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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너울 Aug 22. 2024

[제9화]계란프라이를 다시 먹을 수 없을 줄 알았더라면

힐링 북카페

 그날 아침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민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들인 시간에 비해 크게 바뀌지도 않을 자신의 머리카락에 여전히  시간을 쏟고 있는 중이었다.

"민서야, 아침 먹게 나와."

방 밖에서 민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하나뿐인 동생을 챙기는 것은 겨우 두 살 터울의 오빠 몫이었다. 그런 민석이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다른 집 남매들 같지 않게 뭔가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부모가 응당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하면서도 불평 한 번 없는 민석이 그녀는 오히려 불만이었다.

"오빠 너는 사람 말을 왜 그렇게 못 알아들어? 어제도 또 그랬지. 내가 통화할 때 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랬잖아."

방문을 홱 열고 나온 민서가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어젯밤 친구의 새 남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기척도 없이 방으로 들어온 오빠를 아침부터 대역죄인 대하듯 하는 참이었다.

"노크했는데... 아무튼 미안해. 얼른 먹자. 이거 따뜻할 때 후루룩 해야지."

사실 민서는 분명 노크 소리를 들었다. 친구와의 대화에 방해받고 싶지 않을 뿐. 그러면 민석이 그냥 돌아갈 줄 알았는데 평소와 달리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창 재미있던 대화가 끊기자 민서는 심히 불편했던 것일 뿐이었다. 민석은 잘못이 없었다.

"됐어, 안 먹어. 너나 실컷 드세요."

민서는 이렇게 쏘아붙이고는 도망치듯 현관을 나섰다.

후루룩이라도 하고 가지.

닫히는 현관문 사이로 마지막 그의 목소리가 쫓아오듯 빠르게 새어 나왔지만 못 들은 척했다.



 

 친구와 함께 어제 다 끝내지 못한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그나마도 짧은 쉬는 시간이 순식간에 끝나 아쉬워하던 그때였을 것이다. 여기저기 가득 찬 호들갑스러운 목소리. 진심 그만큼 놀란 것도 아니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인식한 포장된 얼굴 표정과 과장된 비명. 복도에서 심상치 않은 소란함이 느껴졌다.


여객선이 사고가 났대.

벌써 침몰했대.

우리 학교 옆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탔대.

우리 반 애 형이 거기 탔대.

사람들은 다 탈출했대.


민서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학교 이름이었기에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학교 전체로 퍼졌고, 민서는 원치 않게 그 학교에 더 남아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냥 별 일 아니어서, 단순히 과장된 해프닝이어서, 그도 아니면 처음 알려졌던 대로 정말 모두 무탈하게 구조되어서, 그래서 민서가 학교에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녀가 민석에게 조금은 미안했다고, 시기가 시기인지라 내가 좀 예민했다고, 사춘기를 면죄부 삼아 뻘쭘한 사과라도 할 수 있었을까.


"엄마가 옷가지들 좀 챙겨서 지금 내려가고 있어. 뭘 너까지 와. 아빠한텐 전화도 안 했다. 엄마가 가서 오빠 데리고 올게."


 엄마는 물에 빠진 민석이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그 해든 그다음 해든 다시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민서도 그랬다.

원래 계획대로 엄마는 오빠를 마른 옷으로 갈아입혔지만 민석은 다시 수학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그날, 학교에서 반강제적으로 일찍 집으로 오던 날, 식탁 위엔 민서가 먹지 않은, 차갑게 식은 반숙 계란프라이가 쓸쓸히 놓여 있었다.



 민서는 촘촘히 감싸진 랩을 떼어내고 노른자부터 후루룩했다. 재빨리 쓸쓸함을 감추어 버렸다.



 "왜 후루룩이었는지 이제 이해가 되네요."

 지운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해 준 반숙 계란프라이는 후루룩하면 노른자가 한 번에 입 안으로 쏙 들어왔어요. 조금 덜 익으면 흰자와 분리가 잘 안 되고, 너무 익으면 '후루룩 쏙'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 초기에는 그것 때문에 오빠에게 짜증도 많이 냈었어요."
 "그날 아침 그 계란프라이를 먹지 않은 것이 많이 후회되나요?"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죠. 의식적으로 계란프라이를 피하면서 관련 기억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했요. 후회가 너무 아파서요."
 민서는 계란프라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말을 잠깐 끊었다가 목을 가다듬고 다시 이어가기를 반복했다.
 "후회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그만큼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후회도 깊게 남는 거니까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그때마다 제 자신이 너무 싫어지거든요."
 민서가 세수하듯 양손으로 얼굴을 쓸며 말했다.
 "하지만 후회는 과거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기도 하죠."
 지운이 민서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으며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한다 한들 그 선택으로 행복해할 오빠는 이제 곁에 없잖아요."
 "민서 씨가 지금 느끼는 후회의 감정도 결국 오빠와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요?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앞으로 민서 씨가 살아갈 삶이 회한으로 가득 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저보다도 오빠가 더 원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지운이 손짓으로 그녀에게 다시 차를 권했다. 민서는 양손으로 찻잔을 잡고 여전히 따뜻한 차를 깊게 한 모금 들이마셨다. 달큼한 온화함이 목을 타고 가슴까지 퍼졌다. 순간 씁쓸했던 그녀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 특별한 카페도,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카페 주인도, 이름도 이상한 맞춤 차도, 아, 그 신비한 초대장부터 모든 것이 깨고 싶지 않은 꿈속의 일인 것만 같았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그것대로 모두 소중합니다. 억지로 접어두려 하지 말아요.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함께했던 좋은 추억도 있겠죠?"
 그녀민서의 손을 잡고 책장 쪽으로 이끌었다.
 


  "후회보다는 그 소중한 순간들을 조금 더 많이 떠올리게 될 수 있도록 당신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어요."
 지운은 손을 뻗어 미색의 책을 한 권 뽑아 들었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민서는 책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엄마가 남매에게, 그리고 민석이 한글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민석이 자주 읽어주던 동화, 곰돌이 푸. 푸가 꿀을 너무 많이 먹어서 토끼 굴을 막아버린 부분에서 민서는 항상 깔깔 웃었다. 엄마가 읽어줄 때에도, 민석이 읽어줄 때에도 민서는 배를 움켜쥐고 웃었었다.
 


 "벌집을 찾아간 것과 토끼굴에 끼이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참 재미있는 부분이죠?"
 민서의 추억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지운이 말했다.
 "이건 어른을 위한 책인가요?"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이야기이지요. 곰돌이 푸가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책이에요.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려줄 거예요. 마음이 평안해지면 후회스럽던 시간 속의 자신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저기 앉아서 읽고 가도 요?"
 "물론이죠. 당신을 위한 자리니까요."
 다시 돌아가 앉은 민서는 향기에 이끌려 찻잔을 들었다. 전혀 식지 않고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차가 신기했다. 라벤더 향과 함께 따뜻하게 가슴속에 내려앉았다.
 "저는 차를 좀 더 내올게요."
 지운이 이렇게 말하며 카페 뒤쪽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민서는 문득 지운에게 빨간 스웨터가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운이 다시 작은 문 뒤로 사라졌다.
 민서가 미소 지었다.

 그 때 빨간문이 열리고 누군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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