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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Sep 11. 2024

#3. 끝끝내 빨강으로 변하지 않는

텃밭의 시간 3

#3. 끝끝내 빨강으로 변하지 않는      


  토마토는 계속 무럭무럭 잘 자랐고 노란 꽃이 떨어진 자리에 초록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토마토가 이렇게 키가 크게 자라는 줄 몰랐다며, 자기 키만 해졌다고, 친구가 됐다고 좋아라 하였다.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자 아이들 사이에선 누가 제일 먼저 토마토를 따 먹느냐가 화두였다. 번호순으로 따 먹기에는 번호 느린 아이들이 불만이고, 키 순서대로 따 먹기에도 키 큰 아이들이 불만이었다. 누구나 가장 먼저 열매의 달콤함을 맛보고 싶어 했다. (심지어 나조차도…….) 우리는 학급 토의 후에 물을 열심히 준 사람이 먼저 토마토를 수확해 가기로 했다. 그래서 교실 앞에는 물 준 횟수를 표시하는 명렬표가 붙었다. 제일 먼저 온 사람이 물을 줄 수 있었는데 그 사람이 너무 많이 줬다면 물 줄 기회를 다른 친구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초록 열매가 주황색으로 변하고, 주황이 빨갛게 변해갔다. 압도적으로 물을 많이 줘서 1등이었던 준수는 익어가는 서너 개의 토마토 중에 무엇을 골라 따갈지 매일 고민했다. 드디어 수확하기로 한 날. 토마토를 집은 준수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 주변에 너도나도 머리를 들이밀었다. 빠알갛게 익은 열매가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했다. 살짝 잡고 비틀어 똑! 떼는 순간 아이들 입에선 우아~하는 소리가 났다. 소중한 첫 수확을 기념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준수는 두 손 소중히 토마토 한 알을 모셔다 반찬통에 넣었다. 환경을 생각해 일회용 비닐봉지 대신 집에서 반찬통을 가져와 토마토를 담아가기로 약속했던 터였다. 그렇게 차례차례 토마토를 수확했다. 어떤 아이는 따자마자 맛을 보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엄마 보여준다며 집에 한 알을 고이 모셔 갔다.


 때로는 열매가 초록색일 때 떨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열매들이 안타까워 주워다 창가에 놓고는 햇볕에 익혔다. 그런 녀석들도 햇볕에 후숙하니 나름 주황으로 변해갔다. 그러다 빨간색이 되면 원하는 아이가 가위바위보를 해 먹기도 했다. 그러나 주황에서 끝끝내 빨강으로 변하지 않는 토마토도 있었다. 어느 날은 가위바위보에 진 아이가 졸라댔다.     


 “선생님 저 너무 먹고 싶은데 주황색이라도 먹으면 안 될까요?”

 “아. 안돼. 배탈 날지도 몰라.”   

  

 사실 아이들이 하도 덜 익은 토마토를 먹으려고 해서 검색해 보았는데, 덜 익은 토마토에는 ‘솔라닌’이 있어 복통, 설사, 구토 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절대 먹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근데요 선생님. 냄새가 아주 달콤해요. 다 익은 것 같은데요.”

 “아냐. 그래도 안 돼.”

 “선생님, 냄새만 좀 맡아보세요, 네?”  

   

 아이가 들이민 주황색 대추 토마토의 냄새를 맡았다. 오잉? 냄새가 정말 달콤했다. 이거 정말 맛있는 냄새인데? 순간 내 마음의 소리를 살핀 아이가 냉큼 말을 이었다.   

   

 “선생님, 다 익은 거 같죠? 진짜 조금만 깨물어 볼게요.”

 “그…래? 그럼, 조금만 깨물어봐. 덜 익은 거 같으면 얼른 뱉어. 알았지?”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토마토를 아삭 깨물었다. 

 “어?? 선생님!!!”

 “왜? 왜? 왜?”

 “너무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아이는 주황 토마토를 마저 입에 쏙 넣더니 방방 뛰었다.      

 “너무 맛있어요!! 진짜 진짜 맛있어요!!”

 “우아~ 정말이야?” 

 “네! 네! 빨간 거보다 더 맛있는 거 같아요!!”

 “에엥?”     


 주황 토마토가 빨간 토마토보다 더 맛있더라는 얘기를 들은 아이들은 너도나도 창가에서 익어가는 주황 토마토의 냄새를 맡더니 다 익은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황 토마토 먹기에 도전하더니 다들 너무 맛있다고 환호하는 것이다. 나도 애들 따라 주황색 하나를 입에 넣어 보았는데, 입안 가득 고이는 달콤한 맛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 햇볕에 후숙하면 주황색이어도 맛있는 것인가? 약간 곶감 같은 효과가 나는 것일까? 솔라닌은 없어졌을까? 이러다 단체로 5교시에 배탈 나는 것은 아니겠지? 


 방과 후 협의실에 선생님들이 모이자마자 나는 우리 반이 발견한 놀라운 사건을 전했다. 아마도 햇볕에 후숙하면 주황색이어도 솔라닌이 없어지나 봅니다. 그러자 시크한 7반 막내 선생님이 더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우리가 심은 토마토는 방울토마토와 대추토마토가 있는데, 그중 대추토마토에는 빨간 대추토마토와 주황 대추토마토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황 대추토마토가 빨간 것보다 더 달다는 것을. 그걸 이제 알았느냐는 표정의 7반 선생님을 보며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러기도 잠시. 내일부터 주황색 열매도 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자 엉덩이가 들썩들썩한 것이다. 이 기쁜 사실을 지금 나 혼자만 알고 있다니……. 내일 아침에 우리 반 애들이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 주책없는 웃음이 입 밖으로 질질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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