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사귀기 13

27 “체중을 아래로 깊숙이 앉는 것”에 대한 고찰

by 승마표류기


오늘도 무지 춥습니다. 왜 이리 추운지 온몸이 덜덜 떨립니다. 그래서 승마복 위에 롱챕을

착용했습니다. 롱챕은 가죽 바지로 훨씬 따뜻함을 유지해 줍니다. 승마용 롱챕은 몸에 딱 맞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전문 장인에게 맞춥니다. 수제품이고 가죽이기에 비싸다는 게 함정입니다. 너무 추운 이번 겨울, 큰맘 먹고 맞추지는 못하고 기성품(다른 사람이 반품한 재고이고 내 몸에 안 맞아서 따로 수선했다)으로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길이 안 들어서인지 아니면 두꺼운 가죽이라 그런지 다리가 잘 안 구부려집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네요. 그래서 오늘은 등자에서 발을 빼고 연습하기로 했습니다. 등자에 억지로 구겨져 있던 나의 발을 이탈시키니, 다리가 쭉 펴지면서 중력에 의해 깊숙이 앉게 됩니다. 거울로 봤을 때 넓적다리 부분이 거의 일자로 펴졌는데, 발을 약간 뒤로 빼니 정말 멋진 자세가 완성된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체중을 아래로 깊숙이 앉는 것”의 표준 자세라고 교관님이 옆에서 말해 주네요. 교관님들이 항상 강조했던 ‘푹 앉는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습니다. 보통 경속보를 할 때 등자에 힘을 줘 밟고 일어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동안은 등자에 방해를 받아 깊게 못 앉았던 것이 문제였네요. 하지만 지금은 엉덩이가 안장에 달라붙어 있고 허벅다리가 거의 일자로 내려가 있습니다.

두껍고 길들여지지 않은 가죽 바지로 인해 인위적으로 자세를 잡은 것이지만 이 느낌을 기억하고 등자를 살짝 밟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구보나 속보를 하면 할수록 등자에 방해를 받지 않고 안장에 더욱 깊숙이 앉는 느낌입니다. 또 하체가 쫙 펴지니 말에 밀착되는 부위가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상체는 더욱 자유로워집니다. 허리를 펴기 쉽고 시선도 멀리 둘 수 있고 어깨와 손목도 가볍게 풀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느낌 아니까’라는 유행어가 와닿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등자에 발가락만 살짝 걸어 뒤꿈치를 억지로 내리려고 하니 자연스레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게 함정이네요. 좌속보까지 하니 다리에 힘이 더 가해져 아까의 멋진 자세는 사라지고 느낌도 안 옵니다. 그 느낌을 재현하고 싶어 다시 등자를 빼고 구보를 하니 내 체중

에 의해 몸이 깊숙이 밀착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우연이지만 오

늘 느낀 이 느낌을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탈 때도 등자를 뺀 채 구보와 속보

를 많이 연습해봐야겠습니다. 승마가 더욱 재미있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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