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에 관한 서평을 보며 영원한 행복을 얻으려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계명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구절을 보다가 내 머릿속 추억 하나가 떠올라 픽 하고 실소가 났다. 어릴 적 엄마가 코바늘 손뜨개로 떠서 액자 안에 새겨뒀던 우리 집 가훈, <믿음. 소망. 사랑>
엄마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또한 여전히 신실한 불교신자이다.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했던 우리 집 가훈. 차라리 불교 교리가 가훈이었다면 집안 분위기와 가훈 사이의 이질감이 덜했을 텐데. 대체 왜 가훈이랍시고 이다지도 거리감 드는 단어를 나열해 두었을까. 믿음, 소망, 사랑이란 어떠한 것인지 정의 한 번 알려 준 적 없는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 둔 가훈. 엄마는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가훈 입네 하고 걸어 둔 저 세 단어가 기독교의 계명일줄은 꿈에도.
그 시절은 엄마의 풍파가 깃든 인생에 가장 평안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만큼은 아빠의 벌이도 안정적이었고, 자식들도 적당히 커서 손이 덜 갈 무렵이었으니까 말이다.
중졸의 엄마는 자신의 똑똑함을 어필했다. 엄마는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으나 집안 형편에 의해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 그런 사람치고는 책과 거리가 멀어 보였으나, 학업에 대한 미련이 뚝뚝 흘렀던 엄마는 자식들에게 그 미련을 투영해 한껏 기대를 했다. 국민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아빠의 자존심을 매일 밟고 올라서 자신의 우위를 다지면서.
그런 엄마가 어느 날 가훈이라고 만들어 낸 저 세 글귀는 불교 집안에서 자라난 기독교의 씨앗이었다. 학교에서 가훈과 가족 인적사항 등을 적어 내다가 우연히 우리 집 가훈이 교회의 계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후의 일이었는데, 아마 엄마도 그즈음하여 알았던 듯하다.
비록 책은 읽지 않았지만, 돈 벌기에 급급한 중졸의 아줌마였지만, 자신의 똑똑함을 내세우던 엄마는 어쩌면 어딘가에서 들은 있어 보이는 말들을 가훈으로 삼아 고상함을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생각하면 당연하게 떠오르는 그 억척스러움 뒤에는 고상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보이고자 했던 고상함은 결국 엄마가 섬기던 신이 아니었다. 가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뒤 다시 액자는 비었고, 엄마의 뜨개로 만든 글자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우리 집에 새롭게 생긴 가훈은 없었다. 그것이 기독교의 계명임을 안 후 엄마는 가훈 얘기가 나오면 우리 집에 가훈이 어디 있노 하고 민망함을 감춘 화를 낼 뿐이었다. 똑똑함을 자랑하던 일자무식 아줌마는 끝까지 자신의 실수에 관용을 베풀지 못했다.
단테의 신곡을 집어 들고서 추억 한편에 물들자 문득 나의 배움은 누구에게서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척스러웠던 엄마의 학업 미련 덕에 집이 기울어가는 마당에도 남들 다 하는 만큼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배웠다고 부모에게 시답잖은 꼴 값을 떤 적도 있었다.
지금 나도 그 시절의 엄마처럼 삶에 고상함을 좇고 있는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추구하는 고상함은 누구에게서 온 것인가.
반대로 학업을 더 하고 싶었던, 고상하기를 바랐던 엄마의 억척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쩌면 나는, 우리는 엄마에게 억척스러움을 안기고서 고상함을 갈취했을지도 모른다. 그 억척스러움의 기저에는 내가, 우리가 깔려 있는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