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만 아니길

고3을 맞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이유

by Lucia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 아이는 발목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고 겨울 방학 내내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싸워야 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집중을 못하고 우울하게 보내다 가 서서히 회복하면서 그나마도 2월은 나름 열심히 지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스터디카페를 가고 밤엔 일 찍 자는 습관을 들였다.

방학 때 리듬이 깨지면 개학해서 너무나 고생을 했던 경험치가 아이 스스로 습관을 만들게 했나 보다.

우여곡절 끝에 고3을 맞으며 이제 1년이 남은 고교 시절이 너무 아쉽다고 한다.

평생 기억에 남을 고교시절, 남은 1년도 아이의 인생에 아름답게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부터 걱정거리가 있다고 한다.

자기가 별로 안 좋아하는 선생님이 계신데, 그분이 담임이 될까 봐 너무너무 걱정이란다.

고2 때 담임선생님과 약간의 갈등이 있어서 그런지 걱정이 태산이다.

아이는 유난히도 담임선생님 복이 많은 아이였다.

어린이집부터 지금껏 모든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셨고,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선생 님들이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고2 담임선생님도 내가 보기엔 아이에게 많은 관심을 주셨고 편의도 많이 봐주셨다.

젊은 남자 선생님이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다소 과한 행동을 하신 것이 거북했었나 보다.

아이가 선생님을 불편해하니 1년 동안 함께 지내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학창생활 마지막 담임은 앞서 얘기한 그 분만 아니 면 행복할 거라고 하니, 정말 싫은 선생님이었나 보다.

(아이들이 대부분 싫어하는 선생님이라 하니, 그분 입장에선 참 억울할 거 같다)

엄마 입장에선 가뜩이나 예민한 고3시절을 조금이 나마 마음 편하게 보냈으면 하는 게 바람이니 나 역

시도 그분이랑 안 만났으면 좋겠다. (그분께는 너무나 죄송하지만)


드디어 개학 전날,

아이는 기도를 하겠다고 한다.

천주교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베아트리체라는 이쁜 세례명을 가진 아이는 초4학년때 첫 영성체까지 하면서 열심히 성당에 다닐 거 같았는데, 사춘기가 되더니 종교에 자유가 있으니 자기에게 자유를 달 라고 했다.

뭐 틀린 얘기도 아니길래 마음 내킬 때 다니라고 종용하지는 않았다.

근데, 자기 입으로 기도를 하겠다니... 정말 절실했나 보다.

함께 기도를 드리고, 미사도 드리러 다니겠다고 한다.

(나의 고3시절, 입시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신앙의 도움으로 극복한 경험이 있기에 아이도 그러기를 바랐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미사 중에 기도를 통해 털어놓으며 많은 위안을 받았던 기억 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음날, 수업을 마치자마자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하느님이 내 기도를 너무나 완벽하게 들어주셨어. 그래서 쪼금 짜증이 나긴 하는데, 그래도 좋은 담임선생님 만나서 다행이야"


기도가 이루어졌는데 왜 짜증이 났지?

집에 온 아이에게 얘기를 듣고는 나 혼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이는 담임 선생님이 너무나 간절해서 이렇게 기도했단다.

"내 친한 친구들 모두 다른 반이 돼도 좋으니 제발 그 선생님만 안 만나게 해 주세요!"

진짜 친한 친구들이 모두 다 다른 반이 되었단다.

"엄마. 아무리 내가 기도를 그렇게 했더라도 그렇지. 한 명이라도 같은 반 되게 해 주시면 어디 덧 나나?"

물에 빠진 거 건져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하는 심보다.


어쨌거나 이번 주부터 아이와 함께 미사를 보고 있다.

일주일에 한 시간, 세상과 떨어져 고요한 시간을 갖는 건 중요한 일인 거 같다.

일주일 동안 시끄러웠을 내 마음을 정돈하며 차 분히 다음 일주일을 준비하는 시간, 아이에게 기도 할 기회를 제공해 주신 이름 모를 그 선생님께도 감사드리며, 부디 올 한 해 아이들과 친해지시길 기도해 본다.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아이가 5살 무렵 기도하는 모습을 찾았다.

그 당시 메모를 보니 무서운 꿈을 꾼 아이가 자기 전에 무서운 꿈 안 꾸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였다.

기도 중에 느닷없이 <먹을 것이 없는 아프리카에 한국이 먹을 것을 채우게 해 주세요>이런 말을 했단다.

아마 그 당시 아이의 뜬금없는 기도 내용이 기특해서 기록해 두었던 것 같다.

그다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살면서 필요할 때마다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받은 일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