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그를 만났다. 그 일이 있는 후 일주일이 지나서 <조앙ㆍ마두>를 찾았을 때 마담은 긴장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내가 왜 그렇지요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마담은 손님을 불편하게 해 드리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낙담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마담의 시선이 향해 있는 테이블에는 검은 양복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가 이곳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로 갔다. 그는 손을 내밀었다.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그의 두꺼운 손에 실려 있는 압력을 느끼면서 나는 손을 풀었다.
- 한사장님께서 거듭 안 된다는 것을 간곡히 말씀드려 무작정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실례가 됐다면 양해 바랍니다.
그는 마담을 사장님이라고 호칭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의 태도로 보아 마담은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에 반해 마담은 그가 부르는 호칭과 그가 나타내 보이는 호감에는 그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그런 분위기 사이에 끼여 있는 나는 우선 마담의 난감함을 이해하는 쪽에서 그를 마주해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 괜찮습니다.
그는 검은 양복의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주었다. 민주자유연합 하진지구 선거대책본부장. 그 아래로 몇 개의 직함이 더 적혀 있었고, 민홍섭이라는 굵은 글자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 주셨더군요라고 그가 말했을 때까지 나는 그가 내민 명함의 의미를 몰랐었다.
- 그들은 우리에게 타격을 입히려고 했지만 상황은 그들의 생각대로 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겼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한사장님 사업소에 그들이 다녀갔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웃어른께서 저희들의 부주의를 책망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르신께서도 이번 당선에 고무되어 계십니다. 그렇지만 일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지난번 일을 묵과할 수가 없었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접한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들의 부주의에 관해서는 한사장님께 지금도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담을 향해 얼굴을 돌리면서 잠깐 고개를 숙여 사과의 표시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담은 그저 무표정이었다.
- 죄송합니다만, 우리가 알게 된 정보를 웃어른께 보고 드리자 당신에 대해서 호감을 표시했습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다보았다. 그의 각진 얼굴에서는 충복에 대한 스스로의 자만심이 넘쳐흘러 나오고 있었다. 검은 정장아래 숨겨진 그의 육체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잘 단련된 몸놀림이 지금은 평정을 유지한 채 고요함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왔다.
- 당신이 과거와 지금, 가지고 있는 조건들이 우리 조직에서 필요로 합니다. 이번의 상면이 그런 기회로 연결됐으면 합니다.
나는 그의 이 말의 의미가 지금 나에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까지에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로 하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말한 의미를 하나씩 정리해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쓴웃음이 돌았다. 내 신중하지 못한 처신이 떠오르면서 그날의 일이 몹시도 후회가 되었다. 정말 그랬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그의 진지한 얼굴에 별반 거부감은 없었다.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거부감은 없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전개되지 않도록 강경하지 못했던 마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날 선택한 결과에 대한 방향이 이렇게 나타나오자 나는 마침내 자신의 경솔함에 후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 저는 오늘 술을 마시기 위해서 <조앙ㆍ마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하루를 묻어두기 위한 몇 잔의 술입니다.
그의 각진 얼굴이 신뢰감을 담고서 아무렇게나 허물어졌다.
- 정말,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의 굵은 저음이 진지하게 사과를 구했다. 상대방에 대해서 감추고 싶지 않은 호의를 그대로 드러내서인지 그의 목소리가 가슴에 와닿았다.
- 그쪽의 기대에 제가 달리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뵙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검은 양복 속의 잘 단련된 몸을 일으킨 그는 마담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나갔다.
그 뒤로 한 번 더,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는 그쪽의 일에는 관심이 없으며 이와 같은 일로 다시 연락이 안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단호한 나의 말에 그는 당신과 일을 함께 하고 싶었으나 결과가 이렇게 돼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일상의 행운을 기원한다며 내 기억 밖의 저 멀리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