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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Sep 13. 2024

#5 풍작과 흉작의 사정

텃밭의 시간5

#5. 풍작과 흉작의 사정     

 우리 반이 이렇게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옆에 있는 1반과 2반의 식물들은 도통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죽지도 않고 딱 그대로 천천히 말라가고 있었다. 그 반 아이들과 선생님이 물을 덜 주거나 관심을 덜 준 것도 아니었다. 급기야 큰 결단을 내리고 흙을 바꾸기도 했는데 여전히 좋아지질 않았다.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잘 자라는 우리 반 화분이 미안할 정도였다. 


 “선생님……. 여기 옆 반 화분에게도 우리 노래를 불러 줄까요?”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옆 반 화분은 노래를 얻어듣고도 잘 자라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노력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배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노래 하나를 더 알려 주었다. 그리고 자라지 못하는 텃밭의 선생님께도 그 노래를 선물했다.      

땅(Land)

-조유진

모든 땅이 많은 수확을 내야 하는 건 아니야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넌 가치가 있어     

모든 땅이 많은 수확을 내야 하는 건 아니야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넌 가치가 있어     

바람을 맞고

비에 흠뻑 젖고

돌멩이도 위로해 주며

그 자리를 지키다 보면 

언젠가 씨앗도 날아오겠지     

모든 땅이 많은 수확을 내야 하는 건 아니야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넌 가치가 있어     

모든 땅이 많은 수확을 내야 하는 건 아니야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넌 가치가 있어          

다른 반 텃밭은 어떠했는가. 3반 텃밭은 축구 골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축구공을 수시로 맞고 쓰러지는 참사가 여럿 있었음에도 시련을 이겨내고 꿋꿋이 잘 자랐다. 손이 빠른 5반 선생님네 텃밭과 손이 착한 6반 선생님네 텃밭도 주인의 부지런함에 은혜 입어 착실히 잘 컸다. 

 7반 텃밭을 소개하기 전에, 7반 선생님을 먼저 소개하고 싶다. 7반 선생님은 우리 학년 막내 선생님이다. 긴 머리에 수수한 차림으로 말과 행동이 신중하며 누구보다도 업무 처리가 빠르고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수업이며 학급 관리는 말할 것도 없이 유능한 7반 선생님이 올해는 웃음기가 줄었다. 다른 반에 비해 에너지 넘치고 떠들썩한 아이들이 몰린 학급이었기 때문이다. 반 배치를 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고르게 배치한다고 하나, 새로 만난 아이들끼리 새로운 시너지를 발휘하여 예상치 못한 산만함과 과잉 행동이 생기곤 한다. 올해는 7반이 그런 경우인 듯했다. 

 방과 후에 텃밭에 가면 자주 7반 선생님과 마주쳤다. 그녀가 상추에 물을 주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얘네가 너무 좋아요.”

 “그쵸? 이쁘죠?”

 “네. 얘네는 말이 없잖아요.”


  식물은 물만 줘도 이렇게 원하는 대로 쑥쑥 크는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여기에 오면 두통이 사라진단다. 

 그런 7반 샘의 옆모습을 보며 언젠가 7반 샘이 보여준 7반 아이들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에는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 서로 얘기하려고 달려드는 아이들 모습이 찍혀있었다. 너도나도 손을 들며 함박웃음을 짓고 선생님께로 달려드는 모습, 꼬물꼬물 뭘 만들어서 선생님께 가져다주고는 서로 말을 거느라 바쁜 아이들 모습. 나는 그 사진들이 인기 많은 선생님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여 좀 부러웠다. 

 7반 선생님은 토마토 잎에 손바닥을 휘 휘 흔들더니 향기를 맡아보라며, 샤넬 향수보다 더 좋은 향기가 난다고 했다. 요즘엔 애들을 보내자마자 텃밭으로 나온다고 했다. 선생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자기 손에서 나는 흙냄새를 들이켰다. 그러고는 뙤약볕에서 한참 동안 토마토에 부목을 대는 작업을 했다. 낮은 콧노래를 부르며. 그 모습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서, 상추와 토마토에게 내일 쓸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텃밭에서 7반 선생님의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미소를 보았다. 


  8반 선생님은 텃밭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잡초 뽑기나 가지치기는커녕 물도 잘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럴 만했다. 8반 선생님이 맡은 업무는 하루가 멀다고 사건과 민원, 공문이 밀려있는 방과후부장 업무였다. 그 사정을 아는지라 나는 우리 반 잡초를 뽑을 때 8반 잡초도 뽑고 그랬다. 


 “저……. 아까 밭에 갔었는데 누가 우리 반 잡초를 다 뽑아주셨더라고요.”

 “아, 저랑 6반 샘이 좀 뽑았어요.”

 “에고, 지난주엔 1반 부장님이랑 2반 선생님도 뽑아주셨는데. 상추도 따다 주시고…….”     

 심 봉사가 젖동냥으로 심청이를 키웠듯이 8반 토마토와 상추는 8반을 측은히 여기는 다른 반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고 컸다. 놀라운 것은 심청이가 누구보다도 예쁘고 효심 있는 딸로 자랐듯이 8반 토마토와 상추가 가장 건강하고 튼실하게 자랐다는 것이다. 

 8반 아이들이 방울토마토도 상추도 충분히 수확했다고 판단한 8반 선생님은 아직 방학이 2∼3주 남았는데 텃밭 정리를 선언했다. 너무 바쁜데 자꾸 도움을 받자니 텃밭일랑 그만하겠다며 토마토와 상추를 과감히 뽑아 화단에 던져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토마토는 척박한 화단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급기야 영산홍 나무 사이로 그 -우리 반 아이들이 서로 먹고 싶어 안달 내는- 달고 맛있는 주황 대추토마토가 대롱대롱 열린 것이다. 참으로 신통방통한 일이었다. 

 1학기를 마치며 2학년은 토마토와 상추가 들어가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더 필요한 재료는 각자 나누어 가지고 오기로 했다. 카나페를 만들어 먹은 반도 있고, 과일꼬치를 만들어 먹은 반도 있고, 화채를 만들어 먹은 반도 있었다. 맛있게 모둠별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는 텃밭 작물을 정리하기로 했다. 텃밭 정리가 아쉽지는 않았다. 2학기에는 또 다른 작물을 심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노란 상추꽃이 여름방학이 다가왔음을 알려 주었다. 우리는 텃밭 작물을 흙에서 뽑으며 토마토와 상추에 안녕을 고했다.     


 “안녕.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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