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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Sep 25. 2024

병환을 잘라 꿈을 비추다

앙리 마티스




 사람은 언제나 기쁜 일만 벌어지길 바라지만, 시련은 인간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합니다. 당신의 첫 번째 시련은 붓을 잡게 하였고, 두 번째 시련은 당신의 붓을 놓게 만들었으니까요.

 법대생으평범한 식자층으로 살던 당신은 어느 날 수술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무료할세라 어머니는 당신에게 물감을 주었고, 그렇게 당신은 화가가 되었습니다.      


 다소 늦게 불태운 당신의 예술혼은 당신이 사유하는 대로 그림 위에 담아냈습니다. 머릿속에서 종일 부유하는 상상력을 정제할 수 있을 때까지 수없이 밑그림을 그리고선, 일정 단계에 올랐을 때 마침내 당신은 야수파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세 가지 색이면 족하다. 하늘을 칠할 파란색, 인물을 칠할 붉은색, 동산을 칠할 초록색!

 사상을 단순화시킴으로써 고요를 추구하고, 내가 추구하는 유일한 이상은 조화이다...

 그런 연유로 투명한 어항 속 빨간 물고기도, 빨간 집 창 너머로 보이는 작은 초록 풀밭도, 둥글게 손잡고 돌며 추는 춤도, 모두 당신의 역동적인 동선과 색을 만나 강한 호흡을 내뱉고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평생 물감을 묻히고 살아온 당신의 삶은 노년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들었습니다. 십이지장암을 앓고 수술한 후 더 이상 물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지금과 달리 물감이 신체에 유해하던 시절이라 더 이상 붓으로 색칠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련은 인간을 새로운 장에 넘어가도록 하는 법. 그로 인해 당신은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됩니다.


 더 이상 물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몸이기에, 당신은 작은 종이에 드로잉을 하거나 색종이를 오렸습니다. 음악을 표현하기도 하고, 적은 수의 곡선으로 얼굴들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붓을 들 수 없는 건 깊은 절망이었겠지만, 당신의 드로잉과 색종이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현재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먼발치에서 보면, 당신의 병환이 당신의 작품을 더 높은 차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예술로 삶을 다 채우며 영원히 꿈을 꾼 당신. 그 모습은 이카루스가 추락하는 그 찰나까지 하늘에 닿기 위해 날갯짓을 멈추지 않던 모습을 닮았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상황에도, 밀랍에 녹은 날개가 별처럼 반짝이고, 심장의 붉은 고동은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은 병환이라는 뜨거운 태양에 밀랍이 녹아도, 짓이겨진 날개로 추락이라는 이름의 비상을 하였습니다.     

 


 용기를 뻗쳐 비상한 당신의 흔적들이 기나긴 휴식을 하고 있는 지금도 후대를 비춥니다. 평안한 남프랑스의 어느 미사실에는 오늘도 당신의 드로잉 위로 원색의 빛조각이 내리쬐고, 영원히 쉬고 있는 당신의 흔적에, 후대의 젊은이는 다시금 날아오를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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