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험군의 쪽파
여름방학이 끝났다.
2학기가 시작되며 우리는 가을 농사를 시작한다.
1학기에 흉작이었던 1반과 2반은 새로운 마음으로 텃밭 상자의 흙을 갈았다. 1학기 농사가 잘되었던 다른 반의 흙도 넣어 섞었다. 1학기에 농사가 잘 안되었으니 2학기에는 풍년이 되면 좋겠다고 하자 1반 부장님은 풍년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싹이 트고 키가 좀 자라기만 해도 고맙겠다고 하셨다. 모두가 1, 2반의 텃밭이 잘되기를 바랐다. 물론 우리 반도 잘 되었으면 좋겠고. 각자의 소중한 바람을 담아 각 반의 텃밭에는 무 모종, 쪽파 뿌리, 시금치 씨앗이 파종되었다.
목요일에 파종했는데 주말을 보내고 등교한 월요일에 바로 쪽파의 싹이 돋아 있었다. 쪽파는 눈 깜짝할 사이에 쑥쑥 커서 금방 파무침을 해 먹어도 될 정도로 자라는 것이다. 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는 쪽파 중 먼저 키가 크는 녀석들의 윗부분을 잘라 꽃다발을 만들어 아이들 집으로 보냈다. 파 꽃다발을 집에 가져간 아이들은 집에서 볶음밥에 넣어 먹고, 국에도 넣어 먹고, 달걀말이, 파전도 해 먹었다고 한다. 급식 시간에 달걀말이를 안 먹는다고 옆자리 친구에게 슬쩍 주던 아이가 달걀말이를 해 먹었다니 진짜 대단한 일이라며 같이 손뼉을 쳤다.
"근데요 선생님, 우리 아빠가 쪽파는 뿌리가 더 맛있는 거라던데요."
"앗. 그래. 사실 파는 맛도 영양도 뿌리가 더 좋지. 그럼, 내일부터는 뿌리도 뽑아 가져가자꾸나."
파를 잘라 먹고, 또 길러서 또 잘라먹을 요령으로 윗부분만 잘라준 건데. (아버님, 제가 파를 너무 화수분처럼 생각했나 봅니다. ) 아버님의 피드백을 잘 수용하여 그다음부터는 뿌리까지 뽑아 파 꽃다발을 만들어 보냈다.
우리 반이 2학기에도 성공적인 농사의 기쁨을 맛보고 있을 때. 1반과 2반 텃밭은 여전히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시금치는 싹이 트지 않았고, 무 모종은 방부제를 뿌린 마냥 심었을 때의 크기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지만 1, 2반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다른 준비를 해 두었다. 흙도 바꿔보고 거름도 줬는데도 못 자란다면 화분이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꽃을 심는 길고 파란 화분에 쪽파를 심어보기로 했다. 기존 텃밭 상자보다 훨씬 작고 얕은 화분이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천만다행으로 따로 심어 둔 쪽파는 잘 자랐다. 아무래도 기존의 텃밭 상자에 물 빠짐이 잘되지 않았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실험군의 쪽파가 성공적인 싹을 틔우자, 학교에 남은 꽃모종 화분에는 모두 쪽파가 심어졌다. 마리골드와 백일홍 옆에서 쪽파도 열심히 자랐다. 쪽파의 푸른 빛은 어느 꽃과 비교해 보아도 기품과 우아함이 뒤지지 않았다. 작은 화분에서 자라는 쪽파의 사연을 아는 이들은 절로 감사한 마음이 솟았다. 방과 후 꽃 화분의 쪽파에 물을 주며 얼굴을 마주한 사람들은 쪽파가 자라는 게 이리 감사한 일인 줄 몰랐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렇다. 무엇이든 잘 자라는 것은 이리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