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시간 4
#4. 상추 도난 미제 사건
상추도 잘 자랐다. 수확 초기엔 아래서부터 여린 잎 세 장을 떼어 반찬통에 가져갔다. 자라는 속도가 붙어 나중엔 식구 수 대로. 그러다 나중엔 10장씩 떼어 갈 수도 있었다. 상추가 아무리 잘 자라도 아이들에게는 일부러 많이 주지 않았다. 농작물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싶어서였다. 상추를 너무 많이, 자주 수확해 가면 이제 상추가 맛이 없어지고 흔해지게 될 것이며, 귀한 맛이 없어질 것이다(내가 상추를 수확해 우리 집에 가져가고, 이웃에 나눠 주고 한 것은 다 너희의 교육을 위해서였다).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과 상추를 수확하러 갔더니 이미 먹을만한 상추는 말끔히 수확된 채 여린 잎만 꼭대기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 상추를 말도 없이 가져갔다고 아이들은 분개했다. 그날뿐이 아니었다. 우리 밭만이 아니었다! 옆 반 상추도, 그 옆 반 상추도 줄줄이 뜯겨나가고 상추 대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급기야 아이들은 CCTV를 상추밭에 설치해야 한다고 난리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종이에 경고문을 써서 붙이겠다고 했다.
“2학년 4반 상추. 가져가지 마시오!”
경찰차가 있고 감옥이 그려 있는 가히 살벌한 경고문이었다. 나는 애들을 잘 달래서 문구를 부드럽게 수정시켰다.
“2학년 4반의 소중한 상추입니다. 우리가 잘 관리하겠습니다.”
수소문 끝에 범인(?)을 찾게 되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상추가 쑥쑥 자라고 있는데 우리가 수확을 바삐 하지 않으니 먼저 난 상춧잎이 문드러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걸 본 교장 선생님께서 상추가 아까워 당직 기사님께 상추를 정리해달라고 부탁하셨단다. 그래서 당직 기사님은 아주 성실히, 다 자란 상춧잎은 문드러지지 않게 차곡차곡 정리하신 것이었다.
차마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하지는 못했다. 알렸다간 그분들은 큰 원망을 듣게 되실 터였다. 모두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이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계속 두기로 했다.
텃밭은 우리 힘으로만 기르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아이들이 조그마한 물조리개로 졸졸 뿌려 텃밭에 주는 물의 양으로는 식물이 잘 자랄 수가 없다. 하루에 한 번은 내가 큰 물조리개로 충분히 물을 주었고,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아침저녁으로 두 번 이상 주어야 했다. 하지만 바빠서 텃밭에 코빼기도 못 비추는 날도 허다했다. 그런데도 텃밭 식물들이 잘 자라는 것은 교장 선생님, 당직 기사님, 시설 주무관님이 잊지 않고 텃밭에 발걸음을 주시기 때문이었다. 식물이 말라가면 물을 더 주고, 필요 없는 가지가 나오면 가지치기도 해 주시는 분들의 수고가 없었다면 우리 텃밭은 예전에 말라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분들을 범인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우리 텃밭을 도와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리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도록 했다.
많은 이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상추도 무럭무럭 자랐다. 상추는 높이 높이 자라 마침내 작고 노란 상추꽃이 한 아름 함께 피어났다. 상추도 꽃이 핀다. 그저 잎으로만 소비되었던 상추도 관심과 사랑을 주며 기다려주면 끝끝내 꽃을 피운다. 우리는 그 당연하면서도 신비로운 광경을 함께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