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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수 Oct 22. 2021

서울 첫나들이

마지막 여행자가 향한 곳

노란 개나리가 핀 봄날, 한 할아버지가 서울로 가는 광역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비틀비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허약해 보였습니다. 승객들은 불안하게 쳐다보았고, 도움을 받아 간신히 한 청년의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복도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는 청년에게 창가 자리에 앉겠다고 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던 청년은 일어나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어렵사리 자리를 바꾸었습니다. 승객들은 몸도 성하지 않은 할아버지가 참 까다롭다 싶었습니다.


  버스는 한강 다리를 건너 노란 개나리가 만발한 남산을 지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마른 북어처럼 맥없이 그저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난 강원도 산골에 산다우. 서울 구경은 처음이지.”

  청년은 할아버지에게 창가에 비치는 서울을 설명했습니다. 저것이 남산의 뾰족탑이고, 저것이 남대문이고, 저것이 서울의 한 복판 광화문이라고. 설명하다 보니 청년이 내릴 곳은 한참 지나고 말았지요. 할아버지는 마른눈에서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고마워, 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 혼자 나들이 나왔어. 그래도 서울은 한번 보고 죽어야지. 청년이 아니었다면 저게 남대문이며 광화문을 어떻게 알겠노.”    

 

  패인 나무뿌리 같은 할아버지의 손이 청년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깊은 산골에서 화전민으로 평생을 살던 할아버지는 서울의 화려한 풍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기억에 담아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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