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inmaker Oct 05. 2024

노란 잠수함

  눈앞에 녹색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아이는 녹색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주시하고 있다. 때가 낀 양 소매 끝은 반질반질하여 잘 닦여진 탄피처럼 반짝거렸다. 얼굴이 낯익은 어린 날의 나였다. 항구도시가 보이고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배들이 떠났다가 들어오고, 갈매기들이 어지럽게 바다 위를 날아다녔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소년은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도시에서 태어났으나 바다를 좋아한 나머지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으로(평생을 그렇게 살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녹색의 바다를 주시하는 소년의 기억 안에 숨 쉬고 있다. 


  소년에게 그것을 말해준 것은 낡고 때가 끼어 형편없이 변형되어 버린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였다. 그 당시 팝송만을 소개하여 아주 인기가 있는 프로가 있었는데 거기서 Beatles의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을 듣게 되었다. 노래 중간에는 특이하게도 행진곡풍의 리듬이 뒤섞여서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노래 끝에 진행자가 마지막 암시를 주는 부분을 너무도 또렷하게 발음해 냈다. 이렇게. 그는 정말이지 녹색의 바다 밑을 영원히 유영할 것입니다. 노란 잠수함을 타고서. 


  소년은 그 노래를 아무런 생각 없이 흥얼거렸다. 이유는 묵묵한 바다냄새가 물씬 젖어 있는 남단의 항구도시에서 노래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노란 잠수함과 항구도시는 서로가 상상될 수 있어서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지는 관계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녹색의 바다, 수평선이 낮아 보였다. 그만큼 소년은 더 커져 있었다. 노래가 다시 들려왔다. 바다와 비틀즈의 노란 잠수함, 그것을 한 십 년 가슴에 담아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녹색의 바다가 아닌 도시의 건물이 주위를 둘러섰다. 모든 기억에도 그렇듯이 주머니에 담고 다니는 것과 같이 가슴에 담고 다니는 것도 언젠가는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건물사이에서 나는 노래를 잃어버렸다. 그러면서 노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거짓말처럼 잊고 있었다. 


  그렇게 또다시 십 년 하고 또 십 년이 흘러가버렸다. 문득 나이 사십이 되면 다시는 그러한 것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설핏 스쳐갔다. 나이 사십이 되면 노란 잠수함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나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삶이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조종사인 생땍쥐뻬리가 그 나이에 동화를 쓰듯이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나도 불현듯 동화라고 이름 부를만한 그것을 쓰느라고 일주일 내내 낡고 허름한 책상머리 앞에서 끙끙거리며 앉아 있을지.


  콧물을 훔쳐내던 아이가 아무런 생각 없이 흥얼거리던 그 노래에는 무슨 주술이 연결되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노란 잠수함이 그리워졌고 노래가사의 그처럼 잠수함을 타고 푸른 바다 밑을 항해하고 싶은 충동이 강렬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 모두는 누구든 푸른 하늘과 녹색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 거기에다 노란 잠수함을 가지고 있어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노래 속의 그가 사는 것처럼 말이다. 가슴 밑바닥에서 충동이 쌓여 나왔다. 나는 PC를 켰다. 음악 사이트에 들어가 클릭을 했다. 노란 잠수함을 다시 들어보았다. 볼품없는 소형 트랜지스터 대신 비틀즈의 노래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음악 사이트에서, 푸른 하늘아래 녹색의 바다 밑을 유영하는 노란 잠수함을 만날 수 있었다. 


  가슴 가득히 울려 나오는 어린 나날을 보낸 항구도시의 무적소리와 바다냄새, 여전히 흥겨운 그 행진곡풍의 리듬,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다시 몇 번인가 더 노래를 들었다. 세 번째인가, 그 노래가 끝나자 한동안 엄숙한 적막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노래 끝의 여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리고는 중얼거려 보았다. 아마도 모든 자유는 저 노란 잠수함에서 시작됐으리라. 시작됐으리라. 그러다가 잠이 깨었다.     

 

  머리가 무거웠다. 그와 헤어져 돌아온 나는 아파트 거실에 아무렇게나 웃옷을 벗어던지고 인켈 오디오를 켜 놓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거실 베란다 창문께로 별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청량한 별들이 깊은 어둠 속을 섬세하게 유영하는 게 보였다. 머릿속에는 꿈이 묻어 있었는지 조금 전에 꾸었던 꿈이 유영하는 별들 사이에서 비추어졌다가는 사라졌다. 꿈이 사라져 가자 무력감이 그 자리를 밀고 들어왔다. 그러자 잠깐만이라도 그 꿈을 가슴에 간직하고 싶어졌다. 무거운 머릿속이 편안해질 것만 같았다.

      

  왜 노란 잠수함이라는 노래가 내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일까? 언젠가도 몇 번 이와 같은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바다와 항구도시와 노란 잠수함. 내 삶의 카테고리 안에서 별로 색깔이 바래지도 않은 채, 설 푸른 잠과 더불어 문득문득 나타나오는 이것들은 아마도 내 본질과 맞닿아 있는 입구에서 자리를 틀어잡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그렇게 느끼고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던가? 나는 사무실의 서류더미에 묻혀 십수 년을 지냈고, 또 술을 마셨고, 불어판 책을 보다가, 차를 몰고 다녔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의 욕망을 쫓는 사람들의 정말 진부한 그따위 일을 바로 앞에 두고 있다.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 던져져 있는 옷으로 눈길이 갔을 때, 해질 무렵 만났던 그가 생각났다. 그의 각진 얼굴과 이마에 선명한 한 줄의 주름살이 서서히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머릿속이 별빛처럼 투명해져 가기 시작했다.

이전 11화 여기서 그 무엇이 자유스러울 수가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