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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Sep 17. 2024

#2. 우리가 기른 것은 시금치가 맞습니다.

텃밭의 시간7

#2. 우리가 기른 것은 시금치가 맞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싹이 났어요!!"      

시금치 씨앗에서도 금방 새순이 돋았다. 빨간 코딱지 같다며 키득키득 웃음을 참고 씨앗을 뿌린 지 일주일 정도 지난 후였다. 너무 작아서 싹이 나긴 할지 걱정했는데 씨앗은 보란 듯이 예쁜 싹을 틔웠다. 씨를 직접 뿌리고 싹이 돋는 과정은 모종이 자라는 것보다 배로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어우, 시금치 같지가 않다. 너무 여리여리한데?"

"애기 새싹은 물을 살살 줘야겠어. 약해서 쓰러질 것 같아."      

아이들은 나름 어린 시금치를 잘 기르기 위한 토의를 하며 물을 주고, 또 노래를 불렀다. 그때 우리 반의 애창곡은 '접시 노래방'이었다.   

   

<접시 노래방>

-작사 김도연 작곡 김자현   

    

밥을 접시에다 쏙 

밥이 신나게 춤추네

김치는 랩하고 콩밥은 노래하네

핫도그는 기타치고 

케첩은 드럼 치네

상춧잎은 피리 불고 

띠띠리 띠리리리 띠띠리리리리

엎치락뒤치락 야단법석

접시 노래방     



 텃밭 앞에서 기타도 치고, 피리도 불고, 어깨동무한 채 엎치락뒤치락도 하고. 아주 야단법석인 모습이 어쩜 그리도 싱그러운지. 시금치 싹을 만지며 아이들 노래를 들을 때 나는 왜 아이들을 새싹에 비유하는지 실감했다. 

     

 그런데 시금치가 튼튼한 잎으로 자라지 못하고 루콜라처럼 연한 잎으로 키만 계속 크고 있었다. 좁은 텃밭에 시금치 씨앗을 너무 촘촘히 심은 탓이었다. 그럼 이젠 솎아낼 차례이다.     

 

 "시금치가 너무 촘촘히 있어서 튼튼하게 자라지를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시금치가 잘 자라게 시금치를 군데군데 뽑아 줄 거예요. 그걸 솎아내기라고 하지."

 "그러면 솎아내기 한 시금치는 어떻게 되나요?"

 "집에 가져가서 먹으면 되지."

 "와우!"     


 토마토 가지치기할 때처럼 시금치의 입장에서 안타까워하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수확한 작물을 먹는 기쁨을 맛본 뒤였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은 뿌리채 여린 시금치를 솎아 반찬통에 담아갔다. 국에 넣어 먹기도 하고, 샐러드에 넣어 먹기도 하고, 시금치 피자를 만들어 먹었다고도 한다.      

“근데요 선생님, 우리 아빠가 이거 자꾸 시금치 아니래요.”

“아……. 그렇게 보일 수 있어. 아직 다 안 자라서 그래.”

“제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자꾸 아빠가 시금치 아니래요.”     


아버님. 시금치가 맞습니다. 저희가 너무 촘촘히 심어서, 아직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그래요. 저희는 분명 시금치라고 써진 씨앗을 심었습니다. 


나는 얼른 시금치가 시금치답게 자라기를 바랐다. 솎아내기는 순조로웠고 남은 시금치들은 넓은 자리를 확보하고 잘 자라고 있었다. 솎아낸 시금치를 돌아가며 아이들이 집으로 가져갔는데, 솎아내지 않아도 될 시점이 왔지만, 아직 시금치를 못 가져간 아이들이 있었다.      


“선생님, 저는 언제 시금치를 가져갈 수 있나요?”

“이제 솎아내기를 안 해도 되는데……. 시금치는 아직 다 자라지 않았고.”

“저도 아기 시금치 먹어 보고 싶은데요.”   

  

그래. 네가 괜찮다면 다 자란 시금치가 아니어도 어떠하랴. 그렇게 원하는 아이들에게 시금치를 뽑아주었다. 결국 우리 반은 다 자란 시금치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버님. 그래도 우리가 기른 것은 시금치가 맞습니다.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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