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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업지망생 Jun 01. 2023

소시지 야채볶음과 콩나물된장국

밥하기 일상(202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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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투고 마감일을 앞두고 소논문을 쓰는 중이다. 절반 정도를 쓰고 나니 나머지 절반이 참 고역이다..

논문 쓰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하루종일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다시 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썼던 블로그에 로그인을 했다. 찾는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은 찾을 수 없었고, 기억에도 없던 일기들이 스무 편이나 넘게 저장되어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종종 밥하기 일상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제법 자세하게 내가 밥을 하면서 느꼈던 많은 불편한 감정들이 쓰여 있었고, 남편이 저녁을 했던 짧은 시기의 일상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덤으로 미눔의 사랑스러운 모습들도 기록되어 있었다. 찬찬히 읽다보니 한 시간이 넘어 버렸다.

글을 쓸때는 즐거울 때도 괴로울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별 게 없는 글들도 반짝인다.


그리고 밥하기 일상 기록은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당장의 논문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언젠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밥하기 일상 기록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추진력 갑인 사람이므로 오늘부터 시작. 


오늘은 내가 가벼운 인후통 등 감기 증상이 있었다. 밥은 물론이거니와 집안일과 공부 모두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감기를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오랫만에 점심을 먹었다. 지은지 40시간이 지나 바싹 말라버린 흰밥을 버리기 아까워 기름을 좀 넉넉히 부어 볶음밥을 해먹고 바로 한약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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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에 집중하기 시작한 뒤로 점심을 거르는 일이 많았다. 물론 남편이나 미눔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밥을 해야 했겠지만, 나 혼자 있을 때는 나 자신을 먹이겠다고 밥을 하는 불편함과 귀찮음을 감수하기 싫었다.(밥을 하는 일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가끔 집 앞에 있는 분식집에 가서 김밥이라도 한 줄 사다 먹을까 생각도 했었지만 그것마저 귀찮았다. 

그러다 오늘은 거의 열흘?만에 점심을 직접 차려 먹은 것이다. 있는 음식을 꺼내 데워 먹은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해 밥을 볶았다. 물론 가족 누구에게도 줄 수없는 바싹 마른밥을 밥자로 짓이겨 만든 것이긴 하다. (가족에게 줄 수 없는 상태의 음식은 내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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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과 국을 사오려다가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콩나물된장국을 끓였고,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비엔나 소시지로 소시지 야채볶음을 만들었다. 오래된 양파, 오래된 당근, 얼마 전에 구입한 양배추 등을 넣었다. 대파를 썰어서 얼려둔게 거의 바닥이 나있었고, 두부 반쪽 보관해두고 있던 것은 상해 있었다. 생각해보니 꽤 오랫동안 밥을 안 했다.(음식을 할 때는 갖고 있는 식재료의 유통기한 등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즉 가족의 선호 뿐만이 아니라 식재료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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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자는 말에 미눔이 갑자기 "나 짜장면 먹을래요"라고 말했다. "아냐, 엄마 이미 소시지 볶음했어"라고 말하자, "저 점심에 학교에서 뉴욕식 핫도그 먹었는데 또 소시지 먹으라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다른 가족이 집 밖에서 먹은 식사의 메뉴를 고려해야 한다. 이에는 식사는 다양해야 하고 새로워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주는대로 먹으라는 말은 잘 못한다. 유통기한 핑계도 댈 수가 없어서 "달걀프라이 해줄테니까 먹을래?"라고 물었고 미눔이 알겠다고 했다.(식사는 가족의 선호를 고려해야 하지만 선호하지 않는 음식을 먹이기 위한 설득 작업도 필수적이다.) 식사에서 단백질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단백질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기 시작했을까?) 의도치 않게, 달걀프라이에 김치에 김에, 콩나물된장국에 밥. 한국인의 기본 식단으로 식사가 꾸려졌다.(한국인의 식문화에 적절한 식사 proper meals란 무엇일까?) 진짜 먹을 거 없을 때 이렇게 해서 먹었었는데 30분 넘게 준비한 식사가 고작 이거라니. 식사 준비는 종종 허무함을 남긴다.

소시지 야채볶음을 그냥 둘 수 없어서 혼자 먹으려고 접시에 조금 떴는데 미눔이 당황+아쉬움+민망함 등의 다양한 감정이 섞인 표정과 말투로 "아... 소시지 안 먹겠다고 말하지 말걸 그랬어요. 나는 점심에 먹은 소시지랑 같은 건 줄 알았죠.. 그 소시지 나도 먹으면 안돼요?"라고 물었다. 고양이 눈만 안 했지 영락없는 애원의 눈초리이다.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고 했고, 그리고 달걀도 먹어야 해 라고 말했더니 다 먹겠다고 하고는 정말로 식판 위의 모든 반찬을 다 먹었다. 오물오물 밥을 먹으면서도 쫑알쫑알 끊이지 않는 아이의 말에 대답해주며, 생각했다. 뉴욕식 핫도그의 소시지와 비엔나 소시지가 그렇게 다른 것인가? 하고.. 


이렇게 오늘 밥하기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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