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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방울 Jun 30. 2024

찻집,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


십수 년 전 상하이. 번화가를 돌아다니다 아픈 다리도 쉴 겸 마침 눈에 띈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동행한 친구가 스타벅스에서 도시별로 나오는 머그컵을 모으고 있어서 스타벅스에 꼭 들려야 하기도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앉을자리는 없었고 겨우 머그컵만 사서 나왔다. 



조금 더 걷다가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어디든 들어가서 앉아 쉬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전통찻집. 다른 때 같으면 무시하고 지나쳤을 법한 가게였다. 새롭고 유행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한창 젊은 애들이 들어갈 만한 인테리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외로 찻집 안은 넓고 밝았다. 중년의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들어가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아서 우선 실내를 돌아보았다.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80년대 한국에서 유행했던 등나무 소파를 연상시키는 큰 의자가 마음에 들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샤오지에, #$%^$#@#$%&*%$%$&......”

중국어 까막눈이라 주인아저씨가 한참 설명을 하는 동안 그냥 듣고 있었더니 메뉴를 손으로 가리키며 추천해 주는 듯했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다리를 쉬며 차를 마셨다. 정작 차 맛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찻집 분위기에 대한 인상은 남아있다. 화려한 명성은 과거의 일이고 이제는 뒤켠으로 물러난 한물간 배우 같다고 해야 할까. 제법 잘 꾸며 놓은 인테리어인데 아무도 찾지 않는 휑뎅그렁한 공간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손님으로 버글버글한 스타벅스와 확연하게 대비되는 을씨년스럽게 조용한 찻집을 보니, 과거의 모습을 싹 지워버리고 압도하는 마천루를 앞세워 화려한 대도시로 탈바꿈하려는 중국의 도시들이 오버랩됐다.



 




그렇다면 차의 원조인 나라 중국에서 찻집은 과연 어떤 장소였을까?

 

중국, 우리나라, 일본의 차 문화사를 깊이 있지만 재미있게 다룬 책 <차의 시간을 걷다>에서는 무려 11세기에 있었던 중국 찻집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11세기 최고의 도시였던 북송의 카이펑에는 남녀노소 계층과 관계없이 누구나 가서 편하게 차 한잔할 수 있는 다관, 즉 찻집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도시 곳곳에 있는 카페 같은 곳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가 퍼져 남송의 임안(항저우)과 고려의 개경에도 찻집이 생겼다. 심지어 그 옛날에 아이스티도 마셨다고 한다. 도시에 얼음창고가 있어서 얼음을 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관에서는 지금으로 치면 빙수 같은 음식과 과일주스도 팔았다고 한다. 요즘 우리가 카페 순례를 하듯 유명 찻집이라면 그 옛날에도 벼르고 별러 먼 곳에서부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풍류와 아취를 아는 멋진 사람들이다. 


근대로 오면 찻집은 쇠락해 가는 청나라의 운명과 같은 길을 걷는다. 희곡 <찻집>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50여 년간 한 찻집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베이징의 대형 찻집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고 사업을 논의하고 간단한 요기도 하는 곳이었다. 희곡의 배경인 ‘유태찻집’은 이런 전통적인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애완용으로 키우는 새를 새장에 넣어 데리고 와서 걸어 놓고 화제로 삼으며 반나절 정도를 한가하게 있다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세기말 베이징에서는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전통적 대형 찻집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20세기 초는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에서 활개를 치던 시기였다. 유태찻집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서 찻집과 하숙집을 같이 운영한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집안 자제들만 학교를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하숙집의 수입은 쇠락해 가는 찻집의 경영에 도움이 되었다. 1940년대 중반은 미국을 등에 업은 국민당 치하에서 사람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던 시기였다. 인신매매와 성매매업을 하기 위해 유태찻집을 인수하려는 사람이 나타나자, 본인의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유태찻집 주인이 목을 메 자살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찻집은 아무리 시류에 동참하려 노력해도 자리를 못 잡고 결국 낡은 모습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위안을 얻고 삶을 영위했던 사람들도 그렇게 사라져 갔다. <찻집>의 저자 라오서 역시 20세기 전반의 급변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천년도 넘게 이어지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가 된 중국의 찻집 역사는 곧 중국인의 생활사이기도 하다. 요즘 중국 대도시의 찻집은 어떤 모습일까? 차를 대신하는 커피의 공세에 몰려 자리 보전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차 재배지로 유명한 윈난성에서도 차 대신 커피를 재배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고 하니 다관이 과거의 영광을 찾을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차를 즐겨마시는 사람으로서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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