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 되는 첫 날의 기억

놀다가 다쳤으니 누굴 원망하랴

by Lucia

2026년 대망의 고3이 시작되는 새해 첫날.


고3시절을 후회없이 보내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1월1일 하루쯤은 신나게 놀고나서 다음 날 부터 열심히 공부 하겠다고 한다. 스터디 카페를 등록하 고 방학을 알차게 보낼 공부계획도 나름 치밀하게 세워놨다.

고2 2학기 기말고사 성적도 오르고, 어느 정도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무렵이니 하루 정도 그간의 스트레스 풀겸 친구들과 노는것도 좋을것 같아 흔쾌히 허락했다.

새벽일찍 나가서 하루종일 워터파크에서 놀고 에버랜드 야간개장도 보고 온다고 하니 역시 젊 음이 좋구나,

아주 그냥 끝장나게 놀다 오너라 했다.

대신 저녁은 오랜만에 귀국한 이모와 함께 먹자고 약속을 했는데 저녁시간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다.

노느라 전화를 못받는건지 슬슬 걱정이 될 무렵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다고, 약속한 시간에 도착할 거라 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되었는데도 도착하지 않는다. 전화도 안받는다. 왠일이지? 지하철이라 안들리 나? 혼자 생각하며 다시한번 전화를 하는데, 아이 가 울면서 전화를 받는다.

생전 이런적이 없었는데, 말도 못할 정도로 흐느 낀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온갖 끔찍한 상상이 스칠무렵 옆에 있던 친구가 대신 전화를 받으며 딸래미가 계단에서 넘어져 일어나지를 못한다고 한다.

넘어진 자리에서 꼼짝을 못한다고 데리러 와달라고 한다.

아... 이런.

급한 마음에 근처에 사는 남동생에게 도움을 요청 하고 지하철 역으로 차를 몰고 갔다.

동생이 혼자 탑승구에 가서 데려오겠다고 차에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다친건지 애가 탈 지경이다.

잠시 후 애를 업고 나타난 동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근처 정형외과 응급실로 갔다.

일단 인대가 늘어난거 같다며 응급 처치를 하고는 다음날 다시 오라고 한다.

아이는 너무 아프다며 계속 운다. 이렇게 다친게 어의없고 속상하다며 또 운다.

밤새 발목이 붓고 통증이 심한걸 보니 아무래도 인대가 끊어진거 같다.

나도 몇 년전 인대가 끊어지고 골절이 된 적이 있 었는데 그때랑 증세가 비슷한걸 보니 인대가 절단 난거 같다.


다음날 다시 정형외과를 찾아 각종 검사를 하고나 니 예상대로 인대가 완전 파열되었다.

통깁스를 3주간 해야 된단다. 걷는것도 당분간 힘들거 같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며 미리 스터디 카페도 끊어 놨는데, 아깝다며 깁스한 채 굳이 스터디 카페를 가더니 몇 시간 안되어 돌아왔다.

계속 앉아 있으니 깁스안에서 발목이 부어 더 통증 이 심해졌다.

어쩔수 없이 집에 와서 누워 공부를 한다.

다리는 아프지 속은 상하지 움직이지 못하니 답답 하지.. 공부가 될리 없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찔끔찔끔 우는 일도 잦아졌다.

공부가 뭐라고, 그냥 아프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하면서도 이 귀한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게 나 또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아픈 애 앞에서 이런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이 부끄럽 고 미안하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아픈 발 보다 정신적으로 견디 기 힘들었는지,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고 한다.

그 무렵 잠도 잘 못 자고, 자꾸 악몽을 꾼다고 해서 걱정이 되긴 했는데, 스스로 병원을 검색해서 데려 가달라고 하니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싶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일단 약을 먹기 시작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입시에 대한 압박과 계획했던 공부를 하지 못하는 불안감이 아이의 마음과 정신을 힘들게 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불편함이 약을 통해 해결된 다면 그것 또한 다행이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아이가 집 근처의 정신과 몇 군데를 알아보고 예약 해달라고 연락처를 주었다.

병원에 전화를 해보며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빠른 시일 내 예약을 잡을 수 없을 만큼 환자가 많 다고. 어느 병원은 청소년과가 있길래 전화를 했더 니 성인 환자가 너무 많아서 청소년 예약을 당분간 받지 않겠다고 한다.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경험해 보니 감기환자 만큼 이나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이 많다는게 씁쓸하다.

물론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 지만, 그래도 이렇게 환자가 많다는 건 환자들 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가 OECD 자살률 1위라는 게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1월 한달을 정형외과와 정신과를 오가며 몸과 마음을 치료하며 보냈다.

자칫 한달을 버렸다는 생각에 자포자기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큰 탈없이 깁스를 풀고, 정신적인 문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한달을 그리 보내고 나니 다시 예전의 루틴을 되찾 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었다.

2월 한달 동안은 예전의 마인드를 되찾으려 천천히 적응기를 갖았다. 다행히도 조금씩 공부의 양을

리고 있고, 마음도 안정이 되는 듯 싶다.


2026년!

희망과 기대를 갖고 시작한 새해가 딸 아이의 사고 와 또 다른 다사다난한 일들로 정신없이 시작되었 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정도이길 정말 다행 이다!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무사히 고3 새학기 를 맞이하였다.


<고3은 호락호락 하지 않아. 한번 맛좀 볼래?> 누군가 이렇게 우리에게 맛을 보여 준거라면 앞으로 또 어떤 맛이 기다릴까. 두려움 보다는 호기심이 앞선다.

찬란한 학창시절의 마지막을 힘들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내가 내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바랬던 것처럼, 나도 내 딸에게 따뜻한 엄마이고 싶다.



아래 사진은 딸래미가 고등학교 가면 친구들과 같이 꼭 한번 찍어보고 싶었던 컨셉이란다.

각자 선택 과목이 달라서 운동장에 같이 모이기도 쉽지가 않다며, 어느 날인가 간신히 찍었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어쩌면 이렇게 멋진 구도로 사진을 찍었는지. 아이들의 순수한 에너지가 사진만으로도 느껴져 이 사진을 참 좋아한다.

이 한장의 사진을 찍기위해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웠을 아이들 생각에 웃음이 난다.

이 순간이 아이들 가슴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