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이 만든 딜레마, 그리고 변증법적인 발전
인류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다양성입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다양성보다는 딜레마, 즉 흑백논리에 빠지죠. 단재 신채호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我)와 피아(彼我)의 투쟁' 일 뿐 다른 제3의 존재 가능성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이 흑백논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딜레마의 덫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이래저래 생각할 거 없이 결론이 간단하기 때문일까요. 사람들은 흑백 두 가지만 생각할 뿐, 적이나 청·녹 등은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딜레마가 위험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我 이외의 彼我는 모두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위험성, 그리고 我 한 가지에 집착하다 보면 극단으로 가게 될 수 있는 위험성입니다.
록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강함' 에 대한 것입니다. 리드 기타의 현란한 연주, 파워가 느껴지는 드럼, 폭발적인 보컬, 이래야만 '록' 답다는 고정관념입니다.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 보컬인 김경호가 성대결절까지 하게 된 것도 조용한 김경호보다 샤우트하는 김경호가 더 김경호답다는 그 고정관념 때문이었죠.
생리학에서 유명한 '베버(Weber)의 법칙' 이 있습니다. 자극의 세기 변화를 감지하는 데는 처음 자극과 나중 자극의 차이가 항상 등비로 증가해야 한다는 것인데, 쉽게 말해 강한 자극을 받으면 다음에 자극의 변화를 느끼기 위해서는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록의 역사를 보면 한동안 이렇게 점점 강한 자극으로 진화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록을 접할수록 더욱더 강한 음악을 요구하였고 그것은 더 '강한' 록의 출현으로 이어졌습니다. 맨 처음 '로큰롤' 에서 시작하여 1960년대 후반부터 '하드 록(Hard Rock)' 이 등장하더니, 1980년대 들어 '헤비 메탈' 이 록을 점령하고, 이는 '스피드 메탈', '스래시 메탈', '블랙 메탈', '데스 메탈' 등으로 점점 강하게 인첸트되어 갔습니다.
*로큰롤(Rock 'n' Roll) : 1950년대 미국 남부에서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 백인 음악인 컨트리 등을 혼합하여 탄생한 장르로 록의 전신이 됨. 대표 아티스트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헤비 메탈(Heavy Metal) : 하드 록에서 발전하여 보다 빠른 템포와 강한 비트, 화려한 악기 퍼포먼스 등을 특징으로 하여 생겨난 록 음악의 하위 장르. 기존의 록보다 강한 오버드라이브나 디스토션, 쇳소리 같은 목소리 등의 금속성 사운드가 많이 쓰인다 하여 메탈이라는 말이 생겼으며,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같은 6, 70년대 고전적 메탈과 구분하여 헤비 메탈이라 부름.
그럴 만도 합니다. 저만 해도 과거에 '스래시 메탈' 계열의 메탈리카(Metallica)나 메가데스(Megadeth)의 음악은 앨범 자켓만 봐도 두렵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 강한 메탈릭 사운드를 충분히 접한 입장에서 과거의 사운드는 전혀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죠.
*스래시 메탈(Thrash Metal) : 기존 헤비 메탈 사운드를 더 강력하게 진화시킨 록·메탈의 하위 장르. 광적으로 빠른 베이스와 드럼 비트, 화려한 기타 솔로를 특징으로 함.
'데스 메탈' 같은 익스트림 메탈 계열의 음악을 들어보신 분들은 이해하실 겁니다. 어떠한 음악보다도 파워풀한 메탈 사운드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이러면 다른 어떠한 장르의 스피드나 파워도 성에 차지 않게 됩니다. 한번 넘은 베버 커브의 산등성이를 다시 되돌아오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데스 메탈(Death Metal) : 스래시 메탈에서 더 극단적인 형태로 분화한 록의 하위 장르로 그 어떤 헤비메탈보다도 빠르고 과격함. 이후에 데스 메탈의 공격성을 억제하고 멜로디 라인을 강화한 '멜로딕 데스 메탈' 이라는 장르도 생겨났음.
반면 이에 대한 반발도 생겨났습니다. 로큰롤도 당시에는 기성세대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고, 메탈릭 이후에는 더 심해져서 유명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The Simpsons)' 에서 헤비 메탈을 가리켜 아예 비행청소년이 듣는 음악이라는 표현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하긴 스래시 이후 익스트림 메탈 계열에서 악마주의(satanism) 에 인종 차별 성향까지도 서슴없이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심슨 가족(The Simpsons) : 미국의 '20th Century Studios' 에서 만든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1989년부터 현재까지 30년 넘게 방영되고 있음.
그런 이유로 유연한(?) 록으로의 회귀 시도도 꾸준히 있었습니다. 로큰롤이 물러난 자리는 비틀즈(The Beatles)와 밥 딜런(Bob Dylan)으로 대표되는 '브리티시 록' 과 '포크 록' 이 채웠습니다. 헤비 메탈이 상당수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자 당시 유행하던 신디사이저 등의 전자 음악과 결합한 '일렉트로닉 록' (Van Helen, Starship 등) 과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와의 퓨전을 한 '프로그레시브 록' (Dire Straits, Cutting Crew 등), 그리고 서정적인 '소프트 록' (Chicago, Toto 등) 의 명곡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포크 록(Folk Rock) :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이 되는 포크 음악에 록 사운드가 결합된 음악으로, 포크 뮤지션이었던 B.Dylan 과 록 뮤지션이었던 The Bealtes 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탄생한 음악.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시도가 더 다양화되었습니다. 정통 록으로의 회귀를 갈구하여 '얼터너티브 록' 이 메탈과 일렉트로닉 록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고, 에릭 클랩튼(Eric Clapton)나 리처드 막스(Richard Marx)처럼 아예 기타에서 전기 플러그를 빼 버린(Unplugged) 록 아티스트들도 나타났습니다. 반면 메탈 사운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답을 찾으려 했던 '고딕 메탈' 이나 '뉴 메탈' 같은 흐름도 있었습니다.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메탈과 너무 대중화된 일렉트로닉 록을 모두 거부하고 오리지널 록 사운드로의 회귀를 추구한 록 음악 장르.
이상만 보면 록의 역사가 이렇게 딜레마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록은 그와는 다르게 '변증법(dialectic)' 적으로 진화하였습니다. 철학자 헤겔(G.Hegel)이 얘기한 변증법적인 진화는 정(正)과 반(反), 이 두 가지 모순된 것이 부딪쳐 그저 충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합(合)이라는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발전한다는 내용입니다.
합(合)은 정(正)도 아니고 반(反)도 아니지만 양자가 모두 내포되어 있으며 양자의 대립을 해소한 통일된 발전체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또 다른 하나의 정(正)이 되어 또 다른 반(反)을 만나 다시 진화합니다. 그 과정에서 계속 끊임없는 새로움을 갈구하고 또 다른 외생변수들을 받아들입니다.
록의 역사가 그러합니다. 강함과 유연함의 대립 속에 계속 새로운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고 그렇게 수십 년을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록은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록 음악이 차트의 정상에서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되었고, 강한 록이나 유연한 록이나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은 매한가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안타깝게도 21C 들어서는 이러한 진화의 시도조차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 먼저 글에서 언급했듯이 최근에 음악 발전이 좀 정체기에 있어서일까요? 현재는 강력한 힙합과 일렉 열풍에 의해 록이 뒷방 신세로 밀려나고 말았지만 아직도 많은 록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록은 재즈 못지않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대중음악의 중요한 문법 아니겠습니까.
조만간 록이 뭔가 유의미한 변증법적 해답을 내놓기를 기대해 봅니다.