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바꿔놓았다
홈스쿨링이 하고 싶다고?
"엄마! 나도 홈스쿨링 하면 안 돼?
도서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찾아보며 혼자 공부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
공부는 내가 하는 거니까 방법도 내가 정할 수 있는 거잖아?"
당시 코로나로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 날이 많았었다. 제주에서 며칠을 지내던 어느 날, 1호가 불쑥 말했다.
아이의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에게 '홈스쿨링'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였다.
"그러게. 너 말도 맞네."
애써 덤덤하게 답했지만, 마음 한쪽이 묘하게 흔들렸다. 아이의 낯선 질문 하나가 마음속 깊이 남았다.
언제 이리 컸을까? 제주에서의 시간은 아이를, 그리고 나를 조금씩 바꿔놓고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
제주를 떠나 일상으로 돌아온 첫날, 이상하게 허전했다. 넓고 한가한 도로대신 도로의 소음이, 빽빽한 차들과 소음이 단번에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오니 '역시 집이 최고야.'라며 웃음이 나왔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보자. 여행지의 자유로움이 나의 선택이었듯, 일상도 마음먹기에 따라 다시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제주에서 아이가 말했던 홈스쿨링이 마음에 걸렸다. 도서관에서 홈스쿨링과 관련된 책들을 빌려왔다. 내가 그동안 홈스쿨링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음을 알았다. , 왜 나는 단 한 번도 학교를 다니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참 희한했다. '학교'라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모든 일상을 아이의 학교가 중심이었던 걸까? 홈스쿨링을 하면 꽤 자유로운 삶을,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주에서 배운 미니멀라이프
그동안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보내는 일상이 많아지면서, 갖고 싶은 물건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숙소에서 한 달을 지내며 생각했다. 왜 우리는 사용하지도 않는 수많은 물건들을 이고 지고 사는 걸까. 그 질문은 제주에 머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미니멀라이프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지난 1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모두 버려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말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언제가 입을지도 몰라', '다시 필요할지도 몰라', 그렇게 남겨두었던 것들을 하나둘 꺼내 큰 봉투에 담았다. 생각보다 양이 꽤 많았다. 정리를 마친 후 느껴진 건 상쾌함이었다. 버리기를 통해 오는 작은 기쁨,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제주에서의 한 달은 나를 바꾸었다. 진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덜 가짐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배웠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한 게 아니라,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더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 살기 중독자
"오늘 뭐 할까?"
"오늘 하루 어땠어?"
한 달 살기를 보내며 매일 아침저녁,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다.
"너무 재미있었어. 오늘 하루도 잘 놀았어."
잠자리에 누워 활짝 웃으며 하루를 곱씹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 이래서 한 달 살기에 중독되는 게 아닐까.
일상을 벗어난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내게 그랬듯 아이들에게도 살아가는 힘이 되면 좋겠다. 잠시 멈추고 숨 고를 줄 아는 마음, 그것만으로도 삶은 단단해진다. 때로는 세상이 버겁더라도,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스스로 보듬고 단단히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이 건강한 성인이 되기를.
언젠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우리 가족의 한 달 살기를 미소 지으며 추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겠다.
� 그렇게 제주가 우리에게 남긴 한 달이 지나고,
다음해 우리 또 다른 섬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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