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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업지망생 Nov 21. 2023

콩나물 무침

작년 어느 날의 기억

 고백하건대, 나는 결혼한 지 8년 만인 작년 봄에 처음으로 콩나물을 무쳐봤다. 내 나이 마흔두 살 때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콩나물국을 끓이고 남은 아주 약간의 콩나물이 꽤 오랫동안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었을 거다. 당장 먹지 않으면 결국 음식물 쓰레기가 될 것 같은데, 국을 끓이기에는 양이 애매해서 한 끼 반찬으로 콩나물을 무쳐보겠다는 간 큰(?) 생각을 했다. 


 콩나물 무침은 평상시에도 자주 먹는 반찬이긴 하다. 게다가 제주에서는 고사리나 도라지, 시금치 등과 함께 노물(나물)이라고 불리는, 제사, 명절에도 늘 등장하는 밑반찬이다. 제사, 명절 등 시댁 행사에는 거의 빠지지 않는 편인 데다 결혼 전에도 할머니댁에서 제사, 명절 음식 만드는 일을 거들어 왔지만 전을 부치는 정도였지 무침 요리를 직접 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간단한 나물 무침 종류는 반찬가게에서도 저렴하게 파는 편이라 그냥 사 먹는 게 싸다는 생각으로 늘 구입해 먹었다. 


 사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밑반찬 종류여도 직접 만들기로 결심을 할 때에는 매우 큰 각오가 필요하다. 나는 요리에 자신이 없는 편이고, 특히나 해보지 않은 종류의 음식은 선뜻 시도하지 않는다. 특히 너무 간단해 보이는, 그래서 실패하면 더욱 자괴감이 들 것 같은 음식의 경우는 더 그렇다. 어찌 보면 본격적으로 밥을 하기 시작했던 이후 '해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8년 동안 콩나물 무침을 미뤄 온 것이다. 나는 주로 콩나물을 국을 끓이기 위해 샀고, 조금 남은 콩나물은 제육볶음을 하거나 라면을 끓일 때 넣었다. 사실 그보다는 더 자주 썩혀서 버렸을 것이다. 


 나는 콩나물을 끓는 물에 몇 분 데쳐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각기 글을 올린 사람마다 다양한 시간을 제시했다. 뚜껑을 덮어서 데치는 사람, 뚜껑을 열어서 데치는 사람 등 데치는 방법도 하기 나름이었고, 다진 마늘을 넣는 사람도 있었고 안 넣는 사람도 있었다. 어찌 보면 자기 마음대로 만드는 건데 마음대로 만든다고 해서 마음에 드는 콩나물 무침이 완성되리라는 법은 없다. 특히 야채나 나물을 물에 데치는 시간은 정해진 답이 없어서 아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은 짧은 시간 동안, 푹 익어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은 좀 오랫동안 데치기도 한다. 나는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적당해 보인다 싶은, 매우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선택된 레시피대로 만들어 보았고, 콩나물 무침을 그날 저녁 상 위에 올리는 것에 성공했다. 참고로 나는 만들어 보고 맛이 없으면 밥상에 올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자주 먹는 데다 만드는 데 재료도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고, 몇 분 걸리지도 않는 아주 간단한 반찬이다. 특히 아이가 잘 먹는 채소 반찬 중 하나인데도 왜 직접 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을까. 첫 콩나물 무침에 성공한 이후에도 나는 콩나물을 사면 제일 먼저 국을 끓였고, 남은 콩나물은 종종 냉장고에서 썩었으며, 무침 반찬은 두어 번 정도를 제외하면 반찬가게에서 구입해 먹었다. 


 왜 나는 콩나물을 직접 무치지 않는 걸까, 어느 날 아이를 재운 뒤 책을 읽으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날은 꽤 오랜만에 콩나물을 무쳤는데 보관 용기에 가득 담아둔 것을 늦게 귀가한 남편이 맥주 안주로 다 먹어버린 날이었다. 콩나물무침을 보관용기에 담으며, 이 정도면 한 이틀 저녁상에 올릴 수 있겠네 하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남편이 다 먹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콩나물 무침은 너무 하찮은 반찬이 아닌가. 힘들게 일하고 귀가한 남편이 시원한 맥주로 하루의 노고를 풀며, 다른 고급 안주도 아닌 고작 콩나물 무침을 먹었을 뿐인데 왜 그게 마음에 남았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콩나물 무침이 왜 하기 싫은지. 결론은 콩나물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무침 요리에 자신이 없어서였다. 재료를 데치거나 익혀서 만들어야 하는 시금치 무침, 도라지 무침을 포함해서, 오이무침, 부추무침 등 식초와 설탕이 추가되는 초무침까지. 그런데 한국에는 무침 종류의 반찬이 또 얼마나 많은가. 음식 소개나 요리법을 다루는 수많은 콘텐츠 안에서는 가장 손쉬운 반찬요리로 다양한 무침들이 마치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기라도 한 듯 뚝딱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무침 요리를 할 때마다 무침 요리에 자신 없어하는 나 자신을 늘 마주해야 했다. 


 이에 꼬리를 문 또 다른 질문은 평소에도 식사량이 많은 남편이 저녁 한 끼 식사에서 어떤 반찬을 다 먹어버렸다는 이유로 기분이 안 좋아진 적이 있었던가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음식을 남기면, 맛이 없나?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 편이다. 나는 곧 밥반찬과 술안주에 대한 내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한 적이 없으니 남편은 꿈에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직접 만들어 놓은 밥반찬이 안주거리로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늘 건강하고 맛있는 밥을 해주고 싶었지, 몸에 좋지 않은 술을 마시는데 곁들여 먹으라고 안주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안주를 해 준 적이 있었나? 남편은 늘 스낵이나, 쥐포, 치킨 등을 사 와서 맥주 안주로 삼았고, 내게 안주로 먹을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 남편은 늘 "해주는 게 어디냐"며 부실한 밥상에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안주까지 만들어 달라는 건 남편 스스로에게도 염치없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 불편함의 원인은, 내가 매우 큰 마음을 먹고 직접 만든 콩나물 무침이라는 밥반찬이 술안주라는 낮은 위계의 한 형태로 가치 없게 소비되어 버렸다는 것에 있었다. 결국 비싸고 몸에 좋지도 않은 데다 칼로리만 높은 안주보다 내가 직접 만든 콩나물 무침을 먹는 것이 남편의 건강에도 가계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섭섭한 마음을 풀었다. 결론은 또 이렇게 '나의 시간과 수고로움 = 가족들의 건강과 가계 경제'로 귀결된다.      


 언제나 내가 해 준 밥은 고맙게 맛있게 먹어줘서 늘 고마웠던 남편이, 그날 그깟 콩나물 무침을 맥주 안주로 다 먹어버렸다고 뭔지 모를 섭섭함이 가슴에 남은 날, 나는 나의 음식노동이 어떤 가치로 소비되길 원하는지, 내가 만든 음식이 어떤 효용성을 가지길 바라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거기에 내가 무침 요리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도 말이다. 


두려움을 이겨내려면 자주 해봐야겠지, 오늘은 숙주를 무쳐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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