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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Sep 18. 2024

#3. 이렇게 컸소

텃밭의 시간8

#3. 이렇게 컸소.     

 2학기 농사의 절정은 무 농사였다. 

 모종을 심는 날. 검은 비닐 포트마다 무 모종이 담겨 왔다. 무 모종은 토마토 모종보다도 약했다. 떡잎이 아직 떨어지지도 않은 모종들이었다. 더 조심해서 심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를 알 리 없는 2학년 아이들은 토마토 좀 심어본 자신감으로 자기 몫의 무 모종을 집더니 급기야 뿌리와 줄기를 뚝 끊어내는 일을 만들었다. 


 “으악!”

 “악!!!! 멈춰! 다 멈춰! 선생님이 뽑아 줄게욧!!!”     

 우여곡절 끝에 무 모종 심기를 마쳤다. 어떤 무는 너무 깊게 심었고, 어떤 무는 너무 얕게 심었다. 물을 주니 다시 쓰러지는 모종도 있었다. 과연 이 무들이 자랄 수 있을까 근심이 많았다. 

 걱정도 잠시. 무는 신기하게도 자기 살길을 잘 찾아 뿌리를 내렸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비실비실한 녀석들도 용케 뿌리를 내리고 하늘 향해 잎을 펼쳤다. 

 곧 무도 솎아 줄 때가 왔다. 심은 무 중에 딱 반을 솎아내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덜 자란 무를 솎아내는 것이다. 어떤 무를 솎아낼지 고민 고민을 하다가 하나를 고르고, 둘이 힘을 합해 무를 솎아냈다. 솎아낸 무 줄기 아래에는 너무 작은, 지름이 500원 동전만 한 무가 달렸다.      

 “얘들아, 생무 먹어본 적 있니?”

 “아니요.”

 “선생님이 어릴 때 시골에서 무 농사를 지었었거든. 엄마가 밭에서 무를 쑤욱 뽑아주면,”     

 나는 밭에서 무 뽑는 시늉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말을 이었다. 


 “뽑은 무에서 흙만 털어낸 뒤에 이빨로(이가 올바른 표현이기는 하나 이 상황에선 이빨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느낌이다. 이걸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직업병일 것이다) 무 껍질을 좍좍 긁어낸 다음에”     

개그 콘서트 갈갈이 뺨치는 표정으로 앞니를 팍 드러내고 무를 갉아 먹는 퍼포먼스를 해 준다. 애들은 철 지난 선생님의 개그에도 배꼽이 자지러지게 웃는다.      

 “우하하하!”

 “아삭! 하고 무를 씹어 먹었지. 그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 

 “우와 진짜요? 맛있어요?”

 “우리도 먹어 볼까?”

 “엥? 다 안 자랐는데 먹어요?”


 나는 호기롭게 무를 씻어 과도로 얇게 썬 뒤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씹는 내 입을 마흔두 개의 눈동자가 주목하고 있다. 아삭하고 단맛이 물씬 느껴졌다. 꿀꺽. 


 “맛있어!”

 “앗, 저도요!”     

 다섯 명이 무를 먹어 보겠다고 손을 들었다. 나는 먹기에 앞서서 주의 사항을 말했다.      

 “먹고 나서 이상하면 뱉어도 돼. 그런데 있잖아, 평소에 젤리나 초콜릿같이 설탕 가득한 음식만 좋아한 사람은 자연의 단맛을 잘 못 느껴. 몸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건강한 맛을 좋아하지 않지. 평소에 채소도 잘 먹고 건강한 입맛인 사람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자연의 음식에서도 맛있는 맛을 느낄 수 있어. 이 무는 우리가 정성으로 키운 무잖아? 무의 건강한 맛을 느껴보려고 노력해 봐. 분명 맛있을 거야.”      

 다섯이 500원짜리만 한 무 하나를 나누어 먹었다. 얼굴을 찌푸리고 뱉어낸 아이도 한 명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생각보다 맛있다며, 정말 단 맛이 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고는 자기는 건강한 입맛이라고 우쭐대기가 덤으로 따라왔다. 무가 맛있어 봐야 얼마나 맛있겠냐는 얼굴들이 조금씩 건강한 맛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더 이상 무를 맛보지는 못했다. 솎아낸 무는 1학년 동생들의 텃밭에 나눠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비록 맛을 볼 수는 없었지만, 동생들이 키워 줄 것이라고 하니 그나마 덜 아쉬워했다. 그 후로는 우리 동생 무들이 1학년 밭에서 자란다며 1학년 무밭도 살피는 아이들이었다.     

 

 11월이 되었다. 땅 위로 두툼한 무의 머리가 불쑥 올라왔다. 이제 수확을 할 때이다. 총 열세 개의 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 둘이 무 하나를 뽑기로 했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 뽑자고 하면 또 난리 난리가 날 테니 이번엔 아예 운동장에서 놀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와서 무를 뽑기로 했다. 첫 번째 순서인 아이들이 쑥 무를 뽑았다.      


"와, 귀여워!!!"     


세상에……. 마트에서 파는 무와는 너무도 달랐다. 고작 어른 주먹만 한 것이다. 무는 동그란 아기 얼굴을 하고는 밑에 도사님같이 수염뿌리를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었다. 수염뿌리에 흙을 주렁주렁 매달고 나온 무를 보고는 아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무를 들고 올림픽 성화처럼 흔들었다.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너도나도 뽑은 무를 구경하느라 난리다. 두 번째 무를 뽑았다. 아이들은 폴짝 뛰며 자기네 무가 좀 더 크다고 좋아했다(사실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고만고만하게 동글동글한 것이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 딱 맞았다). 무들이 말할 수 있다면 어깨를 으쓱하며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나 좀 보시오. 흙에서 이렇게 컸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애쓰며 이만큼 컸소. 대단하지 않소. 에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도 이만큼 크는데 아이들은 오죽하랴. 아이들만 컸겠는가. 나도 그러하고, 막내 선생님도 그러하고, 명퇴를 앞둔 선배 선생님마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애썼다. 더군다나 2023년은 동료 교사의 죽음을 함께 목도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준 이들이었다. 크지 않았을 리 없다. 성장하지 않았을 리 없는 한 해였다.   

  

 2학기에도 바빴던 8반 선생님네 반 무는 다른 반과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실하게 잘 자랐다. 8반 무는 가장 먼저 흙을 밀어내고 윗둥이가 크게 머리를 드러냈는데, 그런 무가 여럿이었다. 내가 8반 선생님께 정말 부럽다고 말하자 선생님은 텀블러의 커피를 들이켠 뒤 천천히 내려놓고는 창밖 어딘가의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 제 운은 무밭에 다 쓴 게지요."  

    

 그 말에 난 사레가 들려 한참을 콜록대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박장대소했다. 그땐 그 말이 너무 웃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깝고 고마운 것이다. 힘든 일을 미루지 못하는 성격이고, 몸이 아파도 티도 내지 않으며, 남에게 싫은 소리도 하기 싫어서 매년 학교의 궂은일을 맡아 하는 사람. 전생에 게으름뱅이였다가 소가 된 걸까? 어쩜 그리 불평 없이 우직하게 일을 하는지. 


 선생님껜 정말 무가 필요하겠어요. 무를 먹고 소가죽은 벗어 던져요. 내년엔 요령도 좀 피우고 자기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길 바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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