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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리셋하다

심장 박동이 진짜다

by 리플로우 Mar 25. 2025

첫 운동은 강변을 '느릿한 거북이처럼 걷기'였다. 

햇빛 좋은 날엔 무조건 운동화를 신고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채 온전히 해를 즐기며 걸었다. 걷기가 지루한 운동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맹목적인 걷기는 산책도 아닌 것이, 운동도 아닌 것이 늘 어정쩡했다. 

그런데 이 어정쩡한 걷기를 하는 동안에는 '살을 빼겠다'거나 '다이어트를 해야만 해'라거나 '여기부터 저기까지 무조건 가야 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이 생각이라는 것은 때로 모든 운동을 방해한다. 

나는 걷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들을 살폈다. 사람은 특정한 장소에 놓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예를 들어, 한때 나는 설거지를 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곤 했는데, 그 당시엔 왜 그런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왜 나는 개수대 앞에서 이제는 지나간 일을 떠올리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가만히 되짚어보니, 그 시기 나는 밖에서 모멸적인 일을 겪었고, 그것을 씻어내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감정이 설거지라는 행위로 이어졌던 것 같았다. 마치 우리가 꿈을 꾸는 동안 하루 동안의 감정이나 무의식 속의 기억이 다양한 이미지로 나타나듯이, 특정한 행동 중에 떠오르는 오래된 감정들도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얼마나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올라오는지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감정에 자동적으로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고 오직 설거지의 동작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과거의 감정들이 희미해졌고, 이제는 설거지를 하며 그 기억들과 조용히 작별할 수 있게 되었다.

걷기도 마찬가지였다. 걸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은 대부분 나의 개인적인 일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운동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고, 동시에 걷는 행위 자체를 즐기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걷는 장소를 의도적으로 바꿔보며,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에 하나하나 집중해 보기로 했다.

걸으면서 어느 나무를 보면 소풍이 떠오르고, 들풀을 보면 어린 시절이,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오래된 친구가 떠오르는 등, 이유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기억들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 순간 나는 ‘아, 내가 이런 기억들과 함께 살아왔구나’ 하고 감탄했고, 그 기억들을 통해 생각의 전환을 시도해보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다름 아닌 내 삶과 화해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온전히 걷기는 나와의 화해(Dall-E)온전히 걷기는 나와의 화해(Dall-E)


우리는 운동이나 다이어트를 단순한 육체적 활동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상처받은 마음, 염려,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성취와 보상의 과정 또한 모두 뇌의 작용에 기반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떤 스트레스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걷기를 선택했을 때, 그 걷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들이 어떤 상태인지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다음, 본격적으로 생각을 비워내며 발바닥에 전해지는 감각,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새소리와 햇빛, 나무와 풀,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탈것들의 소리를 느껴보자. 그렇게 걷는 것 자체에 온전히 집중한다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온전히 걷기’ 그것은 일종의 걷기 명상이다.

걷기 하나조차 온전히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그날, 오랫동안 등에 짐처럼 짊어지고 다녔던 생각과 감정들이 비로소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나만의 리듬과 속도에 집중하며, 오히려 더 빠르고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걷던 시간은 점차 빨라졌고, 나를 둘러싼 공간에서 느꼈던 나쁜 감정들도 어느덧 결이 달라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지난 일이고, 난 지금 여기 있다.'

'생각은 환상이다. 걷는 동안 심장의 박동이 진짜다.'

'볕이 좋은 날은 볕이 좋아서, 비 오는 날은 비가 좋아서 달리면 되는 거지.'


생각이 병인 시대, 넘쳐나는 정보는 때로 독이 된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어디에 좋다더라' 하는 정보를 찾아다니는 시간에, 차라리 직접 몸을 움직이고 걷는 편이 훨씬 빠르다.

그 즈음 나는 이어폰을 사서 스마트폰에 연결한 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걷고, 뛰고, 다시 걷고, 또 뛰는 식으로 반복하게 되었고, 느리지만 분명한 나만의 '걷기의 도(道)'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 재미를 발견했다면, 다이어트는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어느 순간, 잡념이 스르르 사라지는 때가 찾아온다. 그 순간, 걷기는 '뛰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심장이 일정한 리듬으로 뛰기 시작할 때, 오히려 가장 맑고 긍정적인 생각들이 마음속 깊이 스며든다.

문제는 그 일정한 리듬까지 도달하지 못할 때다. 뛰기가 버거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 틈을 타 다시 잡생각이 스며들 때.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흔들리는 때이다.

온전히 걷고자 한다면, 오늘 당신의 생각과 감정이 어떠한 지부터 살피자!

오늘의 걷기와 내일의 걷기가 결코 같지 않음을 그때서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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