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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Oct 11. 2024

두 개의 천원

* 이 글은 글쓰기 모임 '마들랜(마음을 들여다보는 랜선 글쓰기)'의 첫 주제 '자기 자랑'에 맞추어 쓴 글입니다. 자기 자랑으로 글을 쓰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뒤지고 들여다보며 길어올린 나의 자랑을 조심스레 내놓습니다. 



<두 개의 천원>    

  

#1. 첫 번째 천원

     

중학교 2학년 봄이었다.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예쁘장한 얼굴에 고데기를 한 단발머리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마주 오고 있었다.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그 아이는 내 앞에서 멈춰 서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저기, 있잖아.”

“어? 나?”

“응. 돈 좀 빌려줄래?”     


주변의 아이들이 우리를 주시했다.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나 천원밖에 없는데.”

“그거라도 빌려줘.”

“……갚을 거지?”

“물론이지.”     


내겐 정말 천원이 전부였다. 주머니에서 천원을 꺼내 그 애에게 주자 그 애는 고맙다고 말하고 나를 스쳐 갔다. 뭐에 쓸 것인지도 못 물어봤다. 내가 몇 반인지는 아는 건가? 나는 그 애가 몇 반으로 들어가는지 확인한 후에 교실로 돌아왔다.   

   

다음날, 그 애는 날 찾아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으며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자 친구는 거지에게 천 원 줬다고 생각하라 했다. 걔는 그냥 건드리지 말라고. 그러자 무슨 상황인가 싶었던 일이 분명해졌다.    

  

점심을 먹고 그 애가 있는 교실로 갔다. 교실 뒷문에서 보니 걔는 자기랑 비슷하게 멋을 부린 다른 아이들과 함께 깔깔거리며 놀고 있었다. 뒷문 가까이 앉은 애한테 그 애를 좀 불러달라 부탁했다. 누가 찾아왔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그 애는 나를 발견하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천원 가지고 왔어?”

“아, 아니. 미안.”

“언제 갚을 거야?”

“내일 가지고 올게.”     


다음 날 1교시가 끝나고 다시 그 애를 찾아갔다. 그 애는 또다시 깜빡 잊었다고 했다. 나는 그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그 애를 찾아갔다. 그런 날이 일주일간 계속되었다. 그 애의 얼굴에서 짜증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다음 주에도 매일 1교시 후 그 애를 찾아갔다. 난 그 애를 찾아갈 때마다 그 애의 예쁜 얼굴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너, 사람 잘못 봤어.’     


한 달 하고도 며칠이 지나서 그 애는 천 원을 갚았다. 돌려줄 때 그 얼굴에서 예쁘장한 웃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내가 웃었던 것 같다. 꼬깃꼬깃한 천원을 꽉 쥐고 돌아오는 복도에서 내 몸이 온통 천원으로 가득 차는 희열을 느꼈다.      


    




#2. 두 번째 천원    

 

내가 스물여덟 살이던 해의 가을 어느 날. 결재를 받으러 교장실에 가다가 빠뜨린 게 생각나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 뒷문으로 들어섰는데 교탁에 웬 교복 입은 남학생이 몸을 숙이고 무언가 하고 있다. 졸업한 제자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으로 불렀다.     


“누구?”      


그러자 웅크린 커다란 몸이 순간 움찔하더니 나를 획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가 제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모르는 얼굴이어서가 아니었다. 눈이 마주친 그 얼굴은 당황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그가 후다닥 교실 앞문으로 뛰쳐나갔다.     

 

“도둑이야! 도둑!”     


까까머리의 덩치 큰 남학생이 복도를 질주한다. 그 뒤에는 스키니진을 입고 4cm 통굽 실내화를 신은 내가 소리를 지르며 쫓고 있었다. 그가 2층 복도를 지나 쿵쿵대며 1층으로 내려갔다. 나도 뒤질세라 난간을 잡고 계단을 와다다 뛰어 내려갔다. 쉬지 않고 1층 복도를 내달리는 그가 보였다. 아! 중앙 현관에 숙직 기사님이 보인다. 늘 나보고 늦게 집에 간다며 호통치던 불도그를 닮은 기사님이었다. 나는 그를 뒤쫓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기사님! 도둑이에요! 교복 입은 학생!”     


기사님과 도망치는 학생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이제 곧 잡히겠구나, 하는 순간. 이럴 수가! 평소 그렇게 목소리 크고 무섭던 기사님이 멍한 표정으로 슬쩍 몸을 돌려 비켜서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학생은 중앙 현관을 빠져나가 버렸다.   

   

“아으 씨!”     


매섭게 기사님을 노려보고 다시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학생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도 뒤따라 계속 달렸다.      

도망치는 학생은 학교 밖 골목길로 내리 달렸다. 양쪽으로 주차가 되어있는 좁은 길이었다. 그때 아는 얼굴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와 같은 성당을 다니는 동네 아저씨들이었다.      


“아, 아저씨! 도둑이에요, 도둑!”     


도둑이라는 말에 아저씨 둘이 도망치는 학생을 가로막았다. 학생은 좁은 골목에서 성인 남자 둘을 피해 골목길 가장자리로 도망쳤다. 나는 그가 주춤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얼른 달려가 목 뒷덜미를 덥석 잡았다.      


“헉, 헉, 헉, 학생! 헉, 헉, 헉, 학생이, 헉헉, 헉. 우리, 교실에서, 헉, 헉, 뭘 뒤지다 도망쳤으니, 지금, 부터, 헉, 헉, 내가, 학생 몸을, 헉, 헉, 뒤질 거에요.”

“헉, 헉, 아…… 아니에요. 헉, 헉, 안, 안 훔쳤어요.”     


귀에서 심장 소리가 크게 울리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목구멍이 뜨거웠다. 그 학생도 가쁜 숨을 내쉬며 계속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는 그의 몸을 뒤졌다. 바지 호주머니에서 천원이 나왔다. 천원을 그의 얼굴에 들이밀며 외쳤다.      


“헉, 헉, 이, 돈, 이거, 천원, 헉 헉. 내 꺼지?”

“헉, 헉. 아, 아니에요. 헉. 헉. 제 거예요. 헉, 헉.”     


나는 천원을 쥐고 땅에 주저앉아 계속 헉헉거렸다. 곧이어 교무부장님과 교무실무원이 우리에게 왔고, 양팔에 팔짱을 낀 채 학생을 학교로 데리고 갔다. 나도 곧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따라 학교로 향했다.      


그는 내가 근무하던 초등학교의 졸업생이라고 했다. 그래서 학교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1층부터 4층까지 쭉 둘러보며 어느 교실에 들어갈지 탐색했다고 한다. 그는 내 교실을 점찍은 후, 화장실에 숨어서 내가 교실에서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교실에서 나가자 바로 교실로 들어와 계획을 실행했는데, 예상보다 교실 주인이 너무 빨리 돌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재학 중인 중학교에서도 몇 번의 절도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한 번만 더 걸리면 정말 퇴학을 당할 수도 있다고, 제발 학교에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그에게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 교실이었냐고, 왜 나를 점찍었냐고.


그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회피하는 시선과 쩔쩔매는 그 표정을 번역하자면 교실 앞에 걸려 있는 내 사진이 제일 만만해 보였다는 뜻이리라. 그에게 천 원을 돌려주며 속으로 말했다.      


‘너, 사람 잘못 봤어.’  


         


   


요즘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러다 큰일 난다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엄마가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나는 두 개의 천원에 나의 자랑이라는 이름을 붙여 두었다. 가끔 나를 잘못 보려 하는 누군가 나타나면 꺼내서 보여주는 자기소개 에피소드. 


뺏기기 싫은, 뺏길 수 없는 나의 자랑.     




한 개의 브런치에 30개의 글을 연재할 수 있네요.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소년의 언어2로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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