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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온 Oct 09. 2024

멍청한 산타

멍청한 산타   

  

12월 23일 금요일, 크리스마스를 앞둔 마지막 평일.

둘째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하원하는 둘째는 입이 귀에 걸린 채 뛰어나오며 말했다.


"엄마,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고 가셨어!" 

"우아, 좋겠다! 뭐 받았어?" 

"몰라! 헤헤헤. 집에 가서 풀어 볼 거야!"      

차에 타서 가는 길에 아이는 선물을 꼼지락꼼지락 만져보며 계속 배시시 웃는다. 나도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함께 첫째를 데리러 학교로 갔다.

둘째는 차에서 형을 발견하자마자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어 소리친다.     

"형아, 이거 봐봐. 나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았다!"

"우아! 뭐야? 뭐야?"

"몰라. 집에 가서 풀어보자. 근데 아무래도 몬스터 트럭 같아!!"

“진짜? 우와!”     

첫째가 차에 타자마자 둘은 부스럭부스럭 포장지를 만져본다.      

"야, 진짜 몬스터 트럭이다! 여기 울퉁불퉁한 게 바퀴네!"

"그치? 진짜 기도한 대로 몬스터 트럭을 주셨어!"      

아……. 그 말에 심장이 쪼그라든다.      

첫째 : 야, 몬스터 트럭 나도 좀 빌려줘. 

둘째 : 음……. 음……. 그래!

첫째 : 앗싸! 나도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으면 빌려줄게!!

둘째 : 근데 왠지 형아 선물은 몬스터 트럭 같은 장난감이 아닐 거 같은데. 

첫째 : 어……. 만약에 빌려줄 수 있는 거면 같이 쓸게. 아니면 어쩔 수 없고.

둘째 : 그래. 우리 이거 가지고 산에 가자. 

첫째 : 그래, 너 먼저 해. 나는 좀 올라가다 나중에 하고 또 너 줄게.

둘째 : 그래그래. 헤헤.      

아……. 심장이 더욱 쪼그라든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주차를 마쳤다. 둘은 나를 내버려두고 뛰어서 집으로 홀라당 올라가 버렸다. 나는 둘째의 어린이집 가방과 첫째의 첼로와 내 짐 등등을 짊어지고 다음 엘리베이터를 탔다.


올라가며 생각한다. 그들은 선물을 풀었겠지? 몬스터 트럭이 아닌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래도 스파이더맨 부츠니까……. 스파이더맨 부츠도 좋아해 주면 좋겠는데……. 만약 실망했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띠디딕.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섰다. 소리를 듣자마자 첫째가 달려 나온다.      

"엄마! 몬스터 트럭이 아니야! 엄마! 스파이더맨 부츠인데, 산타 할아버지가 들어가지도 않는 작은 신발을 보내줬어!"      

포장지는 풀어져 있고 신발에 발을 욱여넣던 둘째는 나를 보자마자 나라 잃은 표정을 하더니 결국 으앙! 하고 울기 시작했다.      

아, 아…….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신발이 왜 작지? 이리 와봐!"      

셋이 뒤엉켜서 딱딱한 스파이더맨 부츠에 우는 아이의 발을 집어넣는다. 간신히 발이 들어간다.      

첫째 : 야! 들어갔다. 서 봐! (신발 앞부분을 눌러보며 발가락 위치를 확인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엥? 엄마! 작아, 작다고. 이거 발가락이 여기 앞까지 와 있잖아!

둘째 : 흑, 흑……. 으아아앙! 

나 : 엥? 아니, 아니야. 이상하다? 왜 이러지? 이거 210인데. 너 원래 200 신잖아.

첫째 : 아,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애들 발 크기도 모르고. 나한테도 내가 갖고 싶은 거 말고 다른 거 갖다주는 거 아니야?      

나 : 너, 너는 뭐가 받고 싶은데?      

첫째 : 몰라. 아직 못 정했어.      

나 : 음, 산타 할아버지는 어린이가 갖고 싶은 거 말고 가장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신대. 우리 엄마가 해 주신 말씀이야.     

둘째 : 나 겨울 부츠 있는데? 형아가 신던 거 작아서 나 준 거 있는데? 스파이더맨 작은 부츠 필요 없는데? 으아아아아아앙.      

나 : …….     

이미 스파이더맨 부츠를 주문하고 난 후에 첫째의 겨울 부츠가 작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것이 둘째의 부츠가 됐다. 이걸 어쩌지…….     

“아, 맞다. 엄마, 나 산타할아버지 주소 알아! 여기 그림책 뒤에 산타할아버지 주소 쓰여 있어!”     

둘째가 내미는 책에는 정말 대한민국 산타의 주소가 적혀있다.      

“그래, 아들아. 그럼, 이거 산타 할아버지한테 보내서 바꿔 달라고 하자.”      

산타 할아버지한테 직접 가겠다고 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몰래몰래 남편과 현지 상황을 카톡으로 전달하며 아무래도 사이즈 교환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교환 날짜도 지나고, 상자도 다 버려서 교환이 불가하다고 한다. 아, 도무지 산타 할아버지가 부츠를 바꿔주지 못한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우는 아이랑 부둥켜안고 침대에 누웠다. 참 이상하다며 산타 할아버지 흉을 한 시간은 본 것 같다. 도중에 너무 피곤해서 내 눈이 감기면 "엄마 자?"하고 둘째는 자꾸 나를 쳤다.      

"안 자, 안 자. 아들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음……. 생각해 볼게.”      

둘째는 상가에 새로 생긴 즉석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 셋은 상가로 출동했다. 떡볶이를 시켜놓고 아이들 얼굴을 본다. 기분이 좀 좋아진 거 같다. 

나와 똑같이 심장이 쪼그라들었을 남편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먹을 거 앞 밝은 아이들 모습에 좀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떡볶이를 먹을 땐 멍청한 산타할아버지 일은 잊혔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들 둘이 다시 합심하여 부츠에 발 넣기를 시도한다.      

“엄마! 떡볶이를 먹고 오니 부츠가 좀 커진 거 같아!” 

“아, 그래? 정말 다행이다. 신고 다닐 수 있겠어?”

“몰라. 내일 다시 신어볼게”

“그래, 그래.”      

정말이지 부츠가 커졌으면 좋겠다는 내 소원을 산타 할아버지가 들어주신 것 같다. 

그나저나 첫째는 뭐가 받고 싶은 것일까. 내일 첫째도 울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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