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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가루 Jun 16. 2022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나를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그때 그 싸가지?",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이런 대사들을 비롯하여 요즘 로맨스물에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나 장치의 뿌리를 여기서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바로 이 책을 위해서 고전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듯합니다. 작품의 설명에 "~~에 발표된 작품 치고는" 라든가, "~~에 쓰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라든가, 이런 식의 변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절대로 고전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저 쓰인 지 오래된 책일 뿐입니다. 언제 읽어도, 그 무엇과 비교해도 작품성과 재미에 손색이 없는 작품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쓰인 이 작품은 구조가 몹시 치밀하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로맨스 장르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투표에서 반지의 제왕을 이어 2위에 뽑혔다는 것이 절대 놀랍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고 감동적입니다.

  읽을 책이 떨어졌는데 도서관을 갈 수는 없어서 전자책으로 빌려 보았습니다. 빌릴 수 있는 버전이 문학 동네 버전뿐이어서 문학동네 번역으로 읽었고 번역은 준수한 것 같습니다 (원문 영어가 너무 어려워서 깊게 비교를 하지는 못했으니 만약 번역을 비교해 보고 싶다면 직접 여러 출판사의 책들을 모아서 비교해 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전자책이 엄청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앞으로는 자주 애용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어릴 때 한 번 읽으려고 빌렸다가 첫 페이지만 읽고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얻을 수 있는 기쁨을 양보해 준 어린 시절의 저에게 매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장편소설이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꽤 많고, 익숙하지 않은 시대, 공간을 배경으로 사건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아마 처음 읽으려 했던 그때는 몰입하기 어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한사상속이라는 제도를 몰랐었기 때문에 책을 읽었더라도 깊게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왜 다섯 자매라는 설정인지, 왜 그렇게 아들을 낳으려고 노력을 한 것인지부터 의아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의 주요 소재는 결혼입니다. 베넷 씨의 가족은 아들이 없어서 베넷 씨가 죽으면 그들의 재산은 모두 먼 친척인 콜린스 씨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이른바 한사상속이라고 불리는 제도 때문입니다. 당시 영국에서 가문의 재산, 그중에서도 토지는 가문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였기 때문에 토지가 나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고자 한사상속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취지는 알겠으나 여러모로 불합리한 제도인 것은 확실합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베넷 부인은 그녀의 다섯 자매를 어떻게든 빨리 결혼시키려 합니다(참고로 그들의 나이는 열여섯에서 스물셋 정도로, 이십 대 후반이라고 하는 요즘의 결혼 적령기와 비교할 때 매우 이릅니다). 요약하자면, 결혼을 둘러싼 좌충우돌 대소동 정도로 농담 삼아 말해볼 수 있겠습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결혼은 주인공 리지(엘리자베스)의 이웃이자 절친 샬럿의 결혼입니다. 그녀는 리지에게 청혼을 했다가 퇴짜를 맞은 콜린스 씨의 청혼을 바로 받아들이고 그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리지와 제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결혼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며 비판합니다. 읽으면서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콜린스 씨는 분명 똑똑하지도 않고 마음에 드는 사람도 아니었다. .... 결혼은,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집안이 가난한 젊은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영예로운 앞날의 대비책이었다. 행복을 보장해 줄지는 알 수 없어도 궁핍에 대한 가장 만족스러운 예방책임은 틀림없었다."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모순」을 읽으며 새 대가리 (왜 새 대가리인지는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을 참고하세요)라고 말했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안진진의 선택과 달리, 샬럿의 선택은 경우가 다르며, 어느 정도 그녀의 결정이 이해가 갑니다. 그저 목표로서 결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현재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과거에도 그러했다는 것이,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처지가 씁쓸할 뿐입니다.

  남자는 일단 돈이 많아야 한다고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적이 있는데, 돈 많은 여자와 결혼을 하려 했던 위컴에 대한 리지의 평가를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위컴은 리지와 일종의 썸을 탔던 남자로, 리지는 그의 성격과 외모에 은근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킹 양이라는, 돈이 많은 여자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잘생긴 청년도 먹고살려면 매력 없는 남자 못지않게 재산이 있어야 한다"라는 그녀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남자에게 돈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지금과 똑같이 그 당시 영국에서도 통용됐던 것 같습니다.

  샬럿과 위컴의 이야기를 보면 당시 결혼에 있어서 돈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사랑보다 돈이 먼저인 상황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주인공 리지의 결혼관은 좀 다릅니다. 먼저 그녀는 돈이 많은 다아시나 캐서린 귀부인 앞에서도 절대 주눅 들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성격입니다. 돈이 많은 대상과 존경할 대상을 분리해서 판단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베넷 양은 어린 나이에도 자기주장을 너무 단호하게 펴네요."라고 말하는 캐서린 귀부인의 대사는 전형적인 회사 부장님을 보는 것 같아서 참 재밌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작중 가장 돈이 많은 남자, 영앤리치, 톨앤핸섬의 대명사 다아시의 청혼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물론 그 동기에는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가 크게 자리 잡고 있지만, 어쨌든 그녀는 재산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리지와 다아시는 예상된 결과이지만 이야기의 끝에서 오해를 해결하고 축복 속에 결혼을 합니다. 아마 저를 비롯해 모든 독자들은 이 부분을 읽으며 매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해피엔딩 때문이라거나, 리지와 다아시가 심성이 잘 맞는, 귀여운 커플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작가가 글을 몹시 잘 써서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바라도록 이야기 구조를 구성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가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글이 쓰인 시점에도 존재했던, 사랑이 없어도 돈 혹은 가문 간의 결합을 위해 가능하다는 결혼 제도의 문제에 대하여 독자가 깊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저 작품 속의 이야기이지만, 그 문제를 보란 듯이 깨버리는 둘을 보며 독자는 그들의 결혼을 축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 사실 이 문장은 알려진 바와 달리 이 작품 속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명언이라고 알려진 저 문장은 「오만과 편견」이라는 이야기의 가장 완벽한 요약일 것입니다. 이야기의 절반 즈음에서 제목의 의미가 밝혀지는데 다아시는 오만이었고, 리지는 편견이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던 오만과 편견이라는 걸림돌을 그들은 서로 덕분에 성장하여 함께 넘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짜 주인공부터 시작하여,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옛날 사람이 쓴 책이라는 느낌을 단 한순간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묘사가 투박한 부분은 아쉽지만 여러 번 이야기 한 것처럼 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에 로맨스물의 정석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의 최고 연애 소설은 여전히 「제인 에어」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즐거웠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도 다아시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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