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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아기새에게

- ID blackstar. 50대(여) birdmom

by 지구 사는 까만별


조석으로 부쩍 시원해져 취미로 새벽 등산을 하고 있습니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힌 보드라운 흙길에 뿌리를 내리는 순간, 나는 산속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숲속 산새들의 지저귐과 바람이 나무에 달라붙어 껍질에 부들부들 마찰음이 공명합니다. 사념을 잊고자 걷는 숲속인데 걸음을 뻗을 때마다 초록의 새초롬한 들풀이 내 발목을 휙휙 휘감습니다. 한 줄기씩 미련으로 끊어내보았지만, 결국 생각은 신발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을 만큼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때 늘 말이 없던 나무가 말을 걸었습니다.

오늘은 지나가지 않고 왜 여기서 머무는 거니?”

광합성을 막 시작하느라 졸음이 묻은 소리에 놀랐지만, 소리가 달아날세라 냉큼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발길이 잘 안 떨어지는데 나도 영문을 모르겠어. 덩굴은 안 보이는데...”

그러자 나무가 알겠다는 듯 소리를 키우며 말을 했습니다.

“여태 수십 년 동안 여기에 뿌리내리면서 투명한 덩굴에 발이 묶이는 동물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지.”

“그게 뭔데?”

“너 혹시 아기 새가 있지 않아?”

“응...”

그제야 내 발을 꼼짝 못하게 만든 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흐르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끈적한 제 집착이자 미련이었습니다.

내 품에는 지금 다 성장한 여전히 아기의 형상을 한 새가 있습니다. 아기 새는 언제부턴가 포르르 날아오르기 위해 자꾸만 날갯짓을 합니다. 연연한 바람을 일으키는 날갯짓에 제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면서도 꺼질 듯 두렵습니다. 포슬포슬 아기 숨이 그윽하게 퍼지는 이 둥지에서 머지않아 아기새가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걸 봐야 한다니... 서로의 지친 숨을 듣고도 저만치서 포르르 날아와 온기로 품어주던 우리는 오랫동안 한 그루의 나무에서 자연스레 융화되듯 지냈습니다. 하지만 둥지에서 모이를 받아먹고 자라난 아기 새는 나무 위에서 고개를 뻗어 숲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영양분으로 자라나 어느 순간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는 것을 어미새는 압니다. 둥지를 튼다는 건 새순을 틔우는 것만큼 지극한 풍경이고, 아기새가 떠난 빈 둥지에 스며드는 바람에도 베이는 무기력한 상흔이 바로 나이테가 아닐까 하면서...

어미새는 자신의 나이테를 기쁘게 둘러준 아기새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늙어감에 비례해 함께 성장해주는 아기새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음...아기를 위해 무얼 해주면 좋을까...”

고심하다 어미는 자신에게 말을 건네준 숲속 나무를 다시 찾았습니다. 나무는 멀찍이서 나를 보자 바람을 태워 이파리를 흔들며 반겨주었습니다.

아기새는?”

“곧 떠날거야. 당장 날것처럼 날갯짓에 힘이 제법 들어가더라. 비바람에 떨어질까 두려운 것도 다 내 걱정인가봐.”

그래. 우리도 처음엔 서툴게 시작했잖아.”

“그랬지. 예전에는 내가 팔을 뻗어 비바람을 피해줬는데, 스스로 할 수 있게 된 건 기쁜 일이겠지... 본디 그런건데...”

잠시 생각하다 어미는 나무를 향해 고개를 들고 말했습니다.

“아기가 둥지를 떠나기 전에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어. 도와줄래?”
“당연하지.” 나무는 파르르 흔들며 약속했습니다.

다음날 어미는 아기새와 함께 나무를 만나러 숲을 찾았습니다. 나무 아래 놓인 벤치에는 햇살이 데우고 있었고, 바람도 사람들 발자국처럼 쉴 새 없이 드나들었습니다.

아기새는 소풍 나온 듯 파닥거리며 즐거워했고, 어미는 아기의 파닥이는 순간을 담느라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바람이 잠시 잦아들자 어미는 말했습니다.

“아가야. 작은 몸짓에도 너처럼 내 세상을 흔든 존재는 없었단다. 그렇게 큰 존재로, 내 작은 아가로 너는 평생 살아 갈거야.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눈을 감으면 바람처럼 난 네게 닿을거란다.”

아기새는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파닥파닥 거렸습니다. 어미는 마음이 급해져 나무에게 부탁했습니다.

사진을 좀 찍어줄 수 있어?”

“당연하지.”

아가와 엄마는 햇살의 조명 아래 벤치에서 나란히 앉아 나무가 찍어주는 평화로운 시간을 찍었습니다. 나무 사이로 햇살 기둥들이 아기새를 축복하며 부서져 내렸습니다. 아기새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여린 엄마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습니다.

“엄마, 나를 자립시킬 만큼 잘 키운 결과가 부디 외로움은 아니길 바라요.”

엄마는 데인 듯 눈이 뜨거웠지만, 미소를 지었습니다.


미소를 바라보던 아기새는 서서히 날개를 젓는 연습을 하다, 마침내 창공 위로 유유히 날아올랐습니다. 엄마는 때가 되었다는 듯 홀가분하게 손을 흔들었고, 아기새는 투명한 눈물을 뒤로 한 채 점점 작게 사라져갔습니다. 비행 전 나무가 찍어준 사진만이 빈 둥지에 바람처럼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어미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창공을 쳐다보는 동안, 나무는 해가 질 때까지 어미의 사진을 가지로 대신 들어주었습니다. 어미의 눈동자는 노을색과 비슷해져가고, 나무는 어미의 마음을 식히고자 이파리를 부쳐 바람을 날렸습니다. 어느 순간 사진의 잉크도 말라 두 새들은 사진 속에서 나무를 사이에 두고 빛이 바래지도록 오래도록 웃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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