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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maker Sep 29. 2024

프리셀 게임

  그녀는 육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른 지방의 도시에서 전문과정을 마쳤으며 무엇보다도 일본현대건축에 대한 공부를 지금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녀와 관계된 무엇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기록부란 형식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에 관한 사항을 빠짐없이 기록해 갔다. 때때로 나와 시선이 마주칠 때면 검은 안경테 너머 그녀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수강에 관계된 사항을 모든 접수자에게 보내도록 담당자에게 요구하고 인원에 맞게 면담시간을 정해두었다. 얼마 전 지역 접수자들의 면담을 맡아 달라는 본부지원센터의 지시를 받았던 터였다. 면담의 기록부를 기록하고 접수자들이 요구하는 바에 대해서는 향후의 타당성이 인지되는 범위 내에서 계획서를 첨부하라는 내용이 함께 왔다. 내 입장에서는 다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됐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수정된 주도면밀한 계획의 일부였기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오너와 본부관계자들은 정확한 곳이 있었다. 그들의 실리 지향적인 운영방침은 빌어먹게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들의 이윤에 대한 악어와 같은 욕망이 내게 거부감만 주지 않는다면 나도 그들을 찬양해 줄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멍청한 본부관계자들은 여전히 오너의 취향을 판단해 내고 거기에 맞는 일거리만을 우리들에게 떠맡기고 있지 않는가? 오너의 사업적 감각이 번뜩이고 있는 동안에야 그것은 달리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멍청한 그들과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지금의 일을 그저 즐기면서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니까.    

  

  일주일 동안 계속된 접수자들에 대한 면담이 끝났다. 두툼하게 작성된 면담내용과 재검토되어야 할 타당성을 적은 기록부를 직원들은 잘 정리해 주었다. 거기에 계획서가 첨부되어 이제는 이 작업이 더는 진행되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다시 한번 많은 눈이 내렸다. 아침부터 시작된 함박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눈은 내리고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다. 동료들이 일찍 퇴근을 서두른 사무실은 적막감마저 느껴졌다.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서류들이 일을 놓아버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두툼한 여섯 권의 서류철은 겹쳐져서 책상 한쪽에 쌓였다. 그중 두 번째 서류철을 들어내서 처음부터 뒤적였다. 삼분의 일 정도를 뒤적이자 정지현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나이 스물일곱. 미혼. 정한진흥건설회사 출장소 기획실근무. 나는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Cafe <조앙ㆍ마두>가 고딕체로 찍혀있는 하얀 명함을 찾아냈다. 한정현. 나는 속으로 되 내어 보았다. 한정현. 한정현과 정지현? 두 사람의 성은 달랐다. 마담은 아마도 가명을 사용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마담에게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명함에 찍힌 이름은 그저 형식적으로 흘려보내다가 이번에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나를 알베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도 그녀를 마담이라고 불러왔다. 그녀의 동생과 닮은 정지현을 나는 생각해 보았다. 두 사람은 참으로 닮았다. 그리고 두 사람 중 누군가가 한두 살 많을 것도 같았다. 아니면 비슷할지도. 

     

  나는 컴퓨터의 프리셀 게임을 열었다. 화면에 네 명의 퀸이 나타났다. 다른 두 줄 하단에는 다이아몬드 에이스와 하트 에이스가 떴다. 이처럼 카드도 비슷한 것이 네 개가 있지 않는가. 사람의 얼굴도 닮는 거지. 아마도 나를 닮은 얼굴도 셋은 더 있을 것이다. 나는 프리셀 게임에 몰두했다. 사람들은 단조로운 게임이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게임에 몰두하지 못했을 때의 변명이다. 그러한 그들은 삶에서도 변명을 붙일까? 단조롭다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그러한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 결국은 단조롭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다. 그들 스스로가 말이다. 나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집중하는 것이다. 집중한 그 시간만큼은 적어도 집중한 대상에 대해 단조롭다는 사실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을 자신에 관한 트릭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바에야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단조롭게 사는 수밖에.    

  

  첫 게임을 완벽하게, 그것도 단 몇 분 만에 이겼다. 가슴 밑바닥에서 전율이 일었다. 이것은 집중할 때 일어나는 정신적 현상임을 알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서른여덟 살. 토털 아카데미 삼남지사 교육기획관리팀장. 이름. 진승우. 이전 직장, 아니 이전 직장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 여섯 달만의 판촉 일을 그만두고 전직한 이후 이 일을 지금껏 하고 있다. 이 직장에서는 어느 때부터인가 안락함이 느껴졌다. 이 일은 계속할 것이고 아마도 이것은 내일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게임도 승리를 했다. 나는 왜 프리셀 게임에 몰두하는가. 언제였던가, 나는 정말 어리석게도, 이제는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그 어떤 날, 그렇다... 정말 어리석었다. 삶의 단조로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그때란 물론 흔적조차 지워져 버린 듯도 하지만, 지금보다도 한 십팔 구 년 적은 나이였을 때였다.  

     

  손에 쥔 것이 없어 내 입뿐 아니라 머릿속으로도 그 무엇을 집어넣기에도 힘겨웠을 때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유일하게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쯤이었을 것이다. 어둠이 오고 있는 밤하늘을 따라 내 밤거리의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나는 파격적인 그 시간을 즐기고 때로는 기다렸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그 시간, 자유를 향한 시간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밤거리의 내 친구들은 진실했다. 우리들은 진실하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진실은 빛을 뿜었다. 그 진실의 빛을 덮어버리는 대상은 그 시각에 당연히 우리의 목표물이 되었다. 진실, 거기에는 물론 내가 있었다. 그랬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가 진실이라고 단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움직였다. 우리의 손과 발이 상대의 육체, 그 정확한 곳을 가격하는 이유는 너희들이 진실에 침을 뱉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런 모독에 대한 대가라고. 이렇게 우리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 판의 패싸움이 끝나고 난 뒤에는 거기에 항상 우리가 남겨졌다. 최후까지. 한바탕 진실을 위하여 온몸을 던진 뒤, 우리는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호흡을 정리하고는 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어둠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저 별, 별들이라는 사실을.    

  

  어느 날이었던가. 그날도 다름없이 최후까지 우리는 남았고, 웃음을 남기면서 각자 진실들인 친구들과 헤어졌다. 발끝에 밟히는 어둠 대신 다시 한번 밤하늘을 바라다보았을 때였던 것 같다. 유난히도 밝은 별 하나가 갑자기 꼬리를 느려 뜨리다가 사라졌다. 유성이었다. 그때 내 몸 어딘가에 그것이 파고들었던 것 같다. 그 느낌은 순전히 어둠을 밟는 고양이 발자국 소리 때문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내 눈앞에서 사라진 유성과 고양이 발자국 소리 모두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이렇게 어둠을 밟으며 돌아오는 길이 다음번에도 있겠구나. 다음다음번에도 있는지 모르겠어... 단조롭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아마도 그때였다.  

    

  다음날 나는 평소에 하던 행동대로 주머니를 뒤져 서른여섯 병의 술을 준비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준비한 술만 마시며 그 생각에 매달려 보았다. 그러다가 그것이 이내 아무 쓸모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는 삶의 단조로움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단단한 경험들을 빈 호주머니에 담아 다녔기 때문이었다. 내 삶 어디에서도 단조로움이라는 냄새를 맡고 싶지 않다. 이것이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지상에서는 때때로 모든 일상적인 것, 우주적인 것, 무형의 정신적인 것, 그리고 거기 광대한 허무, 그런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것이 도대체 어쨌다는 것인가. 그들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고 나는 다만 그것과 공존할 뿐이다. 이것이 단조로울 수 있다는 것인가? 나는 내 삶에 대고 통쾌하게 웃어 젖혔다. 그것으로서 끝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이것을 잊어버렸고, 어쩌다가 밤거리를 떠나오게 되었다. 그 뒤 사오 년 후였던가, 이름도 그럴싸한 직업을 하나 챙겼다. 물론 육 개월인가 뒤에 그것은 이력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시 새롭게 만난 것이 여기의 직장이었다. 이 직장에서 얼마만큼의 적응 기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제는 머릿속으로 그 무엇인가를 집어넣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우연찮게 노동조합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토털 아카데미에 입사해서 세 핸가를 보낸 뒤였다. 그 당시 오너는 완강했고 우리는 합법적인 방법을 이용한 지구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가담해서 그 모서리에 가서 섰다. 힘없는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됐다. 그리고 단단하고 강인해졌다.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마침내 오너는 투항을 했고 백기를 들고 서서 사인을 했다. 오너의 몽블랑 만년필 끝이 바르르 떨렸다. 청색 잉크 빛이 선연한 그의 투항의 표식을 받고 우리는 해산했다.  


  시절은 우리와 같은 근로자, 즉 노동근로자들의 활동에 의해 사회구조가 새롭게 변혁되고 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나는 모서리에서 중심부로 이동을 했다. 내 몸과 정신을 흠뻑 적실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대상을 발견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확실하며, 결코 빛나지 않는 섬뜩한 아름다움이 베여 있었다. 나는 매료됐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완벽하게 매혹당할 줄을 자신도 몰랐다. 그만큼 나는 투명했고 심장은 뛰었다. 내가 지닌 삶에서 가장 완벽한 조직체를 만났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가슴을 온통 진분홍빛으로 물들게 만들었다. 인간이 인간을 신뢰하여 복원시킨 가장 확실한 무기를, 이제야 지니게 되었다고 나는 자부했다. 나의 삶은 이제는 창공을 향하여 비상할 꿈을 꿀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되었다. 한 시절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승자가 되었다. 마음이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언제였던가... 부족하면 백화점에 들어가면 그만이었고, 피로하면 술집을 찾아 떠나면 그만이기 시작했던 때가. 그러다가 마침내 풍성한 식탁 앞에서 잘 사육되어 꿀꿀거리는 돼지새끼들처럼 변한 때가. 사육된 돼지는 감기를 퍼뜨리는 바이러스처럼 증식이 강했을까? 우리는 하나둘씩 잘 사육되어 가는 돼지가 됐다. 지난날의 영광에 대한 회상이 들 때면 때로 쓸쓸함이 묻어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모두 지난날의 영광을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난날은 역시 아름다웠다. 이전에 우리 인간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서 꿈꾸는 것들이 있다. 노동조합도 그중 하나였다. 한번 만들어지면 영원하기를 바란다. 인간들은. 그래서 목소리 드높여 외치지 않았던가? 영속하라. 우리의 단결이여. 우리의 투쟁이여. 우리의 강철 같은 의지여. 모든 아름다움이여!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다. 불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확실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도 변했다.   

  

  모든 것은 늦었다. 쇠락한 노동조합의 깃발이 내려졌고, 그것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조직에 대해 묵인의 신호가 되었다. 나는 오 년 동안의 노조활동을 마감하고, 삼 년 동안 별다른 의미 없이 직장만을 다니는 생활을 했다. 그 삼 년 동안 나는 쉬는 날이면 산을 오르내리고, 들판을 가로질렀다. 순록이 돋아 무성하고, 또 낙엽이 떨어지고 떨어진 무게만큼 시간이 빠져나가는 그런 어느 날, 한 번은 저 멀리 사라져 가는 기러기 떼가 석양의 노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석양이 지는 자리에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며 묻혀가는 중이었다. 기러기들이 사라지고 붉은 노을이 완전히 떨어져 버린 그때, 이제는 그 무엇인가가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이유로부터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무엇인가를 가슴에 담을 이유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잊어지지 않았다. 그 풍경 속, 늦가을 날 석양 속에 묻혀가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한동안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섯 번째 게임은 내가 잃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란 이렇게 대가를 치러야 한다. 흘러가버린 것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모래밭에 물 컵을 엎지른 것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나는 다짐한 대로 가슴에 무엇도 담지 않고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때 즈음부터 나는 그저 단순하기만 하다는 프리셀 게임을 익혔다. 그 많은 컴퓨터 게임에서 이것을 익히고 난 뒤부터는 내가 즐기고 싶었던 다른 게임들을 묵살해 버렸다. 마법의 기술을 손바닥에 쥐어주는 게임도, 그 밖의 몇 가지 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게임등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유일하게 프리셀 게임에만 마우스를 클릭했다. 중고 자동차를 몰고 다녀서 차가 헐떡거리는 시간과 간간이 술집과 카페를 드나드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 가지 더, 침대 위에서 불어를 번역하는 습관적인 생활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여섯 번째 게임은 다시 내가 이겼다. 이렇듯 컴퓨터 내부에 있는 조그만 칩 사이를 바늘 끝처럼 예리하게 움직이는 서른여덟의 두뇌를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그들은 말할 것이다. 미친놈이라고. 아주 쓸모없는 나이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 나이에 그 시간이 있으면 적당하게 여자라도 만나라고 말이다. 그게 시들하다면 하다못해 백지나 다름없는 유가증권 속에서 하루하루 허둥대는 사람들 좀 만나서 뭐 대충 이야기하고 돈 좀 주물럭거리면서 살아보라고 말이다. 삼십 초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인데 주식 데이트레이딩이라도 하듯 한두 번쯤은 그렇게 살아야 할 것 아니냐 하면서. 그래. 그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고도 사람들을 만나면 적당한 돈이 된다는 말은 상식이고 그것은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명, 정치, 문화, 전쟁, 예술, 사랑, 상거래, 이 모든 것이 당신들을 만나지 않고서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당신과 당신들이 쌓아 올린 결과들을 만나야 가능하다는 이 평범한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당신 또한 나를 만나야 당신이 이룩해 놓은 결과를 보여주고 해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때, 당신의 내부가 썩었는가 썩지 않았는가까지도 말이다. 어쩌면 지금 당신은 당신의 내부가 썩어서 이제는 필요 없게 되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면서 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당신은 오늘도 필요 없는 돈을 쓰기 위해서 안달하지 않았던가? 당신은 단지 긁어모을 줄만 안다는 당신의 악취미 때문에 당신의 몫이 아닌, 응당 그들에게 가 있어야 할 정당한 그들의 몫을 또 강탈해 오지는 않았는가 말이다. 자유와 꽃과 언어와 돈과 지식까지를... 감히 단언하는데 나는 이런 부류를 만나면 단연코 오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나의 내부에 정말이지 조금 존재하는, 그 오물이, 나의 내부에서는 닦여질 수 있도록 이제는 침대 위에서 불어를 번역하고 있다. 나는 당신처럼 썩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서른여덟이 된 지금부터는 말이다.  

    

  흥분을 했던 탓일까. 연거푸 세 게임을 내주었다. 이층 유리 창문을 바라보니 여전히 함박눈은 내리고 있었다. 거리의 네온사인 빛에 반사되어 눈송이는 어둡게 혹은 밝게 떨어져 내렸다. 책상 위에는 얼굴을 내놓은 서류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류를 정리했다. 컴퓨터를 껐다. 마지막 등 하나를 소등하고 눈이 내리는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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