파치노와 말론 블란도가 열연했던 이탈리아 영화 The Godfather(대부 ․ 代父)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영화의 테마음악이었던 것 같다. 곡조에는 우울하면서도 슬픔이 아코디언의 흑백 건반처럼 베여있었다. 누군가가 총에 의해 쓰러질 때,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계획된 죽음을 당할 때, 그때마다 주인공의 참담한 눈빛과 절제된 의지는 이 음악과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주인공이 미사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오는 그 시각, 또 다른 장소에서는 죽음이 있었고, 그것은 주인공이 계획했던 것이다. 마피아의 세력싸움에서 그는 단호했다. 그 장면 모두에서 이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잠이 쏟아져 왔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할 게 없어졌다. 아마도 이 꿈에서 깨어날 즈음이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을 것이라는 느낌만이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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