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코로나로 자식들 자주 못 만나니 아쉽지?"
"시대가 그런 걸 우야노. 세상이 물결치는 대로 적응하고 살아야지."
"엄마, 엄마는 자식들 키울 때 남들처럼 밖에 나가서 어찌 그 흔한 자식 자랑 한 번을 안 했어?"
"자식 자랑할 거 뭐가 있노. 말 안 해도 다 알고 보이는데. 그것만큼 말조심할 것도 없데이."
"엄마, 아버지 돌아가시고 요즘 혼자 시골에 있으니 적적하고 힘들지?"
"너희 아부지가 보고 싶긴 해도 평생 요즘처럼 몸이 편한 적이 있나 싶다. 아부지보단 차라리 내가 남아서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도 감사하지."
"엄마, 시집와서 그리 고단하게 힘들게 살았었는데 다시 젊음을 돌려줄 테니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안 돌아갈 거지?"
"힘들었어도 그 시절엔 너희 아부지도 있고, 가난했어도 애들 먹이고 키우는 재미로 열심히 살았는데 당연히 그 시절로 돌아가야지."
우문현답 엄마의 대답이 늘 좋아서 오늘도 난 그저 엄마의 말풍선을 툭툭 건드려본다.
고단한 삶을 인자와 다정으로 살아낸 우리 엄마. 당신의 말씀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왔고, 그 물결은 폭풍이었기에 나무 그루터기처럼 줄어든 몸뚱이만 겨우 남으셨다. 마을의 보호수처럼 고향을 지키는 그루터기는 내심 자식들이 제 위에 앉아 쉬기를 기다린다. 자식들이 향수를 느끼는 건 마을이 아니라 한 그루의 나무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찻길에 청춘이 영영 머물기를 바랐던 영원히 젊은 한 시인처럼 나는 바란다. 나무는 오래도록 곁에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