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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유리에 비친 자신이라는 유령에게

2부

by 지구 사는 까만별



입사 2년 차, 대완은 오늘도 직장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선배 기자들을 한 동안 따라다닌 이후에는, 사내의 기자들이 자신이 기획한 기사를 단독 취재 할 수 있다고 했다. 제법 무거워진 행보와 달리, 대완의 발걸음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출근을 해서 앉아있자 예상처럼 부장이 대완을 불렀다.

“진대완 기자, 여태까지 수습하느라 수고 많았네. 이번에 자네가 취재를 한번 해보게. 자네의 역량을 보려고 하는 거니까 주제도 한 번 자네가 선정해 보게나.”

부장님 손을 탄 서류가 지시와 함께 신입 기자의 양손에 주어졌다.

“알겠습니다. 부장님. 감사합니다.”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대완의 심장은 어릴 적 마당을 뚫던 처마의 빗방울 마냥 토독토독 심장을 두드리다 따끔거렸다.

대완은 자신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종이로 쓰인 명패 옆에는 기자라는 자신의 신분이 새겨져 있었다. 사내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유리에 비친 자신과 동행할 때마다 대완은 멈칫하였다. 하얗게 부서질 듯한 와이셔츠와 풀이 빳빳하게 배인 짙은 양복을 매일같이 두르고 있는 자신은, 명절마다 고향길을 찾아오던 사촌형제의 실루엣과 닮아 있었다. 매일같이 난닝구와 체육복 차림이었던 어릴 적 대완은 그 모습이 부러웠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대완은 아버지의 피땀을 먹고 오늘의 와이셔츠를 두를 수 있었다.

내 아부지는 화이트 칼라들을 위해 어떤 넝마들을 입어왔을까. 사촌 형제들은 화이트 칼라를 벗지 않기 위해 어떤 빳빳한 질감들을 경험해야 했을까...


갓 수습을 끝낸 대완에게는 차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대완은 사무용 육공 노트를 펼쳐 자신이 처음으로 갚아야 할 이야기에 무엇이 있을까, 부모님의 명절 선물을 고르듯 잔잔히 단어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 대완은 갑자기 문장들을 휘갈기기 시작했다. 문장을 쓰는 대완에게서 강한 리듬감이 느껴졌다. 대완은 화이트 칼라와 효자이기 전에 여린 숲이었다. 그리고 여린 숲의 본성은 바람에 맞춰 휘날리는 들놀이만이 받아줄 수 있으리라.

와이셔츠를 입고 일을 한다고 인디언의 유전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인디언이란 이름으로 그릇되게 불린다고 족속들이 괴물이 되거나 멸종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완은 몇 군데 전화를 돌린 뒤 수첩을 덮고 자신의 자리를 벗어났다.






초록의 봄기운에 햇살이 녹아 흐르는 봄날의 오후, 대완은 출장차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이 기차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대완을 훔쳐보고 달아나길 반복했다. 그 찰나의 풍경이 마치 인생처럼 느껴졌다.

‘찰나들을 거쳐 이제 취재하러 가는구나.’

제법 터널이 많았던 삶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빨리 가야 한다는 이유로 산의 맥이 끊기는 일이 늘어가듯이, 대완의 어둠에 대해 사람들은 그다지 알아봐 주지 않았다. 빨리 가야 한다고 산도 끊는데, 한 사람의 속이 어두운 걸 어찌 세상이 눈치채줄까...

대완은 꽤 쉽게 터널들을 납득했다. 양복을 입은 대완과 농사를 짓느라 늘 작은 구멍이 슝슝 뚫린 난닝구 차림의 아버지 모습이 차창 사이로 휙휙 겹치며 기차는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여유롭게 역에 도착한 대완은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대완에게 약속 장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익숙한 장단이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향하다 보니 약속 장소에 다다를 수 있었다. 굿거리장단과 환호가 일렁이자 대완은 반가이 쓴맛을 삼키면서도, 이 소리를 듣는 건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렇게 대완은 공연장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공연장 입구에서 통화로 인해 길들여진 음성이 익숙하게 들려왔다. 햇빛에 피부가 그을린 채 생활한복을 입은 장년의 남성이었다.

“진대완 기자님? 어서 오시소. 일찍 오셨네예.”

“예 반갑습니다 소장님.” 대완이 악수를 건네자 강한 눈빛의 소장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손을 맞잡았다.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https://youtu.be/Vs1980c5yLQ?si=EP2fIqDP4T3-vn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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