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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Oct 08. 2022

무엇이 더 나은 결정인가?

뭔가가 떠오른다면, 이는 순전히 기분 탓이다.

한 흉악범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불온한 사상을 지닌 연쇄 살인범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그를 추종한다는 세력이 나타나 '도시에 테러를 계획하고 있고, 그를 풀어주어야만 이를 실행하지 않겠다' 선언했다. 하지만 정책 결정층은 결정을 주저했고, 그러는 동안 결국 테러가 시작됐다.


다수 시민은 당국에 무고한 사람이 죽었고, 또 죽을 위기에 처해 있는데 뭘 주저하냐며 조속히 흉악범을 풀어주라고 요구했다.

반면, 소수는 '그가 석방되면, 이번에 그를 석방하라 요구하며 테러를 가한 것처럼 다음엔 또 어떤 것을 요구하며 테러를 벌일지 모른다. 만약 그들이 또 시민과 도시, 국가를 상대로 대규모 인질극을 벌이면 그땐 어떻게 대처하려 하느냐'이유에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시민은 '당장 구할 수 있는 목숨을 구해야지, 그깟 흉악범 한 사람이 대수냐'며 그들에게 온갖 비난을 가했다. 그러면서 그를 석방함으로써 최대한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외쳤다.

결국 정책 결정층은 그를 놓아주기로 결정했고, 흉악범은 추종 세력의 비호하에 성공적으로 도주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수령을 옹립한 불온세력은 재차 부당한 요구를 해 오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도 함께였다. 이에 패닉이 된 사람들은 이번엔 다르다고, 정말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절규하며 당국에 다시금 저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정책 결정층은 전면전을 택할지, 시민의 목숨을 택할지 고민했으나, 그 사이에 몇 차례의 소규모 테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여론을 따라 결국 앞의 것을 택했다.


이에 맛이 들린 테러 세력은 또 테러 위협을 가하며 요구 조건 수용을 외쳤다. 이번엔 전보다 테러 주기가 짧았고,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공격이 연달아 가해졌다. '소수'가 예상하며 지적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더는 손을 쓸 수 없다 판단한 정책 결정층은 그들과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러로 다치거나 희생된 이들만큼의 적지 않은 사상자가 나왔다. 그들이 격렬히 저항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비록 불온 세력을 소탕하긴 했지만 상처뿐인 결과였다.


후에 상황이 정리되고 도시가 재건되자 비로소 '석방 및 요구 조치 수용 반대'를 외쳤던 이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수에 해당했던 사람 중 적잖은 이가 사망했거나 다쳤고, 무사히 사태를 넘긴 이들조차 '목소리를 내 봤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침묵하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위의 예화는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다수 의견에 따라 그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아니면 소수 의견에 따라 조기에 소탕전을 벌이는 것이 최선이었을까?"란 질문다.


예상하건대, 한국 사회는 '어떤 사례'와 관련하여 와 유사한 질문을 직면하는 날을 분명히 맞이할 것이다. 다만 지금 상황으로 보건대, 어떻게든 이 질문에 답하기를 회피하며 어영부영 넘어갈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지난 일인데 들쑤셔서 무슨 소용이 있냐'는 핀잔 내지 타박과 함께 말이다.



*이 글은 <타이거 앤 버니(TIGER &BUNNY)>란 애니메이션의 내용에서 영감(?)을 얻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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